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혹시 지금 업무분장하고 있는데, 혹시 체육부장교사 가능할까? 남자 교사가 별로 없어서, 할 사람이 마땅치가 않네..."
"음... 체육부장을 하는 건 괜찮은데, 혹시 체육전담도 맡아야 하나요?"
"그렇지. 웬만하면 전담을 맡아주는 게 좋지. 체육담당교사가 체육업무 맡는 게 좋잖아."
"아... 담임교사를 하면서 체육부장은 안 될까요? 교육적으로 여러 가지 계획해 둔 것들이 있어서, 올해는 담임을 하고 싶은데..."
"그래도 한 번 더 고민해줘요."
그렇게 나는 체육전담교사를 하기로 했다. 어차피 교직생활에서 한두 번은 경험해봐야 할 보직이고, 체육을 좋아하기에 언젠가 한 번쯤은 체육전담교사를 꼭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담임을 못 해서 아쉽긴 했지만, 기왕 한 김에 긍정적으로 즐겁게 1년 간 체육전담 생활을 하기로 했다.
지난 8개월 간 느낀 체육전담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여유 시간이 꽤 많다. 담임이 주로 하는 업무인 학급경영, 학부모·학생상담, 생활지도 등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상당히 시간적 여유가 많다. 수업시수도 5, 6학년 담임보다는 조금 적은 편이다.
둘째, 수업 준비가 담임에 비해 많이 필요 없다. 체육, 영어를 빼고 전과목을 가르치는 담임과는 달리, 체육전담은 딱 체육 한 과목만 수업을 준비하면 된다. 그리고 같은 학년을 가르칠 경우 수업 내용이 같기에, 각 반에 똑같은 수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유로 담임에 비해 수업 준비 시간은 굉장히 짧다.
셋째, 사람을 대하는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적다. 보통 담임을 하면, 동학년 선생님들과의 관계, 학부모·학생과의 관계 등 인간관계에 신경 쓸 것들이 많다. 운이 좋아, 자신과 잘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만, 만에 하나 운이 안 좋아 자신과 상극인 사람을 만나면 최악이다. 전담은 소속이 없거나 애매하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는 나름 자유로운 편이다.
사실 처음 체육전담을 할 때만 했어도, 이렇게 내 눈에 장점들만 보였다. 그동안 바빴던 담임 생활에 비해 나름의 여유로움이 좋았고, 수업 준비를 많이 안 해도 돼서 솔직히 편했다. 남는 여유시간에 교재 연구를 하거나 독서를 할 수 있어서 좋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은 부정편향이라 했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장점보다는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느낀 체육전담의 단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수업을 하고 나면 하루 종일 힘이 없다. 담임의 경우, 담임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경우 아이들의 동의하에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덜 들어가는 미술이나 국어 같은 수업을 할 수 있지만 전담은 그럴 수 없다. 매시간 다른 반 아이들이 오기에, 또 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체육수업이기에 일정한 에너지를 동일하게 유지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교실에서 쓰는 에너지보다 2~3배는 더 든다. 게다가 우리 학교 같은 경우는 절반이 강당이 아닌 운동장에서 수업을 하는데, 땡볕일 때는 정말 죽을 맛이다.
둘째, 아이들과의 교감이 너무 적다. 지금 내가 가르치는 학생의 수는 한 반 약 26명, 3·4·5학년 15개 반, 합쳐서 약 390명이다. 담임을 할 당시, 가정환경, 꿈, 좋아하는 음식, 교우관계, 성적 등 이 아이의 모든 것을 알고 깊이 교감했다면, 지금은 390명의 이름조차 외우기 힘들다. 작년처럼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과 상담도 하고, 저녁에 줌스터디도 하고, 여러 활동들도 같이 하고 싶은데 전담을 하면 시간과 정치적인 문제로 그런 교감들이 거의 불가능하다. 대신 예전부터 했던 방송부 활동으로 그 욕구를 겨우 충족하고 있는 중이다. 셋째, 어디 가서 말 못 할 서러움이 있다. 일단 체육교과를 경시해도 너무 경시하는 게 눈에 보인다. 과학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아이를 상습적으로 체육시간에 보내지 않는 담임 선생님, 전담 수업 이외에 담임 체육시간에 은근슬쩍 다른 과목으로 대체하는 선생님, 학급별 운동회 회의 때 어떻게 운동장 땡볕에서 체육을 2~3시간씩이나 하냐며 그냥 1시간만 하자고 외치던 우리 부장님들...(할많하않)
쓰다 보니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아졌다. 사실 체육전담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여러 학년, 학급의 다양한 특징들을 관찰하는 재미, 체육을 싫어했던 아이가 내 수업으로 인해 체육을 즐기는 것을 보았을 때의 감동, 아이들과 함께 뛰며 체육활동을 할 때의 즐거움 등 체육전담만이 느낄 수 있는 재미들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체육전담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올해 들어 '요새 힘이 없어 보인다. 아파 보인다.'라는 많이 들었다. 체육 전담하면서 운동도 되고, 시간적 여유도 많고, 인간관계 스트레스도 안 받는데 왜 이런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는 아이들과의 교감부재였다.
사실 그동안 담임을 하는 동안 줌스터디, 주말에 등산하기, 데일리 리포트 쓰기, 영화 촬영 등의 여러 가지 다양한 교육활동을 하면서 나는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서 일방적으로 희생을 해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 또한 아이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었다. 아이들의 롤모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좀 더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냈고,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자극을 받기도 했다. 밤낮으로 일과 상담 때문에 몸과 정신이 고됐지만, 내가 노력한 만큼 아이들의 변화가 보이기에 보람도 있었다. 학교 가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즐겁다는 아이의 일기 한 줄이면 없던 에너지도 생기곤 했다. 나 또한 이런 아이들을 보러 학교가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그렇다. 우리는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공생하는 관계였던 것이다.
결론은 하나. 얼른 내년이 되어 담임교사를 꼭 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담임만 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