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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Mar 20. 2022

10년지기 친구를 손절한 이유

A는 대학시절 동기이자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 중 한 명이었다. 불과 2년 전만 했어도 누군가 네 인생에 친한 친구 top 10은 누구냐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 안에 A를 포함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A와는 각별한 사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시절 4년은 'A와 함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종 과행사, 엠티, 사회mc, 공부, 여행 심지어 여자 친구와 헤어져서 슬퍼할 때조차 A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마음이 울적하고 힘들 때, 위로가 필요할 때, 할 일이 없을 때, 맘 편하게 놀고 싶을 때 늘 A와 함께했다.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고 나서도 A와 좋은 관계는 지속되었다. 눈치 없이 대학교 후배들 엠티에 같이 따라가기도 하고(후배들은 얼마나 싫었을까), 서로의 고민상담(연애, 직장, 교육)도 해주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최소 두 달에 한 번 이상은 꼭 만났다.


군대에서도 A와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교대생은 보통 임용을 합격하고 1년 직장에서 근무를 하고 군대를 간다. A보다 3~4개월 먼저 입대한 나는 빨간 모자 조교가 되었고, 마침 A가 우리 대대에 입대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당시 워낙 계급이 낮았던 터라, 선임 조교와 소대장님 몰래 과자와 음료수를 챙겨주려고 A를 따로 부르려고 했다. 이때 나를 알아본 A가 눈치 없이 내 어깨에 손을 얹는 바람에 그것을 본 선임 조교에게 훈련병처럼 혼났던 기억이 난다.


군 전역 이후에도 A와 관계를 계속 이어갔다. 못해도 2~3달에 한 번은 꼭 안부 전화를 했다. 같은 직업이었기에 대화는 여전히 잘 통했다. 주로 연애, 교육, 직장, 투자, 예전 추억들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2020년 8월, 나는 결혼식을 하게 된다. 당연히 A에게도 청첩장을 보냈다. 하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 흔한 결혼 축하 문자나 전화 한 통도 없었다. 심지어 내 결혼식조차 보지 않았다. 당시 결혼식장 50인 제한으로, 울며 겨자먹기로 결혼식을 유튜브로 진행했다. 그냥 유튜브를 켜기만 하면 되는데도, 유튜브에 지금까지 라이브 방송이 남아있는데도 끝내 A는 내 결혼식을 보지 않았다는 것을 나중에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대신 A는 결혼식 당일 축의금을 보내왔다.


5만원.


물론 축의금을 보내온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그동안의 A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적은 돈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A가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 주식으로 돈 좀 벌었다고 자랑하던 친구였다. 의외로 별로 친하지 않다고 생각한 친구들 몇몇이 10만원 이상을 보내와서, 나도 모르게 A와 비교를 하게 되었다.


솔직히 섭섭했다. 내가 A를 각별히 여기는 것만큼 A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 축의금은 그렇다 치더라도 축하 연락이라도 좀 해주지.


그렇다고 고작 축의금과 축하 연락 하나에 친한 친구를 잃을 수는 없었다. 깊이 생각하면, 나만 더 스트레스받을 것 같아 '그냥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하고 넘겼다.



그 뒤로 이상하게 A에게 연락을 하기가 꺼려졌다. 내가 연락을 안 하니, A에게서도 연락이 안 왔다.

'하긴, 항상 연락을 먼저 하는 사람은 나였으니······. 그동안 A와의 관계는 이 정도밖에 안 되었구나······.'

씁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6개월 뒤, A에게 연락이 왔다. 친구 B와 함께 내일 집에 놀러 가면 안 되냐는 전화였다. 너무 갑작스러웠지만, 아내에게 허락을 받고 승낙했다. 집에 놀러 온 A는 전과 다름없었다. 여전히 실없는 농담을 하고 장난을 많이 치는 친구였다. A는 우리 집에서 잘 놀다가 갔다.

'내가 그동안 오해를 한 건가?'


하지만 전처럼 A에게 먼저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아니, A의 연락을 기다렸다고 한 게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사실  A가 먼저 나에게 안부를 물어봐주고, '나는 여전히 네 친한 친구야.'하고 증명해주길 바랐다.


집을 다녀간 뒤, 몇 달이 지나도 A에게 연락은 없었다. 7개월 뒤, A에게서 카톡이 왔다.

"추석은 잘 보내셨습니까~"

"오~ 오랜만이네. 잘 지내?"

"나 12월에 결혼~~"

"오!!! 축하축하!"

"혹시 B랑 같이 축가 하실? B는 이미 섭외완료."

"좋지~"

"근데, 너 노래 연습 열심히 해야 함. 탈락할 수도 있음."

"???"

"B가 노래 실력이 많이 올라왔거든."

(중략)


난데없이 7개월 만에 연락 와서 결혼 소식을 전하며 축가를 부탁한 친구. 축가를 부탁할 정도면 A가 나를 어느 정도 친한 친구로 여긴다는 게 아닐까? 그래 저번 결혼식 때는 분명 무슨 사정이 있었을 거야. A에게 섭섭한 감정은 있었지만 당연히 축가는 불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 탈락할 수도 있음.'이라는 말이 거슬렸다. 나에게는 마치 '네가 내 결혼식에 축가 부르는 거 허락해줄게. 하지만 제대로 못하면 안 시켜줄 거야.'처럼 들렸다. 기분이 나빴다. 굳이 이런 말을 들어가면서까지 축가를 불러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미 축가를 부른다고 대답을 했기에 무르기는 늦었다. 노래는 일주일 안에 본인이 골라서 알려준다고 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면 B가 정말 노래실력이 많이 늘어서 내 자리가 위태롭다는 등 실없는 농담만 할 뿐이었다.


참다못한 나는 축가를 부르지 않겠다고 했다. 당시 나는 매우 바쁜 상태였다. 퇴근 이후에도 예전 제자 한 명을 지도하고, 졸업생 대상으로 멘토링도 하고, 한 업체와 계약을 해서 글도 기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바쁜 상황에서 굳이 쓸데없이 감정 소모를 하기 싫었다.


"야, 그래도 하자. A 결혼식이잖아. 이런 추억 또 언제 만들어보겠냐. 하자~~~~"


계속된 B의 설득에 어쩔 수 없이 축가를 부르기로 했다.


A의 노래 선곡을 기다리다 참다못한 B와 나는 A를 단톡방에 초대해서 축가를 어떻게 할 지에 대해 의논했다. 노래를 정하고 연습할 장소를 선정할 때였다.

"저번에 교실남 너희 집에서 연습하기로 하지 않았나? 너희 집에 방음부스 있잖아."

"어어. 아내한테도 허락받았어. 언제 연습할지 날짜만 정하자."

"오! 결혼식 모임도 너희 집에서 하면 되겠다."

"????"


어차피 연습하러 3명 모이는 김에, 다른 친구들도 모아서 한 번에 만남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그래, 그것까진 이해한다. 근데 그 장소가 우리 집이라고? 그냥 어이가 없었다. 아내가 있는 우리 집을 그냥 대학생 시절 자취방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B조차 눈치 없이 좋은 생각이라며 다들 우리 집에서 모이자고 했다.


그 상황에서 반대를 하면 괜히 친구들끼리 어색해질 것 같아, 결국 다른 친구들도 부르기로 했다. 다행히 당시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서, 우리 3명에서 딱 한 명만 더 왔다. 결과적으로는 3명만 우리 집에 왔지만, 그 과정 속에서 배려 없는 A의 모습에 많이 실망했다.


집에서 모여 한창 노래 연습을 하고, 저녁에 간단히 술 한 잔을 했다. 대부분의 학창 시절 친구들의 대화가 그렇듯이, 한참 과거 추억팔이를 하다가 직장생활, 주식, 부동산 얘기로 옮겨갔다. 하지만 난 좀 더 친구들과 건설적인 대화를 하고 싶었다. 지금 친구들의 가치관은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궁금했다. A에게 물었다.


"나? 일단 돈 많이 벌어서 편안한 삶을 살고 싶어. 주식이랑 부동산 투자 잘 되어서 노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자금 마련되면 난 진짜 뒤도 안 돌아보고 직장 그만둔다. 그럼 넌 어떤 삶을 살고 싶은데?"


최근에 있었던 얘기들을 들려주었다. 한때 도움반이었던 지금은 중학생이 된 의찬(가명)이를 퇴근시간이 지나고 따로 가르치고 있는 것, 이 친구가 잘 되도록 도우고 싶다는 얘기, 최근에 예전 제자들을 멘토링 해주고 있는 얘기, 작년에 반 아이들과 한 저녁 스터디 등을 진지하게 말했다.


"난 애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켰을 때, 엄청난 희열감이 들더라고. 그 맛에 선생님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같아. 나는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의찬이 같은 애들을 가까이서 도울 수 있는 기숙형 학교를 만드는 게 꿈이야."


"오, 그렇지!", "그럼!", "그래야지!", "오~~ (짝짝) 대단하네!" 내 말끝마다 이죽거리며 약을 올리는 A를 쳐다보았다. A의 대답은 공감의 맞장구가 아니었다. '난 너 이해 못 하겠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다른 얘기나 하자.'는 제스처였다. 웃을 타이밍이 아닌데도 내 꿈을 비웃으면서 박수를 치는 A를 보는 순간 화가 났다.


사실 B나 C가 그랬다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A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A에게는 처음 브런치에 '교실남'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 꿈과 포부를 말해왔다. 물론 브런치 필명도 알고 있다. 당연히 그동안 한 번도 내 글을 읽지 않았으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거겠지.


"아······. 너희들 지금 내 얘기에 전혀 공감을 못하고 있구나?"


이미 예상했지만, A뿐만 아니라 B, C도 내 말에 전혀 공감을 하지 못했다. B가 말했다.

"솔직히 난 네 말에 공감이 잘 안 돼. 난 내 한 몸 간수하기도 힘든데, 넌 졸업한 애들한테까지 신경 쓰고. 직장을 그렇게 즐겁게 다닐 수 있는 것도 신기해. 솔직히 네 덕업일치가 부러워."


당시 A에게 화가 났지만, 곧 결혼식도 있으니 좋게 마무리했다.



A의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A의 결혼식장은 집에서 왕복 3시간 거리였다. 솔직히 말해서 가기가 싫었지만 끝까지 책임을 다하기로 했다. 기왕 하기로 한 김에 친구의 결혼식을 축하해주기로 했다. 축가 연습을 하기 위해, 식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


결혼식은 무사히 마쳤다. 축가도 약간의 가사 실수를 하기는 했지만, 관객들에게는 들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마무리했다. 집에 일이 있었기에, 식사를 하지 않고 바로 집으로 출발했다. 출발한 지 20분 뒤, A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우~ 고맙다. 축가 불러줘서. 덕분에 잘 끝났어."

"중간에 가사 실수해서 좀 미안하네. 결혼식 정말 축하한다. 준비한다고 고생했어."

"아, 맞다. 축가비 주려고 너 찾았는데 아까 네가 없더라고."

"아, 괜찮아. 아까 가사 실수도 했는데 뭘. 안 줘도 된다."

"그래? 알겠어. 그럼 다음에 맛있는 거 사줄게."

"······."


그렇게 A와 통화는 끝이 났다. 솔직히 말해서 축가비 거절을 했을 때, 한국인의 정서상, 한 번은 더 물어볼 줄 알았다.

 "에이, 고생은 했는데 축가비는 받아야지. 계좌번호 불러봐." 하면 "에이, 안 보내줘도 되는데······. 고맙다. 그리고 축하한다. 친구야." 하는 훈훈한 그림을 생각했다.


하지만 A는 '다음에 맛있는 거 사줄게.' 한마디로 그동안의 고생을 퉁쳤고, 4개월이 지난 지금도 연락 하나 없다.


아! 연락이 한 번 오기는 했다. 2월 1일, A가 설 인사를 보내왔다.


아무 말도 없고 이모티콘 달랑 한 개를 보내왔다. 이렇게 성의 없는 설 인사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연락을 씹기는 뭐해서 나도 이모티콘 하나를 보냈더니, 똑같이 이모티콘 하나로 답장을 했다. 그 뒤로는 전혀 연락이 없다.


언젠가 본인이 필요하면 또 연락이 오겠지.



20대까지만 했어도 인맥이 많을수록, 인간관계가 넓을수록 좋은 건 줄 알았다. 나와 가치관이 맞지 않더라도,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억지로 관계를 유지하거나 끌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20대 후반에서 30대로 넘어가면서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나의 시간은 한정적이고 그동안 연을 맺은 많은 사람들을 다 만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작정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 나와 가치관이 맞는 사람, 나를 존중해주는 사람과 함께 할수록 내 인생이 더 빛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럼 A는 나와 가치관이 맞는 친구인가? 나를 존중해주는 친구인가? 생각해보았다. A는 그런 친구가 아니었다. A는 필요할 때만 내게 연락을 했고, 내 꿈과 나를 존중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치관조차 맞질 않았다.


혹자는 친구가 잠깐 좀 말실수 할 수 있고, 소홀할 수도 있는 거지 왜 이렇게 예민하냐고 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무려 2년 동안 '그럴 수 있지.'라는 말로 애써 관계를 유지하려 했지만, 이제는 지쳤다. 나를 소중히 대해주는 사람들에게만 시간을 쓰기에도 부족한 내 삶이다.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이 친구에게 더 이상 내 인생의 일부분을 할애하기가 싫다.


A의 성의 없는 설 카톡 인사를 받은 후, 더욱더 A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그렇다. 과거는 어땠을 지는 몰라도, 지금 A와 나는 서로에게 저 카톡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친구일 뿐이다.


그렇게 나는 10년지기 친구인 A를 손절하기로 했다. 슬프지만, A는 내가 자신을 손절했다는 사실을 한참 동안 모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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