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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an 15. 2022

#3 교사 인생 최대의 난제

(이전화)


그렇게 우리의 계약은 성립이 되었다.


누군가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의찬(가명)이가 초등학생이던 때 신경 좀 쓰지, 왜 이제 와서 뒤늦게 난리법석이냐고.


사실 의찬이가 초등학생 때에도 몇 번이나 학습, 생활 습관 측면에서 도움을 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의찬이는 공부를 조금 하다가 그만두거나, 회피했다. 문제는 동기였다. 의찬이에게는 현상태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나 동기가 전혀 없었다. 의찬이는 아무 제재 없이 하루에 게임을 7~8시간씩 하는 당시의 삶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상태였다.


"저는 공부고 뭐고 다 필요 없고 그냥 지금 게임만 하고 싶어요."   


지금 공부, 생활 습관을 바로잡지 않았을 때, 훗날 미래에 미치는 영향들을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괜찮아요. 책임질 수 있어요. 게임만 하다 죽죠. 뭐."


의찬이의 조부모님 또한 비협조적이었다. 의찬이가 공부를 하다 조금만 힘들어해도 당장 포기하라고, 포기해도 괜찮다고 얘기해서, 나와 의찬이의 의지를 꺾곤 했다.


결국 나도 지쳤다. 그때 여실히 깨달았다. 동기가 없는 상태의 억지 학습은 효과가 적다는 것을. 의찬이 말고도 내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은 많았다. 더군다나 이 학생들은 의찬이와는 달리 다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학생들이었다. 냉정하게 봤을 때, 한정적인 내 시간을 감안했을 때 변화 동기가 있는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도와주는 게 훨씬 효율적,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들었고 의찬이에 대한 욕심을 일정 부분 내려놓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다르다. 이번에는 오히려 의찬이가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싶다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충분히 변화 동기가 있는 상태다. 난 이 부분에서 희망을 보았고, 의찬이를 적극적으로 도우기로 결심했다.



다음 날, 늦은 오후 의찬이가 학교에 찾아왔다. 심층적인 상담을 통해, 그동안의 의찬이의 학습 습관·상태, 생활습관 등을 점검해보았다.


어제 들었던 대로 의찬이는 수학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과목들의 학습 수준은 양호한 편이었다. 문제는 수학이었다. 수학 수준이 초등학교 3학년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2년 반 전 수학 실력과 거의 달라진 점이 없었다.


수학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학습 습관도 문제였다. 집에서는 거의 한 번도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유일하게 공부를 하는 곳이 학교인데, 학교에서조차도 수학 같은 자신이 어려운 과목 수업에서는 잠을 잔다고 했다.


생활 습관 또한 문제였다. 여전히 집에서는 하루에 6~7시간씩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충격.


"의찬아, 요새 양치질은 하니? 너 예전에 양치질 안 해서 많이 혼났었잖아."

"음... 사실...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는 양치질 한 번도 안 했어요..."

"아니! 양치질은 해야지. 너 양치질 안 해서 그때 치과에서 치료도 받았었잖아... 하..."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시간 또한 부족했다. 5년 만기가 되어서 몇 달 뒤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야 한다. 새 학교로 옮기면 접근성도 떨어지고, 나도 새로운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신경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 늦어도 내년 2월까지는 의찬이가 스스로 학습과 생활을 할 수 있게끔 습관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단시간에 학습과 생활 습관을 동시에 잡아야 하는 내 교사 인생 역대 최대 난제였다.



너무 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뭐부터 신경을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적어보자.'


학습 동기 체크,

학습 환경 설정,

의찬이 학원 알아보기,

중학교 담임 선생님과 통화,

조부모님과 상담,

수학 사칙연산 마스터,

수학 문제집 구입,

사회복지관 연락,

의찬이와 같이 올해 목표 세우기,

좋은 습관 만들기(양치질, 매일 도서관 가는 습관, 계획 짜기),

의찬이가 지속적으로 학습을 할 수 있게끔 학습메이트 연결시켜주기


등등...


우선 어제 작성했던 계약서 내용을 수정하기로 했다. 기존의 계약서는 약속을 어겼을 때의 페널티가 전혀 없었다. 또 예전처럼 흐지부지 되거나 오히려 선생님이 학생에게 공부 좀 제발 해달라고 사정하게 되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의찬이와 의논을 해서 내용을 조금 수정했다.

기존 계약서(좌), 수정 계약서(우)


의찬이가 지켜야 할 항목들을 새로 추가했다. 특히 학습 환경 설정에 신경을 많이 썼다. 현재 의찬이의 시간과 변화 동기를 가장 많이 뺏는 것은 게임이었다. 하루에 7~8시간을 차지하는 이 게임을 끊고, 그 시간들의 절반만이라도 학습에 투자를 한다면 의찬이는 엄청난 변화와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 근데 게임은 좀..."

"의찬아, 변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예전부터 선생님이 얘기했었잖아. 의지보다 중요한 게 환경설정이라고. 게임을 확실히 끊어야, 네가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어. 선생님 믿고 조금만 참아보자.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음... 네..."

"다른 항목들은 어때?"

"네, 괜찮은 거 같아요."

"할 수 있지?"

"네."

"목소리가 작은데... 할 수 있지??"

"네!"

"정말로?"

"네!!"

"그래. 믿는다. 의찬아."


"흠... 일단 우선은 수학부터 선생님이랑 같이 잡아보자. 동시에 습관적인 부분들도 조금씩 잡아나가 보자. 내일도 이 시간에 학교로 오면 돼. 아,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선생님이 내년에 학교를 옮기잖아. 선생님 학교도 너네 집이랑 멀어지고, 다른 아이들도 신경 써야 하고... 내년 2~3월부터는 선생님이 지금처럼 직접 너를 가르치는 건 힘들 거 같아. 대신에 선생님이 괜찮은 학원을 알아봐 줄게. "


시간은 한정적인데 할 일이 너무나 많다면 필요한 것이 바로 아웃소싱이다.

아웃소싱이란 내가 시간이 부족하거나 능력이 안 될 때, 제3자에게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고 위탁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 나는 지금 학원에 아웃소싱하려고 한다. 의찬이를 상황을 잘 이해하고 케어해줄 수 있는, 내 용돈 선에서 아내에게 잔소리 듣지 않을 정도 수준 회비의 '착한 학원'이 필요하다!



다음화에 계속.

'원비는 걱정하지 마세요.선생님, 학원비는 걱정하지 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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