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집에 경찰이 찾아왔습니다.

Jun 2. 2025

일곱번 째 이야기는 교직 3년 차 때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지한이와의 첫 만남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지환이의 첫인상은 마치 정글북의 모글리 같았습니다. 며칠은 안 씻은 듯한 까치집 머리, 매일 입는 똑같은 옷, 그 옷에서 풍겨 나오는 코를 찌르는 담배냄새 섞인 악취까지...

지한이는 도움반(=한울반) 학생이었습니다. 조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고, 기본적인 생활습관이나 학습습관이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양치질조차도 몇 년 만에 처음 해봤다 할 정도였습니다. 지한이의 생활습관을 바로잡기 위해, 우선 지한이 할머니와 상담을 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빨래도 하고 양치질도 매일 애한테 시킵니더. 양치질은 시켜도 자기가 안 하려고 합니더."

"할머니, 근데 왜 옷에서 계속 냄새가 날까요... 초등학교 5학년이면 한창 주변 친구들을 의식하기 시작할 나이인데... 사실 의찬이한테서 담배 냄새난다고 안 다가가려고 하는 친구들도 있거든요. 할아버지께서 담배를 끊으실 순 없을까요? 조금만 더 신경 써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양치질은 의찬이가 하기 싫어하더라도 할머니께서 억지로라도 시켜야 해요. 지금은 어색해서 의찬이가 힘들어하겠지만, 계속하다 보면 습관이 되어서 괜찮을 거예요. 도움반 선생님께 듣기로는 작년에 치아가 10개 넘게 썩어서 치과에서 치료받았다던데 맞나요?"

"네, 맞습니더. 근데 분명 저는 양치질하라고 했습니더."

"할머니, 의찬이는 아직 어린 아이지 않습니까. 나중에 의찬이가 혼자서도 할 수 있도록, 할머니께서 지금 일일이 신경 써주면서 좋은 습관을 만들어주셔야 돼요."

식습관, 수면습관, 위생 등 기본적인 생활습관에 대해 당부 말씀을 드렸습니다. 상담 이후, 수시로 할머니께 연락을 드리면서, 지한이의 생활습관은 확연히 개선되었습니다. 더 이상 옷에서도 냄새가 나지 않았고, 양치질도 어느 정도 습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문제는 학습습관이었습니다. 생활습관만큼 학습습관도 개선이 시급해보였습니다.

지한이는 태어나서 한 번도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도움반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이 다하는 일기쓰기, 독서록, 수학 익힘 풀기 등 그동안 한 번도 누군가에게 숙제를 해오라는 압박을 받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수업시간에 멍을 때려도, 발표를 하지 않아도 도움반인 지한이에게는 늘 면죄부가 주어졌습니다.

지한이가 몇몇 도움반 친구들처럼 아예 학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상태였다면, 저도 지한이에게 학습 습관의 개선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지한이는 도움반에 있을 수준의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난독증이라던 지한이의 국어 진단평가 성적은 미도달이 아닌 도달이었고, 심지어 반평균 이상이었습니다.

"지한아, 너 난독증이라고 하지 않았니? 난독증인데 어떻게 이런 국어 성적이 나올 수 있지? 도저히 말이 안 되는데... 설명 좀 해줄래?"

"..."

알고 보니 지한이는 그동안 일부러 시험을 못 친 거였습니다. 도움반에서는 지한이가 모범생이었습니다. 항상 발표는 지한이가 다하고 선생님의 칭찬도 지한이의 독차지였습니다. 하지만 일반학급에서는 달랐습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학습이 훨씬 부족했고, 담임 선생님은 지한이에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기대받지 못하는 일반학급보다는 칭찬받는 도움반에 더 머물고 싶었기에, 시험을 일부러 망친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제 눈에 지한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아이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학습환경과 조언자의 부재로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는 지한이를 보며, 앞으로 제가 지한이의 조력자 역할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지한이에게 제 생각을 전했습니다.

"지한아, 선생님이 봤을 때는 너는 아직 잘 다듬어지지 않은 숨은 다이아몬드 원석이야. 네가 꾸준하게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선생님은 생각해. 선생님이랑 같이 공부하면 금방 공부도 잘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매번 수업시간에 멍하니 있는 거 답답하지 않니? 조금만 공부하면 수업 내용도 금방 이해될 거야. 선생님이 도와줄 테니깐 한 번 도전해볼래?"

고맙게도 지한이는 한 번 도전해보겠다고 했습니다. 목표는 1년 안에 학교 수업 내용들을 다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키우고, 도움반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도전

그 날부터 지한이의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반 아이들은 지한이가 도움반이라는 것, 학업성적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을 숨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솔직하게 말을 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게 더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맙게도 지한이와 반 아이들도 제 마음을 이해해주었고, 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번갈아가며 지한이의 공부를 도와주었습니다.

지한이는 초등생활 4년 동안 숙제를 제대로 해 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도움반이라는 이유로 혼난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제 생각에 일기나 독서록 같은 숙제의 경우는 지금의 지한이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쓰는 방법을 가르쳐주니 곧잘 써왔습니다.

그동안 지한이는 수업시간에 교과서도 펴지 않고 멍을 때렸다고 했습니다. 저는 '수업시간에 절대 그런 모습은 용납 못 한다.'며 바른 자세로 교과서를 펴고 수업에 집중하도록 습관을 길들이도록 했습니다. 처음엔 힘들어하더니, 몇 번 칭찬을 받으니 곧잘 따라왔습니다. 수학을 제외하고 다른 과목은 수업에 참여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지한이는 수학이 정말 약했습니다. 덧셈, 뺄셈도 미숙했지만, 구구단은 아예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과목 공부보다 수학 공부가 훨씬 급한 상황이었습니다. 한 달의 시간을 주고 구구단을 외우도록 했습니다. 매일 학교 수업이 끝나고 검사를 했고, 까먹으면 다시 외우도록 했습니다.

공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매일 7시간씩 하던 게임도 2시간 이내로 줄이기로 약속했습니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몇 주가 지나도록 지한이는 여전히 성실하게 제 지도를 잘 따라왔습니다. 이대로만 가면, 내년이 아니라 올해 안에도 도움반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군말 없이 열심히 공부하는 지한이가 대견하고 고마웠습니다.

학생의 집에 경찰이 찾아오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습니다.

지한이와 같은 반이 된 지 한 달째, 아침 출근길에 지한이 할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선생님! 지금 애가 저를 때립니더. 도와주이소! 방금 경찰서에도 신고를 했습니더!"

상황이 워낙 급박했기에, 자초지종을 여쭤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경찰이요? 집주소가 어딘가요?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지한이 집에 도착을 하니, 경찰관분들이 와계셨습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오늘따라 지한이가 학교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다고 합니다. 학교에 가면 구구단도 외워야 하고, 숙제도 해야 하고, 공부하는 게 너무 스트레스받아 죽고 싶다는 말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학교는 가라는 할머니의 말씀에 떼를 쓰며 대들었다고 합니다.

제가 봤을 때, 경찰에 신고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여태 제가 보아온 지한이는 폭력과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습니다. 경찰관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평소에 할머니께서 별거 아닌 일에도 자주 신고를 하신다고 했습니다.

"지한 할머니! 경찰관분들 바쁘신데 이런 일로 신고하시면 안 돼요.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앞으로 저한테 먼저 연락주세요.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그리고 지한이는 지금 바로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인 지한이가 쭈뼛쭈뼛 걸어나왔습니다. 대화를 할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어, 차 안에서 지한이와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지한아, 왜 학교가 가기 싫은 거니? 선생님한테 솔직하게 얘기해줄래?"

지한이는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습니다. 우선 현재 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했습니다. 친구들이 자기한테 구구단을 가르쳐주는 것도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예전에는 학교에서 아무 생각 없이 있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지금은 공부를 해야 하니 매일매일이 고통스럽다고 했습니다. 게임도 매일 7시간 하다가 2~3시간으로 줄이니, 세상에 재미있는 것이 사라져서 기분이 안 좋다고 말했습니다.

"아... 선생님이 미안해. 네가 그렇게 힘든 줄 모르고 너무 몰아붙이기만 한 거 같네. 앞으로 구구단은 선생님이랑 같이 외우고, 숙제도 줄여줄게. 정말 미안해."

하지만 돌아온 지한이의 대답은 ‘앞으로 공부를 하지 않겠다.’였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구구단은 안 외울 것이고, 게임도 하루에 7시간 이상 계속할 거라고 했습니다. 공부를 하지 않아, 나중에 자신의 인생이 망해도 상관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냥 게임만 하다가 죽고 싶다고 했습니다.

허탈하고 아쉬웠습니다. 충분한 잠재력이 있는 학생인데, 그냥 포기해버리는 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선생님이 네가 마음만 먹으면 향후 몇 년간 책임지고 도와주겠다. 숙제를 내주지 않을테니 공부는 놓지마라.' 등 30분간 설득을 했지만 지한이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진심은 통한다.

9시가 넘어서 지한이와 함께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저와 지한이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반 아이들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지한아, 방금 있었던 일 친구들한테 말해줘도 되지? 그동안 친구들이 도와줬으니깐 친구들도 알 권리가 있다고 봐."

"(고개를 끄덕이며) 네."

"얘들아, 아까 지한이랑 얘기를 해봤는데...(중략) 결국 지한이는 공부를 포기하고 원래 생활로 돌아가겠다고 하네. 선생님이 30분 동안 설득했는데 지한이는 그냥 예전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네……. 마지막으로 너희 생각을 좀 듣고 싶어. 너희들이 진정한 친구로서 지한이에게 조언을 해줬으면 좋겠어."

분위기가 무거웠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친구에게 뭐라 말할지 고민하는 아이들의 심각해진 표정이 보였습니다. 잠시 후, 아이들이 한명씩 손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한아, 나도 처음에는 구구단 외울 때 너무 힘들었어. 계속 외워도 까먹고, 또 까먹고, 못한다고 선생님한테 혼나고... 근데 그것도 처음에는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더라. 조금만 참아봐! 너도 조금만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지한아, 지금까지 했던 게 너무 아깝지 않니? 내가 도와줄 테니깐 같이 해보자!"

"지금 당장에는 게임하고 노는 게 좋을 수도 있는데, 5년 뒤, 10년 뒤를 생각해봐. 지금 논 만큼, 나중에는 힘들 거야."

"지한아, 내가 작년부터 너랑 같은 반이었는데... 흑흑(눈물)"

우리 반 새침데기 수빈이가 말을 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갑자기 눈물이 나왔습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학생이 모든 걸 포기하겠다고 하니, 안타까웠습니다. 마치 예전 슬럼프 기간에 현실을 회피하고 게임만 했던 저 자신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1달 동안 반 아이들과 함께 노력했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습니다.

반 전체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아이들 말을 들어보니 너무 안타까워서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고 했습니다. 친구가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을 보고 너무 슬펐다고 했습니다.

울음바다 속에서 1시간 동안 반 전체가 지한이를 설득했습니다. 종이 치고 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한이가 갑자기 제게 다가왔습니다.

"선생님. 저 게임 얼마 정도 줄이면 될까요? 다시 시작해볼게요."

감격의 눈물이 나왔습니다. 친구들의 진심이 지한이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1년 뒤

"지한아, 너 학기초에 구구단 외우기 싫어서, 학교 안 오고 자살하고 싶다고 한 거 기억나?"

"아... 기억나요. 제 흑역사... 진짜 그때는 왜 그랬을까요? 저도 그때의 제가 솔직히 잘 이해가 안 가요."

지한이는 그 뒤로 일기장, 독서록도 꼬박꼬박 써왔고 수업시간에 집중도 곧잘 했습니다. 물론 구구단도 다 외웠습니다. 과학 단원평가도 생애 처음 쳐서, 70점 이상 받기도 하고 수업시간에 적극적으로 발표도 하는 등 많이 변했습니다. 학교 가기 싫다고 떼를 써 경찰 아저씨가 찾아왔던 그때가 먼 옛날 과거의 이야기 같다는,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지한이. 더 이상 지한이는 예전의 지한이가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