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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un 06. 2022

내가 알던 친구는 이제 없다.

오랜만에 12년 지기 친구인 A와 B를 만났다. 둘 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 중 하나였던 재수 시절 만난 친구들이다. 한창 대학입시의 무한경쟁에 찌들어 친구 관계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을 당시에 가장 정서적으로 힘이 되어줬던 소중한 친구들이다.


마지막으로 만난 게 5년 전인가? 당시 난 군 복무 시절 여자 친구에게 환승 이별을 당해 멘탈 붕괴 상태였다. 그런 나를 위로하기 위해, A는 캐나다에서 B는 서울에서 지방의 공군부대로 날아왔다. 멀리서 온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며 떠나버린 인연을 그리워하고 원망하며 울고 불고 했던 기억들이 순간 떠오르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금 A는 어떤 모습일까?'


사실 B와는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같은 직종이기도 하고 시차가 같은 국내에 있기에 적어도 1달에 1~2번은 연락을 해왔다. 반면 A와는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었다. 시차가 반대이기도 하고, A가 한창 사업 때문에 바빴기에 연락하기가 힘들었다. 1년에 한두 번 가끔 전화를 할 때도 A의 목소리와 말투에서 '바쁨'이 느껴져서 연락하기가 꺼려졌다.


5년 만에 만난 A의 외모는 5년 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한창 공부로 찌들어있던 5년 전보다 더 젊어진 거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익숙한 외모와 달리 내면은 전혀 달라져 있었다.


교실남: "이번에 새로운 학교로 옮겼는데, 학년은 6학년 배정받고 업무는 수학여행 배정받았어."

B: "6학년이랑 수학여행이면 엄청 힘든 거 아니야? 너네 학교 6학년 애들 난하다며? 더군다나 이제 코로나 잠잠해져서 수학여행 한창 갈 시기잖아. 그냥 못 하겠다고 하고 다른 업무 받지."

교실남: "또 하나 배운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하려고. 어차피 교직 생활하면서 언젠가 한 번은 해야 할 업무이기도 하고."

A: "딱 회사에서 일하면 호구 잡히기 쉬운 마인드네. 혼자서 영양가 없는 업무 다 맡고 시간낭비만 하는."

교실남: "..." (할많하않)



교실남: "요새 매일 새벽 6시부터 7시까지 우리 반 애들이랑 ZOOM에서 자유 스터디를 같이하고 있거든. 아이들 학습 환경 조성이랑 습관 형성 측면에서 정말 좋은 것 같아."

A: "음... 솔직히 난 이해가 잘 안 돼.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애들이랑 공부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교실남: "애들 뿐만 아니라 선생님인 나한테도 도움이 돼. 아이들이랑 마찬가지로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랑 공부습관을 기를 수 있으니깐. 오히려 내가 아이들한테 도움을 더 많이 받는 거 같아."

A:  "너의 애들을 위한 마음은 리스펙 하는데, 난 솔직히 잘 모르겠어. 네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어. 자기계발이 목적이라면 나라면 차라리 혼자 집중력 있게 공부할 듯."



교실남: "A 네 꿈은 뭐야?"

A: "나? 일단 돈 많이 버는 거. 돈 많이 주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 같다. ㅎㅎ"

교실남: "돈은 많이 벌어서 뭐하게?"

A: "일단 돈이 많으면 내 영향력이 커지고, 내가 하고 싶은 사업이나 프로젝트도 할 수 있게 되고. 돈도 더 벌 수 있고."

교실남: "아, 맞다. 너 8년 전에 돈 많이 벌어서 어려운 애들 위해서 교육재단 만들고 싶다고 했잖아. 그때 그 얘기하는 건가? 그때 너 얘기 듣고 나 되게 감명받았었잖아." 

A: "아... 내가 그런 얘기도 했었나? 기억이 잘 안 나네. 그때는 진짜 생각이 어렸나 보다." 

교실남: "..."


한때 나와 가치관이 비슷하고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했던 A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돈 많이 주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A, 한 때 교육재단을 만들고 싶다고 했으나 지금 나의 아이들을 위하는 행동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A, 이제는 나와 너무나 다른 A.


대화를 하면 할수록 A와의 심리적 격차가 커진다는 것이 느껴졌다.


'안 되겠다. 이럴 때는 추억팔이지!"


교실남: "A야, 우리 10년 전에 제주도 여행 갔을 때 기억나? 그때 새벽에 일어나서 우리 3명이서 하늘에 별 바라보면서 앞으로 10년 뒤에 우리는 뭐가 되어 있을까? 얘기 나눴던 거."

A: "기억이 잘 안 난다."

교실남: "너 예전에 재수 시절에 술 먹고 농구하던 거 기억나? 너 술 취해서 우리 같은 편인데, 네가 내 수비하던 거 말이야."

A: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매번 만날 때마다 말하는 추억 레퍼토리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A. 나에게는 매우 소중한 추억인데, A는 전혀 기억을 못 한다고 하니 살짝 서운했다. 서운함이 커진 건 그다음이었다.


우리 세 명은 한참 동안 MBTI에 대해 논쟁이 붙었다. 내가 MBTI가 ENTP가 나왔다고 하니, A와 B가 절대 아니라고 했다. 참고로 A와 B는 ENTP이다. 자기네들이 보기에는 내가 확실히 ENFP 같다고 했다. 사실 ENTP든 ENFP든 상관없었다. 그때그때 상황, 시기, 주변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게 MBTI이기 때문에. 근데 A가 든 내가 ENFP인 이유가 마음에 걸렸다.


A: "교실남은 ENFP 확실히 맞아. 감성적이고 남들 앞에서 얘기하고 노래하는 거 좋아하고. 특히 경청 잘하고."

B: "맞아. 교실남 남 얘기 들어주는 거 엄청 잘해. 공감도 잘해주고."

A: "인정. 예전부터 그랬어."

교실남: "야, 그거 기억나? 재수할 때, 네가 나한테 진심으로 충고했던 거. 너무 상대방 얘기 안 듣고, 제 할 말만 한다고 네가 나한테 조언했었잖아. 나 그때 네 말 들은 뒤로 진짜 노력한 건데."

A: "그건 기억 안 나고. 아니야, 넌 원래 남 얘기 잘 들어줬어. 원래 천성이 ENFP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A는 알아봐 줬어야 했다. 12년 전, A의 진심 어린 충고를 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10년 넘게 매 번 A의 충고를 떠올리며,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듣고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바뀌었다. 하지만 A는 전혀 기억을 못 했다. 나에게 중요한 기억이 A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서운했다. 그리고 씁쓸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더 이상 내가 알던 친구는 이제 없다는 것을.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듯이 사람 또한 변한다는 것을. 서글프지만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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