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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Oct 12. 2023

한때 몰래 학교를 탈출했었던 제자의 연락

"선생님, 오랜만에 선생님이랑 연락하고 싶어서 문자라도 보내봅니다."



올해 중1이 된 지훈이에게서 졸업하고 1달 반 만에 문자가 왔다. 지훈이는 작년 한 해 동안 가장 내 속을 많이 썩인 아이이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지훈이와의 첫 만남이. 뿔테 안경에 단정한 짧은 머리, 순박해 보이는 웃음까지. 성격과 태도 또한 좋았다. 지훈이는 반에서 적극적으로 선생님을 도우는 친구들 중 한 명이었다. 게다가 성실하기까지 해서 정말 나무랄 데 없는 착한 학생이었다. 이 아이와 함께라면 앞으로 1년이 든든할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반 최고 모범생이었던 지훈이는 2학기 때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먼저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생기면서 외모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력도 나쁘면서 렌즈도 없이 안경을 벗고 다니고 앞머리는 얼굴의 1/3을 덮을 만큼 기르고 다녔다. 검은색 옷과 핏에 맞는 옷만 고집하는 등 옷차림에도 과하게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옷 때문에 매일 아침 엄마와 싸운다고 했다.


수업 태도 또한 나빠졌다. 1학기 때 매 번 숙제를 성실하게 해 왔던 지훈이는 2학기 때부터 숙제를 자주 빼먹는 모습을 보였다. 수업 시간 중 발표 횟수 또한 현저하게 줄었다. 한때 열정적이었던 지훈이의 눈빛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멀어졌다. 1학기 때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조잘조잘 잘 얘기하곤 했는데, 2학기 들어서는 아예 말을 안 한다고 했다. 상담 시간에 지훈이 어머니께서는 자꾸만 거리를 두는 아들이 너무 낯설고, 서운한 감정이 느껴진다고 하셨다.


지훈이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고, 어느 순간부터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작은 거짓말이었다.

"선생님, 저 숙제했는데 까먹고 집에 놔두고 왔어요."


처음 거짓말이 들켰을 때, 난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볍게 주의를 주고 용서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지훈이의 행동은 전혀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거짓말을 하는 빈도나 거짓말의 크기가 늘었다. 점심시간에 학교교문 밖에 탈출해서, 편의점에서 몰래 라면을 먹고 들어온 날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한 척 거짓말하는 지훈이를 보고 상황의 심각성을 느꼈다.


"(샤우팅) 김지훈!!!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날 나는 정말 많이 화가 났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아이들에게 끝까지 믿음을 줬던 내가 호구 같이 느껴졌다.


아이들에게 벌청소를 하고 반성문을 쓰게 했고, 깊은 대화도 나누었다. 그날 이후 몇몇 아이는 바뀌었지만 지훈이는 아니었다.


수학여행에 가서도 지훈이는 나에게 거짓말을 했고, 지훈이 어머니와 선생님인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물론 그 뒤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은 보여줬지만, 외모에 집착하는 모습이나 어딘가 모르게 살짝 삐딱한 태도는 여전했다.


그랬던 지훈이가 1개월 반 만에 안부 연락이 온 것이다.

제자 지훈이와의 연락


지훈이는 최근에 앞머리를 자르고 안경도 다시 낀다고 했다. 머리를 자르고 안경을 낀다는 건 외모를 중시했던 지훈이에게는 정말로 큰 변화였다. 이유를 물어봤다.


"2학기 때 모습을 생각하니깐 너무 흑역사여서... 중2병처럼 행동하고 여러 가지 잘못을 저지른 게 안 좋다는 걸 깨달아서 다시 고치려고요!"


"좋은 생각이네 ㅎㅎ 뭐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깨달은 네가 있는 거니깐 너무 자책하지는 말고, 앞으로 또 잘하면 되지."


제자 지훈이와의 연락


그 뒤에도 한 달에 한두 번씩 지훈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학교 생활, 농구, 공부 상담 등 다양한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무엇보다 학교 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9월이 되자 시험을 친다고 했다. 시험공부로 꽤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사실 지훈이가 6학년 때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시험 성적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9월 중순, 지훈이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 중간고사 시험에서 평균 96점을 받았다고 말이다. 96점이라니! 정확한 등수는 모르지만 전교에서 잘한 축에 속한다고 했다. 지난 반년 동안 지훈이가 어떤 마음으로 변화하고 어떻게 노력했는지 알기에, 뿌듯함과 대견함이 느껴졌다.



제자들을 가르치다 보면 지훈이 같은 경우가 자주있다. 잘못을 저지르고 혼났을 당시에는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가, 시간이 지나고 그때의 사건과 선생님의 말씀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는 경우가.


앞으로도 지훈이가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이루면서 즐겁게 인생을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 본 콘텐츠에 등장하는 인명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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