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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an 13. 2022

#1 선생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학생

(이 글은 2021. 11. 17. 시점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지금은 오후 4시 반. 다른 선생님들이 바쁘게 퇴근 준비할 시간에 난 체육전담실 의자에 앉아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초조하게 이제는 중학생이 된 옛 제자, 의찬(가명)이를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변했을까?'


2년 반 전,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의찬이와의 첫 만남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의찬이의 첫인상은 마치 정글북의 모글리 같았다. 며칠은 안 씻은 듯한 까치집 머리, 매일 입는 똑같은 옷, 그 옷에서 풍겨 나오는 코를 찌르는 듯한 담배냄새 섞인 악취...


의찬이는 도움반 학생이었다. 부모님 없이 조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고, 기본적인 생활습관이나 학습습관이 전혀 케어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양치질조차도 몇 년 만에 처음 해봤다 할 정도였으니...   


의찬이의 생활습관을 바로잡기 위해, 먼저 의찬이 할머니와 상담을 했다. 식습관, 수면습관, 위생 등 기본적인 생활습관에 대해 당부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 저는 빨래도 하고 양치질도 매일 애한테 시킵니더. 양치질은 시켜도 자기가 안 하려고 합니더."


"할머니, 근데 왜 옷에 계속 냄새가 날까요... 초등학교 5학년이면 한창 주변 친구들을 의식하기 시작할 나이인데... 사실 의찬이한테서 냄새난다고 안 다가가려고 하는 친구들도 있거든요. 조금만 더 신경 써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양치질은 의찬이가 하기 싫어하더라도 할머님께서 억지로라도 시켜야 해요. 지금은 어색해서 의찬이가 힘들어하겠지만, 계속하다 보면 습관이 되어서 괜찮을 거예요. 도움반 선생님께 듣기로는 작년에 치아가 10개 넘게 썩어서 치과에서 치료받았다던데 맞나요?"


"네... 맞습니더... 근데 분명 저는 양치질하라고 했습니더..."


"할머니... 의찬이는 아직 어린 아이지 않습니까. 할머니께서 일일이 신경 써주면서 나중에 의찬이가 혼자서도 할 수 있도록 좋은 습관을 만들어주셔야 돼요."


그 뒤로 수시로 할머니께 연락을 드리면서, 생활습관 부분은 어느 정도 케어가 되었다. 더 이상 옷에서도 냄새가 나지 않았고, 양치질도 어느 정도 습관으로 자리를 잡는 듯했다. 문제는 학습습관이었다. 생활습관만큼 학습습관도 최악이었다.


의찬이는 태어나서 한 번도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도움반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이 다하는 일기쓰기, 독서록, 수학 익힘 풀기 등 한 번도 누군가에게 숙제를 해오라는 압박을 받지도 않았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멍을 때려도, 발표를 하지 않아도 도움반인 의찬이에게는 면죄부가 주어졌다고 한다.


의찬이가 몇몇 도움반 친구들처럼 아예 학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상태였다면, 나도 의찬이에게 학습적인 부분은 따로 터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의찬이는 도움반에 있을 수준의 학생이 아니었다. 난독증이라던 의찬이의 국어 진단평가 성적은 미도달이 아닌 도달이었고, 심지어 평균 이상이었다. 수업시간에도 아예 기본기가 없는 수학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과목들은 곧잘 따라왔다.


"의찬아, 너 난독증이라고 하지 않았나? 난독증인데 어떻게 이런 국어 성적이 나올 수 있지? 도저히 말이 안 되는데... 설명 좀 해줄래?"


"..."


알고 보니 의찬이는 일부러 시험을 못 친 거였다. 도움반에서는 의찬이가 모범생이었다. 항상 발표도 의찬이가 다하고 선생님의 칭찬도 의찬이의 독차지였다. 하지만 일반학급에서는 달랐다.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학습이 훨씬 부족했고, 담임 선생님은 의찬이에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의찬이는 일반학급보다는 도움반에 더 머물고 싶어 했기에, 시험을 일부러 망친 것이었다.


이 사실을 바로 또래 친구였던 학교 도움반 선생님에게 알렸다.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도저히 말이 안 되는데... 일부러 시험을 잘 못 본다는 게 말이 돼? 아니야. 아닐 거야."


"의찬이가 자기 입으로 그렇게 얘기했어. 그리고 난독증이라는 애가 읽고 쓰기가 자유롭게 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국어 진단평가도 도달이고. 내가 봐서는 의찬이는 도움반에 있을 애가 아니야. 그동안 도움반에 있었던 게 낙인효과 때문에 오히려 독이 된 거 같기도 해. 의찬이는 일반 학급에 있어도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앤데... 하... 지금 당장 도움반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미 얼마 전에 난독증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힘들고 학기 말쯤 되면 다시 검사를 할 거야. 그때까지는 도움 반에 있어야 해. 그리고 사실 난 아직까지도 의찬이가 일부러 시험을 망쳤다는 게 안 믿겨. 그리고 의찬이가 일반학급에 간다고 해서 잘할 수 있을까? 생활도 엉망이고, 수학도 덧셈, 뺄셈도 제대로 못 하는 수준인데, 차라리 도움반에 계속 머물면서 여러 가지 지원 혜택을 받는 게 낫지 않을까?"


"10년 뒤를 생각해보자. 이대로 의찬이가 도움반에 머문다면, 나중에 의찬이 혼자 자립이 가능할까? 집안 형편도 어려운 상태고, 언젠가 할머니·할아버지도 지금처럼 의찬이를 돌봐주지 못하실 텐데... 결국엔 스스로 자립해야 할 텐데... 당장은 힘들더라도 지금부터 자립하는 연습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럼 네 말대로 일반학급에 간다고 쳐. 의찬이가 과연 일반학급에 가서 잘할 수 있을까? 의찬이한테 신경은 누가 써줘? 일반학급에는 학생수도 많고 그만큼 담임선생님이 신경 써줘야 할 곳이 분산되는데. 초등학교는 그렇다 치고 중학교는 그럼 어쩔 건데? 중학교는 더 케어 받기 힘들 텐데... 차라리 계속 도움반에 남아서 계속 케어 받으면서 안마사 같은 전문직업교육을 받는 게 더 낫다고 봐."


"내가 케어할 거야."


"?"


"내가 케어한다고. 난 충분히 의찬이가 일반학급에 가서도 잘할 수 있다고 봐. 1년 동안 증명해 보일게. 일단 1차 목표, 6학년 때까지 도움반 탈출!"


"도움반 탈출? 너 좀 말이 심하다. 누가 들으면 우리 애들이 다 문제고 도움반이 안 좋은 곳인 줄 알겠다?"


"아... 미안... 그런 뜻으로 말한 거 너도 알고 있잖아~"


서로 다른 의견 탓에 한참을 티격태격했지만, 둘 다 의찬이를 위한다는 마음만은 같았다.



그렇게 의찬이 습관 바꾸기 프로젝트는 시작이 되었다. 수학 사칙연산, 일기·독서록 쓰기, 양치질, 세수 등 기본 생활·학습은 도움반 선생님께서 봐주시기로 했다. 담임인 나는 의찬이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설정에 집중했다. 먼저 의찬이 할머니와 꾸준하게 소통하며 의찬이가 좋은 생활 습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꾸준하게 체크했다. 반분위기 또한 의찬이가 자신감과 성취감을 가질 수 있도록, 서로서로 성장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끔 만드려고 노력했다. 모범학생 제도를 만들어, 매달 제일 많이 발전한 학생에 의찬이가 뽑히기도 했다. 아이들이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영화 만들기, 유튜브 촬영, 주말에 모여서 놀기도 했다. 심지어 의찬이는 영화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반 친구들 또한 의찬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쉬는 시간마다 의찬이가 모르는 공부를 가르쳐 주면서 학습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의찬이가 성취한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축하해주거나, 잘한 부분에 대해서 칭찬하면서 의찬이의 자존감을 높였다.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노력으로 의찬이는 조금씩 변화해갔다. 물론 때때로 위기도 있었다. 중간에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아 공부파업 선언을 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구구단 때문에 의찬이의 집에 경찰이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의찬이도 모르는 사이에, 의찬이는 서서히 변해갔고 그렇게 1년이 지났다.


(5학년 종업식날)

"의찬아, 벌써 1년이 지났네. 시간 참 빠르다. 그치? 선생님은 네가 1년 동안 선생님 말 잘 따라주고, 많이 바뀌어서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 의찬아, 혹시 지금처럼 계속 공부할 마음이 있니? 여기서 좀 더 바뀌고 싶은 욕심 없니? 만약 바뀌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선생님이 온 힘을 다해서 널 도와줄게."


금전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생활적으로든 의찬이가 열심히 변화할 마음만 있다면 모든 지원을 해주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의찬이가 오케이만 한다면 다른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해서 6학년 때도 계속 같은 반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의찬이의 대답은 'NO'였다.


"선생님... 죄송해요... 저는 공부가 너무 힘들어요. 솔직히 지금 당장은 왜 필요한지도 모르겠고. 그냥 예전처럼 게임만 하던 삶이 더 좋은 거 같아요. 학교 수업은 열심히 들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힘들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의찬이는 6학년이 되었고, 더 이상 의찬이는 우리 반 학생이 아니었다. 우리 반 학생이 아닌, 다른 반 학생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실례이기도 하고, 의찬이 또한 원하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그저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의찬이 담임선생님과 한달에 한 번씩 걸려오는 의찬이 할머니의 전화를 통해서 의찬이의 소식을 듣곤 했다. 1학기 원격수업으로 인해 생활 케어가 잘 안 돼서 하루 종일 게임만 한다는 소식, 담임선생님의 케어로 다시 학업에 집중한다는 소식, 2학기부터 공부방을 다니기 시작했다는 소식 등이 들려왔다.


다시 1년이 지나 의찬이는 중학생이 되었고, 더 이상 나는 의찬이를 가까이서 지켜보기가 어려웠다.


'하... 내가 신경 써서 뭐하겠어. 이미 졸업도 했고 본인이 원하지도 않는데... 근데 이 불편한 느낌은 뭐지?'


이상하게 마음이 찝찝하고 불편했다. 때때로 불안감도 올라왔다. 이 불편한 느낌은 의찬이가 5학년 종업식을 한 이후로 계속 나를 괴롭혀왔다. 다른 졸업한 제자들은 좋은 환경과 훌륭한 부모님들이 계시지만, 의찬이는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 때문일까? '5학년 때 담임을 할 때 조금만 더 케어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일까?


고민 끝에 의찬이를 만나보기로 했다. 만나서 그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얘기도 듣고, 옛 제자에게 맛난 저녁도 사주고 싶었다. 학교는 잘 다니고 있는지, 친구들과는 잘 지내고 있는지, 혹여나 가난하다고 옷에서 냄새가 난다고 친구들이 괴롭히지는 않는지,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는 않는지, 공부는 잘하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다.



한창 옛 기억을 떠올리는 와중.


똑똑


조심스럽게 체육전담실 문이 열렸다. 의찬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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