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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천국의 교실을 보았습니다.

by 교실남

다섯 번째 이야기는 '베풂'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와튼스쿨의 조직심리학 교수 애덤 그랜트는 그의 저서 「기브 앤 테이크」에서 사람은 '호혜 원칙'에 따라 테이커(taker), 기버(giver), 매처(matcher), 이렇게 세 종류의 사람으로 나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테이커'는 자신이 준 것보다 더 많이 받기를 원합니다. 이들은 세상을 '먼저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보고, 성공하려면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죠. 반면 '기버'상대방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은 채 남을 돕습니다. 이들은 주로 자신이 들이는 노력이나 비용보다 타인의 이익이 더 클 때 남을 돕습니다. '매처'는 이 둘의 절충형입니다. 매처는 공평함을 원칙으로 삼아, 주고받는 것의 균형을 추구합니다. 쉽게 말해 자신이 준 만큼 받기를 원하는 것이죠. 대부분의 사람은 이 세 번째 행동 유형을 선택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 유형의 사람 중에 누가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을까요?


저자인 애덤 그랜트는 '기버'가 성공 사다리의 꼭대기를 차지할 확률이 가장 높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각종 직업군의 성취도를 분석한 결과 최상위층에는 기버가 분포하고 있었습니다. 테이커와 매처는 대개 중간층이었죠.


언뜻 생각해 보면 자신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하는 테이커가 성공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하지만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경주입니다. 누군가에게 베푸는 행동은 당장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멀리 보면 달라지죠. 그렇게 기버들이 쌓은 신뢰와 명성은 테이커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테이커가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잠깐 속일 수는 있지만, 영원히 속일 수는 없기 때문이죠. 더군다나 기술의 발전과 SNS의 영향으로 기버가 신용을 쌓고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시간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어, 테이커가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속이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남들이 꺼리는 일을 자원해서 하며, 희생적으로 남을 돕는 기버가 놀라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사례들을 종종 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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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의 저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학창 시절의 저는 기버보다는 매처나 테이커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항상 제가 준 것 이상을 상대방에게 받아내고자 했습니다. 남에게 많이 베풀면 베풀수록 오히려 손해를 본다고 생각했습니다. 더군다나 학교 선생님들은 저의 이런 성향을 부추겼습니다.


"옆에 있는 친구는 다 너의 경쟁상대다."

"세상은 냉혹하다. 오로지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니, 끝까지 싸워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

"남들 도와줄 시간에 너 자신이나 신경 써라."


전부 고등학생 시절, 담임 선생님들에게 들은 말입니다. 교실에는 늘 긴장감이 맴돌았고, 친구들과 저는 항상 서로를 견제했습니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경쟁자인 저를 이기고 내신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제게 일부러 엉뚱한 시험 범위를 가르쳐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의 말씀대로 세상은 냉혹한 측면이 있었지만, 따뜻한 측면도 많았습니다.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고 했지만, 1등이 아니라도 세상은 살만했습니다. 저는 굳이 1등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테이커도 만나 보았지만, 본인의 일이 아닌데도 마치 자신의 일처럼 타인을 돕는 기버도 많이 만났습니다. 이들은 타인에게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진심으로 상대방을 도왔습니다.


저는 선의로 아낌없이 베푸는 기버들이 진심으로 멋있었고, 이들을 본받고 싶었습니다. 이들을 닮기 위해 행동을 따라 해 보았고, 이들처럼 아무런 대가 없이 상대방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무언가 신비로운 감정들이 올라왔습니다. 따뜻함, 뿌듯함. 사랑, 기쁨 등 좋은 감정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계속 올라왔습니다.


2(%EC%B6%9C%EC%B2%98_Give_and_Take_388p,_%EC%95%A0%EB%8D%A4_%EA%B7%B8%EB%9E%9C%ED%8A%B8).jpg?type=w966 출처 : Give and Take, p.388 (저자: 애덤 그랜트)


몇 년 전, 저는 저희 반 아이들에게도 베푸는 기쁨을 맛보게 하고 싶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사랑이 충만한 감정들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실 내 환경설정이 필요했고, 마침 책을 보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호혜의 고리'라는 활동이었습니다.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학생 한 명이 한 가지 부탁을 하면 나머지 학생들이 자신의 지식과 자원, 인간관계 등을 동원해서 부탁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기버, 테이커, 매처의 개념과 '호혜의 고리' 활동을 시작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얘들아! 선생님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인을 돕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고 믿어. 우리 모두 기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호혜의 고리' 활동을 하면서 서로 돕는 반 분위기를 만들어보자!"


한 명씩 필요한 점을 발표했습니다. 먼저 승현이가 손을 들었습니다.

"음... 나는 전학 온 지 얼마 안 돼서 친구가 별로 없어. 너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승현이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기민이가 말했습니다.

"승현아! 점심시간에 같이 축구하러 가자! 나도 너랑 친해지고 싶었는데 잘됐다."


또 다른 학생이 손을 들었습니다.

"음... 나는 피구를 할 때, 공을 잘 못 받겠어... 공을 잘 받는 방법을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어."


그러자 저희 반에서 제일 피구를 잘하는 경태(가명)가 말했습니다.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거 같은데? 선생님! 점심시간에 교실 피구공 가지고 운동장에 나가도 돼요?"


"당연하지! 혹시 경태한테 피구 배울 사람?"


10명이 넘는 아이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의외로 평소에 피구를 즐기지 않는 여학생들이 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호혜의 고리'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영어를 못하는 친구들은 영어를 잘하는 희진이에게 점심시간에 영어를 배웠습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미술 선생님이 꿈인 윤서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축구가 잘하고 싶은 아이들은 얼마 전까지 선수 생활을 하다 전학 온 승현이에게 축구를 배웠습니다. 수학이 잘 안 되는 민아는 수학을 잘하는 기준이에게 수학을 배웠습니다.


'호혜의 고리' 활동을 시작한 지 3주 정도가 지났을 때였습니다. 점심시간에 반으로 들어갔는데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죠. 교실 앞쪽을 보니, 윤서의 지도하에 8명 정도의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교실 뒤쪽에서는 영어를 잘하는 희진이가 영어가 힘든 친구 2명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본인이 직접 문제까지 만들어 와서 말이죠.


운동장으로 나가보니, 아이들이 피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피구를 잘하는 친구들이 피구를 못하는 친구들도 공을 던질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있었습니다. 휴식 시간에는 따로 공 던지기 연습을 시키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와... ' 정말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치 천국의 교실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호혜의 고리' 활동에 열광할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의외인 점은 도움을 받는 학생뿐만 아니라 도움을 주는 학생도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도움을 주는 학생이 더 행복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호혜의 고리' 활동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학기말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아이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 그해 저희 반의 가장 핫한 활동이 되기도 했습니다.

3.jpg?type=w966 호혜의 고리를 경험한 학생의 일기



그해 저는 아이들과 호혜의 고리 활동을 하며 확신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타인을 돕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요.


여러분들도 가족들이나 친구, 직장 동료들과 함께 저희 반 아이들이 했던 호혜의 고리 활동처럼 타인에게 가진 것을 베푸는 경험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타인에게 순수한 도움을 베푸는 행복을 한 번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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