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재수 시절 공부가 너무 힘들 때마다 난 대학생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여자친구와 다정하게 캠퍼스를 거니는 모습, 수험생활 때문에 못했던 취미들을 즐기는 모습, 선후배들과 함께 낭만 있는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는 모습 등등. 대학생만 되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동안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한꺼번에 보상받고, 행복한 생활이 계속될 거라 생각했다.
인고의 시간이 흘러 난 그토록 바라던 대학생이 되었다. 책상 앞에서 입을 헤 벌리며 상상하던 대부분 것들을 이뤘다. 과잠을 입고 예쁜 여친과 캠퍼스를 거닐고, 그토록 하고 싶었던 취미였던 노래도 배웠다. 정말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깐일 뿐,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고민, 걱정거리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즐거웠던 학교 생활도 지겨워지기 시작했고, 여자친구와 함께하는 것도 재미가 없어졌다. 더 이상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더 좋은 학교를 다니고, 더 괜찮은 여자친구를 사귄다면 다시 내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고민했다.
대학교 3학년,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내가 바라던 이상형에 가까운 아이였다. 정말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친구의 단점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더 괜찮은 여자친구는 없을까 고민했다.
대학교 4학년, 취업의 시즌이 다가왔다. 임용공부는 생각만큼 힘들었다. 힘든 와중에 틈틈이 임용고시 이후에 펼쳐질 행복한 삶들을 상상했다.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취업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 아이들과 하루하루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는 행복한 교사생활을 꿈꿨다. 운이 좋게 한 번에 임용을 합격을 했고 상상했던 것들은 현실이 되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친절했고, 학부모님들과 아이들도 나를 좋아했다. 하루하루 학교생활이 너무나 즐거웠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어느 순간부터 난 더 좋은 학교는 없을까, 더 괜찮은 아이들은 없을까 하며 지금의 학교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이때부터였던 거 같다.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반복되어 온 만족-불만족 패턴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한 때가.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함 → 무언가를 간절히 바람 → 이룸 →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불만족 → 또 무언가를 간절히 바람 (무한반복)
무언가를 더 성취하고, 더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바라던 것을 성취하거나 얻으면 그 기쁨은 잠시, 잡을 수 있을 거 같았던 행복은 너무나도 쉽게 내 손아귀에서 달아났다.
오랜 시간 동안 잡고 잡히고 달아나는 이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했고 몇 년 전에야 겨우 방법을 찾았다.
평소에 지금 있는 것들에 감사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면, 현재에 만족하게 된다. 현재에 만족을 하게 되면 만족-불만족 패턴이 깨진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그럼 현재에 만족을 하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는 거 아닌가요? 그동안 만족-불만족 패턴이 있었기에 이만큼의 성장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지금의 상태에 감사하고 현재에 만족한다고 해서 성장과 발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래에 대한 걱정, 불안에 쓰던 에너지를 현재에 가져옴으로써, 지금 이 순간에 좀 더 충실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는 실체가 없다. 과거는 과거의 현재의 나가 경험한 것들이고, 미래는 미래의 현재의 나가 경험할 것들이다.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난다. 즉 우리에게는 현재, 지금 이 순간 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에너지를 집중하게 되면, 삶의 밀도가 높아진다. 평소 걸음걸이와 말에 깊이가 생기고, 지금 이 순간하고 있는 일들에 충실하게 된다. 이러한 현재는 쌓이고 쌓여, 훗날 내가 바라던 어느 시점의 '현재의 나'가 된다. 여기에는 더 이상 걱정, 불안, 불만족은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나와 현재의 만족에 기반해서 이것저것을 이루는 재미만 있을 뿐이다.
오늘도 나는 만족-불만족 패턴에서 벗어나,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한다.
항상 나를 챙겨주고 소중한 벗이 되어주는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가족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에 감사합니다.
나를 잘 따르는 아이들, 선생님을 믿어주는 학부모님들, 든든한 동료 선생님들. 이렇게 행복한 교사 생활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