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화)
어른들은 대부분 아이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하라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강요하거나 주문한다. 허나 정작 그 말을 하는 어른들은 도전은커녕 현상 유지도 버겁다. 나 또한 내 성장이 정체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고, 가슴이 뛸만한 새로운 도전을 해본 게 언제인가 가물가물했다.
말로만 아이들에게 도전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 앞에서 중국의 한 학교에 초빙교사로 지원하려고 한다고 얘기했다. 선생님이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그리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좀 더 인생을 즐겁고 풍요롭게 살고 싶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아이들의 반응의 시원찮았다. 표정에 뭔가 불만이 있어 보였다. 그러자 반에서 제일 장난꾸러기인 지환이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그냥 안 가시면 안 돼요?
지환이가 가지 말라고 얘기를 꺼내자, 다른 아이들도 이구동성으로 가지 말라고 말했다.
"선생님, 굳이 해외에 안 나가셔도 도전은 많이 할 수 있잖아요. 그것도 왜 중국에 가셔서... 그냥 저희는 선생님이 학교에 계속 계셨으면 좋겠어요. 내년에 졸업하고 학교에 선생님 뵈러 왔는데, 선생님 안 계시면 너무 슬플 거 같아요. 가지 마세요."
아이들이 이렇게 말을 하니 뭔가 마음이 안 좋았다. 애지중지하는 내 새끼들을 놔두고 가는 느낌이랄까. 마음이 불편해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얘들아, 만약에 너희들이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할 거 같아? 선생님과 제자 이런 관계 제외하고 말이야. '초빙교사에 도전한다. 안 한다.' 해서 손 들어 볼까?"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 번 초빙교사에 도전해 본다에 손을 들었다. 선생님과의 헤어짐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동하고 설레는 것이 있으면 도전하는 것이 맞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했다.
아직 합격을 한 것도 아닌데 이런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좀 웃기긴 했지만, 그때의 우린 정말 진지했다.
오후 전담 시간에 잔뜩 긴장한 채 교장실을 찾았다. 교장 선생님께서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를 않았다. 카페에 다른 선생님의 글을 보니, 교장 선생님이 허락을 안 해주시는 경우도 있었다. '설마 우리 교장 선생님은 아니겠지?'라는 불안감을 가지고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오~ 0 선생, 무슨 일이야?"
"저...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초빙교사에 한 번 지원해보려고 합니다."
"(깜짝 놀라며) 어? 초빙교사? 어디?"
"중국에 가려고 합니다. (지도를 보여드리며) 이곳입니다."
"우와! 젊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멋진 생각을 했데? 너무 멋진데? 그래, 지금 나이 때 큰 세상 한 번 경험해 봐야지. 이것도 경험해 보고 저것도 경험해 보고. 너무 한 곳에만 있어도 안 좋아. 진짜 멋지다. 응원한다."
"교장 선생님, 그럼 저 지원서 써도 되는 거죠?"
"당연하지. 미리 가서 내 자리도 한 번 봐놔. 괜찮으면 나도 같이 넘어가게.(웃음)"
오히려 서운함이 느껴질 만큼 너무나도 쉽고 빠르게 허락을 해주셨다. 매주 함께 배드민턴도 치고, 음악(노래, 작곡)도 좋아하시는 교장 선생님과 나는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내 마음을 좀 더 잘 이해해 주셨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교감 선생님의 반응은 교장 선생님과 달랐다. 힘들게 왜 사서 고생이냐고 그냥 안 가면 안 되냐고 가서 아프면 어떡하냐고 걱정해 주셨다. 마치 먼 타지에 떠나는 아들을 대하듯이 말이다.
도전을 응원해 주시는 교장 선생님, 친아들처럼 걱정해 주시는 교감 선생님 모두에게 감사했다.
지원서와 추천서를 무사히 작성하고 중국 학교 이메일로 보냈다. 일주일 정도 뒤에 1차 서류 합격 소식이 2차 면접 소식과 함께 날아왔다. 2차 면접은 비대면(ZOOM)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면접이라니! 임용시험 이후로 처음 보는 면접이었다.
'음... 면접은 어떻게 준비하지?'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