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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Nov 29. 2020

생각을 많이 하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생각이 많았다. 어른들은 생각이 많은 나를 보고, '어린애가 어린애답지 않게 무슨 그렇게 생각이 많냐?'라고 하셨다. 그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에 어른들의 어린애답지 않다는 말이, 애늙은이 같다는 말이 왠지 칭찬으로 들렸다.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내 습관이 되었고, 정체성이 되었다.


학창 시절에 나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삶에 대한 예의이자 내 존재의 이유라고 생각했다. 시도 때도 없이 생각을 했다. 친구들이랑 놀 때에도, 가족들이랑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갈 때에도, 등하굣길에도, 버스를 탈 때에도, 잠들기 일보 직전에도... 너무 생각이 많은 탓에 잠에 드는데 최소 30~40분이 걸렸다.


생각을 많이 하면, 지금 나의 고민들이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 어떤 생각들은 나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과거를 돌이켜보며 내가 잘못한 부분들에 대해서 반성과 점검을 할 수 있었고, 미래를 생각하며 앞으로의 미래 계획을 설계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렇게 실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생각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율로 따지면 5% 남짓 될까 말까...


나는 주로 과거에 대한 후회와 자책,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갇혀 지냈다.


'그때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할 걸. 그동안 난 뭘 했을까? 난 쓰레기야.'


'여자친구한테 조금만 더 잘해줄 걸. 그랬다면 나를 떠나지 않았을 텐데... 내가 나쁜 놈이야.'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까? 혹시나 실패하는 건 아닐까?'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난 금방 포기하는 성격이니 잘 못 할 거 같은데... 또 사람들이 내 흉을 보지는 않을까?'


2018년, 원래 생각이 많았던 나는 필연적으로 생각의 감옥에 갇힐 수밖에 없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슬럼프가 시작되었다. 이 시절에는 주로 과거에 대한 그리움에 빠져 지냈다. 자책과 함께.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예전에 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었는데... 아이들, 친구들, 직장 동료들, 후배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했는데... 근데 지금은? 예전엔 지금보다 더 열정적이었는데,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예전엔 활동적이었는데... 예전엔 책도 많이 읽었는데... 예전엔... 예전엔... 예전엔...'


어느 순간부터 나는 생각에 빠지는 것을 넘어서서 아예 생각에 잡아먹혀버렸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아예 내 삶 전체를 먹어버렸다. 쓸데없이 많은 생각들은 망상을 낳았고, 망상은 또 다른 망상을 만들었다.


끊임없이 나오는 부정적 생각들로 인해,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직장의 회식에도 참여하기가 힘들었고, 친한 친구의 결혼식장에도 갈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나자고 해도 나가지 않았다. 골방에 틀어박혀서, 생각에 잡아 먹힌 채 벌벌 떨며 1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나는 폐인이 되었다.




폐인 생활 1년째 문득 드는 생각.


혹시 생각에 빠져서,
 내가 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많이 하면, 나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라는 명제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과도한 생각은 나 스스로를 괴롭히기만 할 뿐이었다.


그 후로, 나는 생각에 빠지는 대신에 실천하기로 했다. 골방에 박혀서 후회와 자책을 하는 대신에, 동네 공원에 나가서 뛰었고,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할 시간에 명상과 독서를 했다.


생각 대신 실천의 비중을 높이자, 내 마음속에 생각의 구름들이 조금씩 걷히는 게 느껴졌다. 생각의 구름들이 걷히자, 내 마음에 햇볕이 들었다.


한 번에 바뀌려고 욕심내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작은 실천을 해나갔고 나는 결국 슬럼프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요즘에도 가끔씩 생각에 빠지고자 하는 예전 습관이 올라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과거 슬럼프 시절을 떠올리며, 생각의 함정을 피해 간다. 그동안 내가 깨달은 바는 다음과 같다.


생각은 구름과도 같다. 눈 앞에 생겼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생각은 내가 아니다.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이다. 내가 나쁜 생각을 했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도 없다. 그 생각은 내가 아닐뿐더러 곧 있으면 사라질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각에 빠지는 순간 생각은 나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생각에 지배당하는 순간, 생각은 내가 진정 원하는 행동들을 가로막는다. 이 생각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저 생각을 판단하지 않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아무런 판단 없이 생각의 떠오름과 사라짐을 관찰해보자. 내 오랜 습관들과 문화, 환경 등에 의해 형성된 내 생각들에는 일정한 패턴들이 있다. 그 패턴들을 알아차리자.


'아! 내가 계속 휴대폰을 보는 것은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일들이 너무 힘들어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 하는 거구나!'


'아! 지금 내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구나!'


패턴을 알아차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통찰력이 생긴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통찰력은 내가 생각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의 나처럼 생각에 빠져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분들께 한 말씀드리고 이만 글을 마치고자 한다.

생각이라는 괴물에게 잡아먹히지 마세요. 여러분은 생각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생각 #생각의노예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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