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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에서 전교부회장까지 변할 수 있었던 이유

by 교실남

오늘 들려드릴 세 번째 이야기 또한 신규교사 발령 첫 해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2015년 3월 교직에 첫 발령받았을 당시, 제가 맡은 학년은 4학년이었습니다. 앞으로 1년 동안 아이들과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 생각에 잔뜩 기대에 부푼 가슴을 안고서 교실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교실 문을 열자마자 제가 본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교실 안에서는 2~3명의 아이들이 덩치가 왜소한 한 아이를 발로 차고 있었습니다. 왜소한 아이는 욕설로 대응하고 있었고요.

1(출처 pixabay).jpg


그 장면을 목격하자마자 당장 아이들을 뜯어말렸습니다. 정말 당황스러웠지만, 애써 당황하지 않은 척 교실을 진정시킨 후, 아이들에게 제 소개를 했습니다. 간단하게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학급 규칙에 대해 설명한 뒤, 자리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자리 바꾸기는 제비 뽑기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사건이 터졌습니다. 한 아이가 방금 보았던 덩치가 왜소한 아이랑 짝꿍 하기 싫다면서 옆에 앉아 있던 왜소한 아이를 밀쳐 넘어뜨렸습니다. 순식간에 교실은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민석(가명)이와 저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개학 첫날부터 멘붕이었습니다. 재미있는 1년은 무슨, 최악의 1년이 될 거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어떻게 하면 우리 반 분위기를 다시 안정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무엇보다 민석이의 왕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몇 주 간 아이들을 주의 깊게 관찰했습니다. 우리 반의 왕따 문제를 냉정하게 살펴보았을 때, 피해자와 가해자 둘 다에게 책임이 있었습니다. 먼저 민석이는 반 아이들이 싫어할 만한 요소를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말끝마다 욕설에, 모둠 활동에서도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했고, 숙제도 제때 해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반 아이들에게도 잘못이 있었습니다. 모둠 활동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민석이를 배제했고, 몇몇 아이들은 민석이가 잘못이 딱히 없는데도 꼬투리를 잡아 순수하게 괴롭히는 것을 즐겼습니다. 또한 왕따 당하고 있는 민석이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 방관자 아이들에게도 책임이 있었습니다.



상담 그리고 선생님과의 약속


먼저 민석이와 교사 연구실에서 따로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민석이는 자신이 왜 왕따를 당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매일 본인을 괴롭히는 아이들, 조원들, 학원 친구들 등 외부 상황들만 계속 탓했습니다. 저는 남 탓만 하는 민석이에게 냉정하게 말해줬습니다. 친구들에게 욕설을 하는 점, 모둠활동에 참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점, 학습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 점 등 이 모든 요소들이 친구들이 민석이를 싫어하는 이유라는 것을요.


"만약 친구들이 싫어하는 부분들을 네가 고칠 수만 있다면, 친구들은 너를 좋아하게 될 거야!"


"아니에요. 예전에도 노력해 봤는데 안 됐어요. 애들은 앞으로도 계속 저를 싫어할 거예요."


"최소 한 달 이상 노력해 봤니? 민석아,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봐! 너를 괴롭히던 친구가 하루, 이틀 너를 안 괴롭혔다고 너는 그 친구를 좋은 친구로 받아주겠니? 최소 2~3달은 노력해야 친구들은 네가 달라졌다고 생각할 거야. 선생님이 도와줄 테니깐 이번 기회에 너 자신을 한 번 바꿔보는 게 어때?"


그날 민석이와 저는 세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첫 번째, 욕하는 습관을 고치기로 했습니다. 욕을 쓰지 않는 환경설정을 위해, 욕을 할 때마다 청소를 하거나 반성문을 쓰는 등 자발적으로 벌을 받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 학습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모둠활동을 할 때,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는 모둠원이 아닌 도움을 주는 모둠원이 되기로 했습니다. 세 번째, 피해의식에서 벗어나기로 했습니다. 민석이는 항상 누군가 자기를 괴롭힌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반 친구들에게 화를 내고 욕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민석이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던 친구들까지 악감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민석이 스스로 피해자라는 의식에서 벗어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가해 학생의 왕따체험 그리고 반성


반 아이들의 문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반 학생들은 민석이의 행동이 바뀌기만 해도, 민석이를 더 이상 싫어하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민석이를 괴롭히는 것을 즐기는 몇몇 학생들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민석이가 딱히 무슨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민석이에게 폭력과 욕설을 행사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와중, 예전에 학급경영 책에서 본 '왕따체험'이 생각났습니다. 왕따체험은 왕따 가해자들이 직접 왕따체험을 하게 해서, 왕따의 마음을 직접 느끼고 그동안의 행동을 반성하게 하는 체험이었습니다. 의도는 좋은 체험이었지만 자칫하면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면서, 민원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체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황과 맥락에 맞게 도구로써 잘만 활용하면, 괜찮은 활동이 될 것 같았습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해 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반 아이들에게 왕따 체험 희망자를 모집했습니다. 운 좋게도, 딱 가해자 2~3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잔뜩 신나 있었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체험이 될 거 같다며, 왕따 별 거 아니라며, 자기는 그런 거 하나도 신경도 안 쓴다면서 왕따 해볼 테면 해보라고 큰소리쳤습니다.


다음 날 바로 왕따체험을 시작했습니다.


제일 빠르게 손을 든 준수(가명)가 먼저 왕따체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활동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반 친구들 전체가 종이 쓰레기를 뭉쳐서 한 아이에게 뭉친 종이 쓰레기를 던집니다. 그 아이가 하지 말라고 해도 아이들은 계속 종이를 던져야 합니다. 물론 사전에 체험자인 준수에게 동의도 다 받았습니다. 왕따체험 직전에 준수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이런 거 하나도 안 두려워요. (웃음) 재미있겠다! 와!!!"


왕따 체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종이를 찢고 뭉쳐서, 준수에게 마구 던졌습니다.


활동 시작 5분째, 준수는 방긋 웃고 있었습니다.

"얘들아! 별 거 없는데? (웃음)"


활동 시작 10분째, 몇몇 아이들이 준수가 반응이 없자, 얼굴 쪽으로 집중해서 종이를 던졌습니다. 준수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습니다.


활동 시작 15분째, 준수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 즐거움을 느낀 몇몇 남자아이들이 아예 쓰레받기로 종이를 모아 준수의 얼굴에 부었습니다. 그때부터 준수는 친구들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종이가 날아오면 이제는 신경질적으로 손으로 쳐냈습니다.


활동 시작 20분째, 준수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활동 시작 23분째, 준수가 울고 있는데도 몇몇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준수에게 계속 종이를 던졌습니다. 준수는 펑펑 울며 이제는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멈춰 달라고 말했습니다.


왕따체험 활동을 시작한 지 23분 만에 활동이 종료되었습니다. 준수는 2교시까지 계속 울었습니다.



방과 후에 준수를 따로 불렀습니다.


”준수야. 괜찮아? “


준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잠깐 동안 침묵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마 마음속에 느껴지는 바가 많았을 것입니다.


"준수야, 오늘 있었던 일, 일기로 한 번 써보는 게 어때?"

3(출처 unsplash).jpg


다음날 준수는 본인이 겪었던 왕따체험에 대해 느낀 점을 일기로 써왔습니다. 자신은 왕따를 당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고 합니다. 하지 말라고 해도 친구들이 계속하니깐 너무 화가 나고, 그 상황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다고 합니다. 그리고 민석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다시는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준수 이후로 더 이상 왕따체험 지원자는 없었습니다. 왕따체험 전 준수의 웃는 얼굴과 왕따체험 후 준수의 펑펑 우는 얼굴을 다들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들은 왕따가 정말로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체험을 한 것입니다.


사실 그 뒤로도 가끔씩 민석이를 괴롭히려는 반 학생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준수가 나타나서 민석이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3개월 뒤, 준수의 일기장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민석이는 우리 반에 제일 친한 친구 중에 한 명이다.'로 시작되는 글이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아이들은 참 빨리 배우고 변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변화


그 뒤로 민석이는 정말 빠르게 변해갔습니다. 더 이상 민석이를 괴롭히는 학생들도 없었기 때문에, 민석이는 오로지 성장과 변화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2학기가 되어서 처음으로 친 수학 단원평가에서 민석이가 100점을 맞았습니다. 1학기 때 단원평가 점수가 0~30점 정도 수준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괄목할만한 변화였습니다. 수업 시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발표도 곧잘 했고, 모둠활동을 하면서도 더 이상 친구들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반 아이들이 민석이를 보는 시선은 조금씩 변해갔고, 2학기 후반이 되면서 민석이가 예전에 왕따였다는 사실은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습니다. 이렇게 민석이는 완전히 왕따에서 벗어나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때의 경험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마치 제가 왕따에서 벗어난 것처럼 말이죠. 저로 인해서 한 아이가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을 보는 재미를 그때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어느 날, 연구실에서 선생님들과 담소를 나누다 왕따체험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제주도에 한 교사가 초등학교 1학년 대상으로, 숙제를 안 해온 친구들에 한해서 하루 종일 왕따체험을 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어 징계를 받았다고 합니다. 동료 선생님들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제가 걱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잘 대해주는 것도 좋지만, 워낙 민원도 많고 교사들에 대해 인식도 많이 안 좋은 시기(그러고 보니 지난 10년 동안 교권은 지속적으로 떨어졌네요...하하)니 그런 오해의 소지를 불러오는 활동들은 되도록 삼가고 조심하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만약에 준수 어머니가 왜 우리 아들에게 그런 체험을 시키냐고 정신적 보상을 하라고 민원을 제기했다면 저도 징계를 받았을 거라 생각하니 뭔가 슬펐습니다.



재회


이후 전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2017년 4월, 반 아이들을 보러 휴가를 나왔습니다. 하교 시간 이후에 학교에 찾아가니, 제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옆 반아이들까지 포함해서 70~8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휴가 나온 저를 보러 와주었습니다. 작고 귀여웠던 4학년 아이들이 이젠 크고 듬직한 6학년이 되어서 제 앞에 서있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저보다 커졌습니다. 변성기가 온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정말 빨리 변하는구나!'


2시간 동안 아이들과 예전에 즐겨했던 피구와 오징어 게임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전화가 왔습니다. 민석이의 전화였습니다.

“(헐떡이는 숨소리로) 선생님! 학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못 갔어요. 헉헉.... 지금 학교로 뛰어가고 있는데 잠시만 기다려주실 수 있으세요?”


잠시 후 체육관과 본관 사이의 통로에서 급하게 달려오는 민석이를 마주쳤습니다. 민석이가 저를 보자마자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 전교 부회장 됐어요!”


교직 발령받은 첫날, 아이들에게 발로 차이던 그 작고 볼품없던 꼬마가, 자기는 절대 변할 수 없을 거라고 외부 상황만 탓하던 그 어린아이가 이제 어엿하게 성장해서, 게다가 전교 부회장까지 되어서 제 앞에 서있었습니다.


“와... 민석아 축하한다...”


그 뒷말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 눈물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민석이 또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 아이를 가르친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구나...'


그때, 그날의 그 기억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도 민석이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하신 분이 있으신가요? 변하고는 싶은데 도저히 안 될 거 같다고요? 주변에서 바라보는 고정관념이 담긴 시선 때문에 힘들다고요? 민석이는 아직 어려서 그런 거라고요?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할 수 있습니다. 변화의 씨앗은 이미 우리 안에 있거든요.


어릴 적 몽글몽글 했던, 쉽게 받아들이고 변화했던 그 느낌을 떠올리면서, 변화된 행동을 하며 두세 달만 참아보세요. 분명 변화가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도 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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