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7년 지기 형 두 명과 오랜만에 저녁식사를 했다. 두 사람 다 신규교사 시절, 배구 동호회에서 만난 인연들이다.
셋 다 배구 동호회 회원이었으니, 배구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중학교 체육교사이자 당시 우리 팀 에이스였던 진호(가명) 형이 말했다.
"교실남, 너는 사실 처음 동호회 들어왔을 때부터 내가 진짜 기대를 많이 했거든. 키도 나쁘지 않고, 점프력도 좋고, 순간 스피드도 빠르고, 왼손잡이에다가 손도 크고. 뭔가 조금만 더하면 잘할 거 같은데, 이상하게 벽을 못 넘더라고. 아쉽다, 아쉬워."
옆에서 지환(가명) 형이 거들었다.
"맞아. 그때 유망주였는데, 지금도 유망주다. 교실남, 만년 루키설 ㅋㅋ"
당시에는 재미로 웃어넘겼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씁쓸한 마음이 올라왔다. 사실 만년 유망주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그런 말을 듣게 된 것은 대학교 농구 동아리를 할 때였다. 빠른 스피드, 왼손잡이, 숙련된 드리블로 난 첫날부터 선배들의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그 첫날이 내 농구 동아리 커리어상 최고의 날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선배들의 똥군기, 힘든 훈련, 1학년이라는 이유로 경기에 못 뛰게 하는 불만감 등으로 동아리에 자주 결석했고, 결국 난 3학년 때까지 만년 루키, 만년 후보일 수밖에 없었다.
노래 실력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 왕복 9시간 거리로 서울에 보컬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어릴 적부터 워낙 노래 부르기에 관심이 많았고, 전문적으로 배워서 실력을 확 올리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컬학원을 다닌 4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보컬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다. 발성에 있어서는 이제 딱히 건드릴 게 없다고, 심지어 노래도 재능이 있다고 하셨다. 물론 농담이겠지만, 차라리 교사 그만두고 같이 동업하자는 얘기까지 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난 더 이상 보컬학원에 갈 수가 없었고, 어느 순간부터 노래에도 흥미를 잃었다. 당연히 노래 실력 또한 퇴보했다. 노래 또한 만년 루키였다.
심지어 글쓰기도 만년 유망주다. 재작년 난 8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왔다. 양질의 힘으로 내 글쓰기 실력은 조금씩 올라갔고, 구독자와 조회수 또한 덩달아 상승했다. 거의 매주 1~2번은 내 글이 다음 메인에 올랐고, 글쓰기 관련 협업 제의도 여러 군데서 받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나는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글쓰기를 아예 멈춰버렸다. 지금은 간간히 글을 쓰고 있는 상태다. 그럼 글쓰기 실력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쉽지만 글쓰기를 시작한 처음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여전히 똑같은 문체와 단어 선택, 뻔한 클리셰...
도대체 난 왜 만년 유망주일 수밖에 없을까? 왜?
만년 유망주에서 에이스로, 아마추어에서 전문가로 가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가 꼭 필요하다. 첫 번째, 꾸준함. 굳이 설명할 필요도, 논란의 여지가 없는 필수조건이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꾸준함이 필수다. 하지만 꾸준함만으로는 부족하다.
두 번째, 의식적 노력. 매일 하던 대로, 습관대로만 하면 절대 실력이 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가 매일 똑같은 창법, 발성, 감성으로만 노래를 꾸준하게 부른다고 해서 노래실력이 늘지 않는다. 목만 아플 뿐이다. 꾸준히 노력해서 좋은 습관을 만들었다면, 다시 무의식을 파헤쳐서 좋은 습관을 더 좋은 습관으로 만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세 번째, 임계점 돌파. 내가 지금의 실력에서 한 단계, 아니 몇 단계 도약을 원한다면 임계점 돌파는 필수다. 지금 내 한계치를 넘어야, 다음에는 내 한계치를 초과하는 한계치가 생긴다. 헬스 트레이닝을 예로 들어보자. 근육 성장을 위해, 매일 똑같은 무게의 덤벨을 꾸준하게 그리고 의식적인 노력을 담아 완벽한 자세로 든다고 치자. 얼마 간은 근육이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성장의 한계가 온다. 한계를 넘어 근육을 성장을 시키고 싶다면, 그 이상의 무게를 드는 것, 즉 임계점 돌파가 반드시 필요하다.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꾸준함, 의식적 노력, 임계점 돌파, 이것들을 그동안의 난 충족시켰을까? 안타깝게도 그 대답은 'NO'다. 배구를 예로 들면, 조금만 아파도 훈련에 빠지기 일쑤였고, 맨날 하던 기술만 쓸 뿐 새로운 기술을 연마할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어느 적정선 이상으로 훈련을 하게 되면, 쉬거나 도망갔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집 안에 방음부스라는 좋은 환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래 연습을 안 한 지 몇 달이 되었고, 의식적으로 발성을 고치려는 노력을 한 지가 언젠지 까마득하다. 꾸준함과 의식적 노력이 없으니, 당연히 임계점 돌파 또한 없었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꾸준함, 의식적 노력, 임계점 돌파. 사실 자기계발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뻔한 이야기를 꾸준하게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는 것을 실천하는 건 정말 어렵고, 결국엔 뻔한 이야기를 꾸준하게 실천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실력 상승을 위해서, 내 꿈을 위해서 그 뻔한 이야기 한 번 꾸준하게 실천해보려고 한다. 왠지 매번 비슷한 다짐을 하는 것 같은 데자뷰가 느껴지지만, 그래도 이로 인해 내가 성장을 할 수만 있다면 몇 번이고 수십 번이고 똑같은 다짐을 해서 내 마음을 다잡을 것이다.
일단 오늘 생애 처음으로 하루 동안 글 4편을 적었다. 아싸! 임계점은 돌파했다. 좋아, 이대로만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