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남 May 06. 2022

아이가 180도 변화한 이유

최고의 교육은 모델링!

얼마 전, 이제는 중2가 된 제자 수연(가명)이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수연이는 초등학교 4, 5학년 2년 동안 같은 반 학생이었다. 5, 6학년 방송부 활동까지 한 것을 감안하면, 거의 4년을 나와 함께 한 셈이다. 6개월 전부터는 내가 운영하는 멘토링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멘토링 활동에서 나누지 못했던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이번에 새로 이사 가서 다니는 중학교는 마음에 드는지, 학교 생활에 힘든 점은 없는지, 교우관계는 어떤지, 꿈은 여전히 웹툰 작가인지.


수연이는 내 제자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환골탈태한 학생이다. 초4 때, 처음 본 수연이는 사사건건 친구들을 기분 나쁘게 하는 깐죽이에다가, 매일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게으름뱅이였다. 예를 들면 항상 이런 식이 었다.


-숙제 검사할 때-

"숙제 안 해온 사람 손 들어보세요."

"(눈치 없이) 선생님, 저는 숙제 다 했어요! 숙제해왔어요!"

(숙제를 해오지 못한 친구들이 일어난다.)

"(그 와중에도)(중얼중얼) 나는 숙제했는데. 나는 숙제했는데."

(친구들의 화난 눈초리)


-꿈에 대한 얘기-

"선생님, 저는 웹툰 작가가 꿈이에요."

"그래? 혹시 꿈을 위해 따로 실천하고 있는 게 있을까?"

"음... 없어요. 그래도 저는 꿈을 이룰 거예요!"


-방송실에서-

(아침방송 중)"선생님, 갑자기 기계가 작동이 안 돼요. 어떡하죠?"

"(당황) 아, 잠깐만 있어봐. 선생님이 해결해볼게."

"오! 방송사고다! 드디어 방송사고다!"

(열심히 장비를 손보고 있는 와중)

"아직도 못 고쳤네. 우리 방송 망했다. 방송사고다!"

"이수연! 조용히 못해? 너는 지금 이 상황이 즐거워?"


수연이는 깐죽거림 대마왕이었다. 시도 때도 없는 깐죽거림 때문에, 교우관계가 급격히 악화되기도 했다. 그랬던 수연이가 어느 순간부터 확 바뀌었다. 더 이상 깐죽거림은 없었다. 대신 차분하고, 친구들의 마음에 잘 공감해주고 배려해주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방송반에서 수연이는 일을 맡기기 불안한 학생이었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가장 믿음직한 학생이 되어 있었다.


수연이는 매번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습관도 개선했다.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본인이 목표한 것은 실천하려고 노력했고, 웹툰 작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몇 년 동안 웹툰 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꿈은 뭐야?"

"음... 요새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고민이에요. 웹툰 작가도 좋지만, 성우도 괜찮은 거 같고.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제가 무엇에 재능이 있고, 무엇을 잘하는지. 일단은 지금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려고요.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일단 뭐라도 하는 게 중요하다고. 꿈을 잘 모르겠으면, 일단 경험을 많이 쌓아서 훗날 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넓혀 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정말 많이 바뀌었다. 그 깐죽이 수연이가 이렇게 성숙한 대답을 하다니. 문득 수연이가 이렇게 바뀌게 된 계기가 궁금해졌다.


"수연아, 네가 바뀌게 된 계기가 따로 있을까? 분명 4학년 때까지만 했어도 너 엄청 깐죽이었잖아. 지금은 엄청 차분하고, 교우관계도 좋고, 실천력도 강하고..."

"다 선생님 덕분이죠."

"에이, 무슨."

"선생님 덕분 맞아요. 선생님이 조언해주시는 대로 실천하니깐 이렇게 됐어요."

"음... 그럼 4학년 때는 왜 그 모양이었던 거야? 그때도 선생님이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줬을 텐데...?"

"선생님,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돼요?"


"선생님,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돼요?"


"어, 말해봐."

"사실 초등학교 4학년 때에는 솔직히 선생님이 못 미더웠어요. 선생님이 모든 조언들이 그냥 잔소리로 밖에 안 들렸어요. '본인도 잘 실천 못 하면서 왜 우리들한테 잔소리지?'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아마 애들도 다 비슷하게 생각했을걸요? 그때의 선생님은 정말 별로였어요."


 "그때의 선생님은 정말 별로였어요."


맞다. 당시 수연이가 4학년이던 2018년은 내 인생 최악의 시기였다. 당시 난 아이들에게 모범적인 선생님이 아니었다. 현실도피를 위해, 하루 10시간 이상씩 게임을 했고 일주일에 3번 이상 술을 마셨다. 운동, 독서, 명상 같은 나를 위한 자기계발 따위는 없었다. 부정적인 생각들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것에 중독되었다. 당연히 아이들 눈에도 보였을 것이다. 매 번 지각을 하는 선생님, 일기검사를 제때 해주지 않는 선생님, 밤늦게까지 게임을 해서 눈이 충혈되어 있는 선생님, 뭔가 기운이 없어 보이는 선생님. 그 시절 나는 최악의 선생님이었다.


2019년, 나는 나 자신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당시 쓸데없이 내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했던 술과 게임을 아예 끊었다. 대신 그 시간들을 명상, 독서, 운동 같은 의미 있는 시간들로 채웠다. 3월 초, 새로운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말했다.

"얘들아, 작년에 선생님이 최악의 선생님이었다는 거 선생님도 인정해. 하지만 올해는 다를 거야. 선생님이 변화하는 모습, 직접 보여줄게. 기대해도 좋아."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동안 나의 잘못들 그리고 앞으로의 다짐을 들려주었다. 먼저 학교에 지각하지 않고 일찍 출근하기 같은 작은 행동들부터 실천했다. 작은 실천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이 올라갔고 기존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에도 도전하게 되었다. 뮤지컬, 영상 대회, 유튜버, 브런치 작가 등 평생 하지는 않을 것 같은 것들에 도전하며 아이들에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불과 몇 달만에 학교에서의 내 이미지는 완전히 바뀌었다. 무기력하고 폐인 같은 선생님에서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선생님으로 말이다.


"그때 선생님이 바뀌시는 걸 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었어요. 저는 선생님이 변화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때부터 선생님에 대한 믿음이 생겼던 거 같아요. '아, 이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나도 충분히 바뀔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했고요. 그 뒤로는 선생님이 조언해주시는 건 다 따랐어요. 선생님도 바뀌었으니, 나도 바뀔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도 생겼고요. 그리고 실제로도 선생님의 조언을 잘 따르니, 바뀌더라고요. 저를 이렇게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선생님."




아이는 생존 시스템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주변 어른들을 모방하고 따라 한다. 특히 아이들은 부모님과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고,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을 닮는다. 부모가 TV 보는 것을 좋아하면, 아이들도 TV 보는 것을 좋아할 가능성이 높다. 선생님이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 반 아이들도 선생님의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학습했을 확률이 높다.


수연이도 마찬가지다. 4학년 때에는 담임 선생님의 무기력함과 부정적 행동들에 무의식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담임 선생님에 대한 믿음 또한 없었기에, 아무리 수연이에게 올바른 조언을 해주어도 소 귀에 경읽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5학년 때는 달랐다. 담임 선생님의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 긍정적인 태도, 실제로 변화하는 모습 등은 수연이에게 알게 모르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또한 변화하는 담임 선생님을 보고 자신도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실제로도 변화했다.


수연이와의 대화를 통해, 조금 더 확신이 생겼다. 최고의 교육은 모델링이라는 것에. 아이들에게 공부 좀 하라고 잔소리 하기 이전에 본인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아이들에게 게임 좀 그만하라고 뭐라 하기 이전에 본인부터 TV를 끄자.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말하기 이전에 본인부터 꿈을 가지고 이뤄나가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자.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육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등학생의 귀여운 만우절 장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