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한 집단에서 한 이미지가 고착화되면, 이를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 이미지가 부정적이라면 더더욱 힘들다. 설사 평소에 인싸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없다. 그만큼 집단 시선의 힘은 막강하다. 최악의 경우에 시선의 감옥을 뚫지 못하고 오랜 시간 동안 고착화되면,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우리에 대한 부정적 생각들은 우리들의 정체성이 되어 버린다.
3년 전 군대에서 전역하고 이제 막 학교에 복직한 나의 경우가 그랬다. 그들은 나의 몇 가지 말과 행동으로 나라는 한 사람을 단정 지었고, 그들이 보는 이미지대로 내가 행동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구축한 나의 이미지가 싫었다. 그동안 생각해왔던 그리고 평가받아 왔던 나라는 사람은 나름 재치 있고 유머도 있고 활달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재미없고, 수동적이고, 소심한 사람이라고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내가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 만약 내가 그들이 생각한 이미지와 맞지 않은 행동을 하면 그들은 이러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곤 했다.
마치 '네 모습은 이게 아니잖아. 적극적인 네 모습은 너한테 어울리지 않아. 얼른 다시 소심한 너로 돌아오라고! 네 분수를 알아야지.'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으로.
더 이상 그들의 시선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들과 같이 있으면, '난 더 이상 쓸모없는 쓰레기야.'라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 들 정도로 내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그렇다고 그들을 마냥 피한 것만은 아니다. 처음에는 잘 지내보려 했다. 나름대로 이미지를 바꾸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들에게 도움도 주고, 그들이 좋아할 만한 행동들도 해보고, 심지어는 도대체 저에게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다고 저는 잘 지내고 싶다고 정면 돌파를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전부 다 소용없었다. 이들과 잘 지내려 하면 할수록 이들은 또 그런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내'가 아니게 되어 버렸다. 내 자존감은 점점 시들어갔고,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들을 피하기로 했다. 더 이상 내 자존감을 갉아먹는 이들과 함께하기 싫었다. 그때부터 난 이들이 있는 회식, 동호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을 완전히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퇴근 후의 시간은 내 자유였지만, 이들은 직장에서 매일 같이 봐야 할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보지 않으려면 직장을 그만두거나 옮겨야 하는데 당장 실행하기에는 현실성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직장생활을 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매번 자살충동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깐... 살기 위해서 이번에는 피하는 방법이 아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저번처럼 무작정 아무나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하면 또 뒤통수를 맞을 염려가 있었기에(이런 사람들에게는 진심은 통하지 않는다.), 평소에 아주 평판이 좋고 중립적인 입장의 동학년이자 원로교사인 A선생님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A선생님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A선생님은 네게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은... 그리고 그 정도로 심각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같이 눈물을 흘리며 내 얘기를 들어주셨다. 그 뒤로 A선생님은 그들의 부정적 시선의 비를 막아주는 나의 든든한 우산이 되어주셨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여전히 그들은 나를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나는 그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나는 나 자신을 혐오하고 있었다.
'왜 나는 이것밖에 못 할까? 왜 이거 하나 못 이겨낼까? 나는 이것 밖에 안 되는 사람인 걸까?'
그날도 자취방 방구석에 처박혀서 세상과 나 자신을 증오하고 있었다. 더 이상 그들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도 없었다. 그동안 너무 많이 겪었기 때문에...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했어도 당연하지 않았던 이 상황들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예전의 나라고 생각했던 자신감 넘치던 사람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 내 눈 앞에는 남 탓하며 세상을 증오하는 한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혹시 타인이 아닌, 내가 나 스스로를 이렇게 만든 건 아닐까?'
아주 당연하면서도 단순한 깨달음이었다. 그동안 내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자의에 의해서 변했다는 깨달음. 그리고 자의에 의해서 지금과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희망.
그렇다. 실제로 타인의 시선은 우리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오직 그들의 시선을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나 자신만이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 뿐. 하지만 우리는 이를 깨닫지 못한 채, 영향력의 행사권이 타인에게 있다고 믿어 버린다.
그날 이후로 더 이상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더 이상 나 자신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나야. 나는 그 누군가가 만든 이름표로 규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나는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기로 했다. 나 자신과의 신뢰를 쌓기 위해, 방청소와 이불 개기 등 작은 것부터 실천했다. 방청소와 이불 개기가 습관이 된 뒤에는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 뒤에는 명상, 독서 등 서서히 믿음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갔다.
중간에 실패하거나 멈추더라도 자책하지 않았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지금부터 하면 되니깐.'
있는 그대로의 나의 수용을 통해, 나는 스스로를 폄하하고 혐오하는데 에너지를 쓰는 대신에 행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가끔씩 그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는 했다. '너는 안 될 거야.' 하면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 심지어는 뒷담화와 나의 행동을 직접적으로 방해하는 움직임들. 하지만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이들은 더 이상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되뇌며 묵묵히 내 할 일에 집중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지난 2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뮤지컬 공연, 유튜브 도전, 사랑하는 연인과의 만남 그리고 결혼, 공중파 방송 출연, 700명 구독자 브런치 작가까지. 슬럼프 때의 나였다면 정말 상상도 못 한 일들을 해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직장 동료 그리고 학생들과의 관계 회복을 넘어서 이제는 과분할 정도로 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모든 게 꿈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누군가 예전처럼 의도적으로 나를 상처 입히려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이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들은 내 자존감에 생채기조차 낼 수 없다. 나는 있는 그대로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타인의 부정적인 시선이 아닐지도 모른다. 혹여나 그동안 나를 괴롭혀 왔던 것은 타인이 아니라 본인이 아니었는지 되돌아보자.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고 사랑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