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년만에 부모님과의 등산

by 교실남

아침 9시 갑자기 휴대폰의 전화벨이 울렸다. 아빠였다.


"아빠, 아침부터 무슨 일이에요? 혹시 집에 일 생겼어요?"


"아니, 갑자기 너희들 보고 싶어서... 혹시 같이 산에 갈래? 너희 집 근처 00산 어때?"


"엥? 갑자기 산이요? 음... 00(아내)한테 물어보고요."


(아내의 ok 사인)


"00이도 오랜만에 엄마, 아빠 뵙고 싶다고 하네요. 요새 코로나가 심해져서, 학교 말고는 거의 몇 달째 밖에 안 나가고 집에만 있어서 너무 답답했는데 잘 됐네요. ㅎㅎ"


"너희는 아무것도 준비할 필요 없고 우리가 다 챙겨갈 거니깐, 몸만 나온나!"


1시간 반 뒤, 부모님이 차를 타고 우리 집 앞으로 오셨다. 무려 3개월 만의 재회였다. 코로나 때문에 그동안 찾아뵙지도 못 했는데, 이렇게라도 오랜만에 부모님을 뵈니 반가웠다.


"와... 엄마, 아빠 생각해보니깐 가족끼리 같이 산에 올라가는 거 진짜 오랜만이네요. 거의 15년은 더 된 거 같은데요?"


"그러게. 오늘은 00이(아내)도 같이 와서 너무 좋네!"


그렇게 우리의 산행은 시작되었다. 아빠, 나, 엄마, 아내 이렇게 일렬로 산을 탔다. 생각보다 산길이 험했다. 무려 해발고도가 703m였다. 그냥 동네 뒷산인 줄 알았는데, 아빠 말씀으로는 전국 100대 명산 안에 드는 유명한 산이라고 했다.


중간에 평지가 한 번쯤은 나올 거라 기대했지만, 정상까지 계속되는 오르막... 지난주 지리산 천왕봉에 다녀왔다 자랑하던 엄마가 제일 먼저 탈진... ㅋㅋㅋ 우린 흔들바위 옆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KakaoTalk_20201219_213542614_14.jpg 흔들바위를 흔드는 엄마


"여기 안내판에는 엄지 손가락만으로도 바위가 흔들린다고 되어있는데, 하나도 안 흔들리는데?"


"맞네요. 엄마 몸만 흔들리는 듯... ㅋㅋㅋ"


잠깐 휴식을 취하고 다시 정상을 향해 출발.


산길을 올라가면서 아빠와 그동안 못 한 이야기보따리들을 풀었다. 최근에 있었던 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과거 회상 등 끊임없이 대화소재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상에 거의 다다르자 아빠가 말을 했다.


"등산을 봐봐. 천천히 가든, 빠르게 가든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가면 결국에는 정상에 도달하지. 우리 인생도 이와 많이 닮아있는 거 같아. 아무리 속도가 느려도 포기하지 않으면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거 같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네요. ㅎㅎ"


이어지는 아빠의 명언 릴레이.


"요새 매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등산을 하거든? 근데 몇 달 전만 했어도 날이 밝았는데, 요새는 해가 늦게 떠서 어두컴컴 해지는 거야. 한 일주일 후레쉬 없이, 조심조심 오감에 집중해가면서 등산을 했지. 근데 잘못하면 다칠 거 같아서, 그다음부터는 후레쉬를 준비했거든. 근데 이게 이상한 게 후레쉬를 쓰니깐, 후레쉬가 비추는 안전한 길만을 따라가다 보니깐, 이전에 느껴지던 오감의 예리한 감각이나 등산에서 오는 재미가 사라지는 거야."


"흠... 마치 후레쉬가 자식이 안전한 길로만 가길 바라는 엄마와도 같네요. ㅋㅋ 맞아요. 성장하기 위해서는 온실 속의 화초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 예측 불가능한 세상을 경험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인생의 재미를 위해서도요. ㅎㅎ"


아빠와 정신없이 대화하다 보니, 어느덧 정상에 도착! 눈 앞에 펼쳐진 드넓은 광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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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등산을 하면서 보고 느낀 깨알 같은 절경, 그리고 기억에 남을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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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언 연못과 폭포수
KakaoTalk_20201219_213542614.jpg 돈독한 부부관계(지금도 충분하지만...)를 위해, 연리목(붙어있는 두 개의 나무)의 기운을 받는 우리 부모님



이렇게 백만년만의 부모님과의 등산이 끝났다. 가끔씩 이렇게 가족 등산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엄마, 아빠 오래오래 저희랑 같이 등산합시다!



#가족 #등산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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