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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Oct 03. 2022

엄마가 엄친아 얘기를 꺼낼 때의 현명한 대처법

오랜만에 엄마와 통화를 했다.


"상은(가명)이라고 기억하지? 너랑 같은 초등학교 나온 애. 걔 엄마는 음악 학원 했었고."


"아~ 초딩 학예회 때, 저랑 같이 바이올린 켰던 애 말하는 거 맞죠? 근데 왜요?"


"오늘 우연히 상은이 엄마를 만났거든. 상은이는 엄청 잘 됐다고 하더라. 서울에 대학 다니다 외국에 유학을 갔다 왔는데, 요새 잘 나가는 컴퓨터 공학 전공을 한 거야. 기업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난리였다고 하더라. 연봉이 1억이 넘는다고 하더라."


"아~ 네... 잘됐네요."


"그리고 상은이 엄마는 몇 년 전에 박사학위 따서 강의 다닌다고 하시더라. 박사 학위만 따면, 강의할 곳이 엄청 많다고 하더라. 이곳저곳에서 많이 강의 요청을 해서, 한 달에 적어도 800 이상은 번다고 하더라고. 상은이 엄마가 네 능력에 그냥 초등교사하는 건 좀 아깝다고 꼭 박사학위는 따라고 추천하더라. 혹시 마음 있으면 자기가 아는 교수 꼭 연결시켜준다고. 혹시 지금이라도 대학원 들어가서 교수를 목표로 공부해보는 건 어때?"


이 짧은 대화를 통해 나는 두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시지만, 엄마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쉬워하고 계셨다. 아들보다 공부 못하던 아들의 친구들은 SKY 나와서 좋은 직업 가지고 돈 많이 벌고 잘 살고 있는데, 그렇게 공부 잘하던 아들은 겨우 초등교사 밖에 되지 못한 것을 말이다. 가끔씩 내 학창 시절 어울려 다니던 엄마들을 만나면 자존심이 많이 상하시는 모양이었다. 상은이 엄마처럼 상대방을 위하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자식 자랑, 본인 자랑을 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두 번째는 달라진 내 마음이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했어도, 엄마가 이런 식의 얘기를 꺼내면 왜 그런 얘기를 꺼내냐고 엄마에게 화를 내거나, 상대방과 비교하며 '왜 그때 더 열심히 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이것밖에 되지 못할까?' 하면서 하루 종일 자기 비난과 자기혐오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더 이상의 열등감도 시기·질투도 없었다. 그냥 '그 친구가 노력을 해서 좋은 곳에 취직했구나!' 하는 생각 정도만 들었다.


몇 년 전, 밑바닥을 치는 슬럼프를 겪으면서 나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타인이 나를 꼭 인정해야 행복할까? 아니다.

돈이 많아야 행복할까? 아니다.

명예, 지위가 높아야 행복할까? 아니다.


그 순간 나의 행복은 타인이 아닌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난 지금 이 순간 행복해지기로 결정했다.


우선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감사했다. 건강한 내 몸에, 항상 나를 믿어주는 아내가 있음에, 나의 가르침에 잘 따라오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매 순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 감사했다. 감사한 것들을 생각하며 이미 난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더 이상 내 행복을 타인이나 외부 상황·조건에 맡기지 않기로 결정했다. 우리 사회는 조건부 행복을 강요한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거야. 아기를 낳으면 행복할 거야. 승진을 하면 행복할 거야. 사람들은 난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이런저런 조건들이 갖춰지면 더 행복할 것이라고 감언이설 한다. 정말로 이러한 조건들이 행복에 꼭 필요한 것들일까? 오히려 난 이것들에 집착하는 것이 잠재적 불행의 씨앗이라고 생각했고, 더 이상 외부조건이나 상황들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대화로 돌아가서) 난 엄마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 저는 교수가 되는 거에는 딱히 관심이 없어요. 사회적 명예? 지위? 돈? 딱히 필요 없어요. 저는 지금 제 모습과 생활에 정말 만족하거든요. 하루하루 저로 인해 우리 반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글쓰기나 배드민턴 같은 취미생활도 너무 재미있고, 아내랑 이것저것 하는 활동들도 너무 즐거워요. 전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요. 솔직히 교수를 한다고 해서, 돈을 더 많이 번다고 해서 이보다 더 행복해지진 않을 거 같아요. 이 정도면 엄마 아들 잘 살고 있는 거 아닐까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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