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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Apr 11. 2023

21살 때, 27살 형은 완전 어른인 줄 알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교내 오케스트라에서 언제나 어른스럽게 후배들을 챙겨주는 6학년 선배들을 보며 '언젠가 나도 6학년이 되면 저런 멋진 선배가 되겠지!'라고 선배들을 선망했지만 막상 6학년이 되고 나니 그 선배들은 후배들이 있었기에 어른스러운 척 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들 또한 초딩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잔뜩 인상을 쓴 채 인생의 교훈을 들려주던 학생회장 형이 후광이 비쳐 보일 만큼 멋있어 보였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 형의 말의 절반은 헛소리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운동 동아리 선배들이 인생에 대해서 쥐뿔도 아는 것도 없는 게 까분다고 면박을 주었을 때 선배에게 죄송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었으나, 막상 고3이 돼 보니 그 선배들도 인생에 대해서 쥐뿔도 아는 게 없다는 걸 알았다. 그때 일말의 미안한 감정조차 사라졌다.


대학교 1학년 때, 같은 동기였던 27살 형은 완전 어른인 줄 알았다. 그 형에게 연애부터 시작해서 진로, 재테크 등 다양한 고민상담을 했으나, 막상 내가 27살이 되어 보니 20대 초반 애들에 비해 약간의 경험이 더 있을 뿐 27살 또한 별다르지 않았다.


신규교사로 발령받았을 때, 30대 초반 교사들이 얼마나 멋있어 보였는지 모른다. 수업부터 일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해 보였고 내가 그 경지까지 다다르기까지는 까마득해 보였다. 하지만 막상 30대 초반이 되어보니, 신규교사에 비해 약간의 노하우가 있을 뿐 그렇게 차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초등학생 때, 선생님은 나에게 완벽한 존재였다. 지덕체 모든 면에서 말이다. 하지만 막상 내가 선생님이 되어보니 글쎄...


이쯤 되면 합리적 의심이 생긴다. 어쩌면 우리는 가면을 쓰고 하나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선배는 선배의 역할을 연기하고, 부모는 부모의 역할을 연기하고, 선생님은 선생님의 역할을 연기하고...


학교의 정점에서 군림하던 고3이 졸업을 해서 대학에 들어가면 순진하고 어리바리한 신입생을 연기하고, 그 신입생이 4학년 선배가 되면 인생 다산 베테랑 선배를 연기하고, 그 선배가 취업에 성공해 사회생활을 하면 다시 순진하어리바리한 사회초년생을 연기하고...


 어쩌면 우리는 각본 없는 드라마에서 메서드 연기를 하고 있는 연기자는 아닐까?



#어른 #가면 #매일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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