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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ul 24. 2022

A 선생님의 착각

나 또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요즘 학교에 회식이 꽤 많다. 남자 교사 모임, 동학년 모임, 작동(작년 동학년) 모임, 작작동(재작년 동학년) 모임 등등... 웬만하면 회식 자리나 술자리에 가지 않는 게 내 원칙이지만, 이번에 학교를 새로 옮겼기에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는 친목도모 차원에서 학교 남자 회식에 참여하기로 했다.


술만 진탕 마실 거라 예상했던 회식 분위기는 생각보다 건전했다. 술을 마시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억지로 술을 권하지 않았고, 나이나 직위 차이에 따른 강요나 허세도 없었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의 인생관, 교육관 등 평소 생각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다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A 선생님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A 선생님은 40대 후반의 남교사로 교직을 단순히 돈을 버는 직업이나 직장으로 생각하지 않고 천직이라고 생각하셨다. 아이들과 교육에 대해 얘기하는 A 선생님의 표정과 말투, 반짝이는 눈빛만 보아도 교육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선생님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대화는 한 시간 반 이상 지속되었다. 사용하시는 교육방법들이 너무 흥미롭고 생소했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A 선생님의 말씀을 경청했다. 아이들의 메타인지력을 길러주기 위해 학급방에 매일 작성하게 하는 플래너, 아이들의 사고력과 논리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수업시간마다 적용을 하고 있다는 하브루타 교육법, 매 수학 시간마다 번호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아이들이 직접 친구들에게 선생님이 되어 개념 설명을 한다는 수학 시간 등 선생님의 독특하면서 노련한 교육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학부모 교육이 인상적이었다. A 선생님은 진정 아이들이 바꾸기 위해서는 학부모님이 우선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셨고 어떻게 하면 학부모 교육을 서로 부담스럽지 않고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오랜 고민 끝에 나온 아이디어가 알림장을 통한 학부모 교육이었다. A 선생님이 직접 보여주신 학급 알림장에는 A 선생님이 그동안 학부모님께 보낸 편지글과 각종 유튜브 링크가 담겨 있었다. 선생님이 학부모님과 공유하고 싶은 교육철학들을 편지나 해당 유튜브 영상 링크를 통해 학부모님들께 전달한다고 말씀하셨다. 가끔씩 부모님과 함께 교육 영상 시청하고 느낀 점 써오기 같은 숙제도 내준다고 하셨다. 실제로 선생님이 보낸 편지와 영상을 보고 달라진 학부모님들도 꽤 있다고 하셨다.


알고 보니 우리 반 아이들 중 4명이 작년에 A 선생님 반(당시 5학년)의 학생이었다. 작년에는 이 아이들이 어땠는지 궁금했다.


"선생님, 하나(가명)는 작년에 어땠어요?"

"하나? 1년 동안 정말 많이 좋아졌지. 학기초에는 심리적으로 엄청 불안정해 보였는데, 가면 갈수록 안정이 되더라고. 숙제도 꼬박꼬박 잘해오고, 학급일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하나가 발표를 정말 잘하더라고요. 선생님 반에 1년 동안 있어서 그런가 봐요. (웃음)"


"음... 그럼 지한(가명)이는 어땠나요?"

"지한이? 아, 지한이가 선생님 반이었구나! 왜인지 요새 애가 표정이 안 좋더라고. 가끔씩 급식소에서 한 번씩 보거든. 지한이 아토피 있는 거 알지?"

"네. 안 그래도 학기 초부터 지한이가 친구들 보는데서 중요 부위를 자꾸 손으로 긁어서 저한테 많이 혼났어요. 아무리 가려워도 때와 장소는 가려야 한다고."


그러자 갑자기 A 선생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지한이는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안 돼. 왜 지한이의 몸이 계속 가려울까를 생각해봐야 해. 내가 의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예전에 책을 봤는데 아토피 같은 경우는 주변 환경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 최근에 지한이를 보니깐, 6학년 올라와서 반에서 스트레스가 많은 거 같더라고. 친구들 관계랑 요새 정서적으로 어떤지 유심히 살펴보는 게 좋을 거 같아."

"아... 그렇구나. 네, 한 번 살펴봐야겠네요." 


A 선생님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모임이 파할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께 아까 말씀하셨던 교육방법들에 대한 자료를 요청드렸더니, 흔쾌히 자료를 보내주신다고 하셨다.


집에 가면서 A 선생님이 나에게 조언해주었던 것들을 되새기며 나 자신을 반성했다. 특히 지한이가 계속 떠올랐다. 정말 지한이는 우리 반에서 정서적으로 힘든 걸까? 정말로 반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몸이 계속 가려운 걸까?


A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A 선생님의 반은 내가 꿈에 그리던 이상적인 반이었다. 다양한 교육방법과 지식을 알고 있는 노련한 선생님, 아이들과 선생님이 화목한 반 분위기, 선생님을 믿고 지지해주는 학부모님 등 이상적인 반의 면모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이상적인 학급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 오늘 내가 A 선생님에게 배울 점은 무엇인가 차근차근 떠올려보았다.



다음날, 문득 작년 A 선생님 반 학생이었던 우리 반 아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궁금했다. 먼저 학급자치위원인 하나(가명)를 불렀다.

"하나야, 선생님이 어제 작년 네 담임 선생님이던 A 선생님이랑 대화를 나눴는데 엄청 좋으신 분이시더라고. 배울 점도 엄청 많고. 여러 가지 좋은 교육방법을 활용하시던데, 그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어땠는지 궁금해서 불렀어. 작년에 어땠어?"


이어지는 하나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선생님, 하나도 배울 거 없어요. 최악이었어요. 다시는 5학년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엥? 어떤 점이 안 좋았던 거야?"

"일단 반 아이들끼리 사이가 엄청 안 좋았어요. 자석이라는 상벌제도 때문에 맨날 싸우고, 그리고 숙제도 너무 많았어요. 별로 도움도 되지 않는 거 같은데... 차별은 얼마나 또 심했다고요. 맨날 발표도 특정한 애들만 시켜주고, 제가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데 칭찬 한마디 안 해주고. 진짜 싫었어요."

"아... 그래도 선생님이 너희들을 위해서 엄청 많이 노력하시는 거 같던데, 네 말 들으면 엄청 섭섭하시겠다. 그때는 숙제한다고 힘들었어도, 분명 알게 모르게 너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네가 지금 발표를 잘하는 것도 작년 선생님 덕분이 아닐까?"

"음...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아무튼 진짜 최악이었어요."


전날 눈을 반짝이며 교육에 대해 열정적으로 얘기하던 A 선생님의 표정과 작년 담임 선생님을 최악이라 말하는 하나의 화가 난 표정이 교차되면서 순간 당혹스러웠다.


'하나만 그런 건 아닐까? 다른 아이들의 얘기도 들어봐야겠다.'


A 선생님이 걱정하시던 아토피가 심한 지한이를 불렀다. 지한이에게도 똑같이 물었다.

"작년 선생님이요? 음... 그냥 그저 그랬어요.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고. (한참 고민하더니) 선생님,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돼요? 좀 별로였어요. 제가 그때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았거든요. 반 아이들이랑도 사이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고. 제 동생이 4학년이어서 제가 가끔 그 선생님 반 애들이랑도 얘기하는데, 지금 그 반 아이들도 그 선생님 다 싫어해요."


나머지 두 명의 학생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끔찍했어요. 다시는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눈을 반짝이며 25년에 걸쳐 쌓아 온 본인만의 교육 노하우를 알려주시던 A 선생님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계속 조언을 구하고 질문을 하는 후배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A 선생님의 인자한 표정도 떠올랐다.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엄청난 자부심을 가진 A 선생님이 이 아이들의 말을 들으신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 입장을 바꿔서 A 선생님이 나라고 상상해보았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가르치고 아이들을 위해서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정작 아이들의 반응은 예상한 반응과 정반대라면? 교직에 대한 회의감이 들 거 같았다.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 거 같았다.


한창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에, A 선생님에게서 쪽지가 왔다. 전날 요청드린 A 선생님의 학급경영 자료와 선배교사로서 항상 응원한다는 내용의 장문의 쪽지였다. 말로 설명 못 할 어떤 불안감에 차마 파일을 열어볼 수가 없었다.



A 선생님과의 이야기는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교육의 방향성이 맞는지? 과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교육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교육인지? 아이들과 충분히 소통하고는 있는지? 무엇보다 나 혼자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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