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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과거 연애편지를 발견하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야 말았다.

by 교실남

작년 6월 브런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당시, 아내에게도 브런치 계정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4,5년 전에 잠깐 썼다고 하는데, 아내는 무려 구독자 1000명대 작가였다! 아내가 주로 쓴 글의 소재는 연애였다.


"자기야, 한 번만 보면 안 돼? 딱 글 한 편만 보자~"


"아니, 그걸 읽어서 뭐해. 글 읽으면 괜히 네 기분만 나빠질 텐데. 절.대.안.돼!"


"방금까지 나한테 구독자 자랑하더니, 글은 왜 안 보여줘? 네가 쓴 글 한 번 읽어보고 싶은데... 어차피 다 지난 일이고 네 웬만한 연애는 내가 다 알고 있잖아. 괜찮아."


"(단호하게) 그래도 안 돼!"


혹시나 내가 볼까 봐 브런치 작가명조차 바꾼 아내. 아내의 단호함에 난 바로 꼬리를 내렸다.




(7개월 뒤)


오늘 아침 이상하게 잠에서 일찍 깼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매일 하던 대로 녹차를 끓이고 감사일기를 쓰고 명상을 했다. 원래는 침실에서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게 루틴이지만, 혹여나 아내가 깰까 봐 거실에서 아이패드로 글을 쓰기로 했다. 브런치 앱을 클릭하니 바로 아내의 브런치 계정에 접속이 되는 게 아닌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터치. 결국 난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야 말았다! 4~5년 전 당시 아내가 쓴 글들의 제목들이 보였다.


'네가 보고 싶다.', '크리스마스날 네게 쓰는 편지'. '네 생일날 네게 쓰는 편지', '가을밤 그리운 너' 등등...


잠깐 본 것을 후회하다가,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기에 기왕 본 거 내용도 보기로 했다. 아내가 쓴 글의 대부분은 대학생 때 사귀고 헤어진 남자친구를 그리워하는 내용이었다. 새파란 20대 때의 아픈 연애스토리. 사실 난 아내의 연애스토리를 아내에게 들어서 다 안다.


예전의 나였다면 아내의 글을 보고 질투심이 올라올 법도 한데, 딱히 질투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당시 아내의 힘든 마음이 느껴져서, 내 마음이 아팠다.


'아... 아내가 이때는 많이 힘들었구나. 신규로 발령받아 직장생활하면서 의지할 곳이 필요했구나... 아내의 연애도 순탄치 않았구나.'



누구나 과거는 있다. 아내도 나도 아픈 과거가 있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없을 것이다. 아내와 내가 이런저런 아픈 연애사들로 인한 정신적 성장이 없었다면, 우리의 연애 또한 순탄치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는 과거의 아내를 위로하고 싶어 졌다. 타임머신을 타는 것 외엔 과거의 아내를 위로할 방도가 없기에, 침실로 가서 현재의 아내를 꼭 안아주었다.


"00아. 5년 전에 많이 힘들었었네... 으이구... 고생했어."


"(졸린 눈을 비비며)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 패드로 글 쓰려고 하다가 우연히 네 브런치에 들어갔어..."


"(잠깐 침묵) 그랬구나..."


"너 내가 질투할까 봐 걱정한 거지? 난 네 글을 읽고 그때의 너를 위로해주고 싶더라. 지금 위로해줄게 ㅎㅎ"


아내를 내 품에 꼬옥 안고 말했다.


사랑해.



#신혼부부 #판도라의상자 #아내의연애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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