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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ul 12. 2020

우리 아이가 답안지를 몰래 베낀다면?

자신을 속이지 마세요!

두 달 전 수학 시간이었다.


우리 반은 수학 한 단원이 끝나면, 단원평가를 친다. 반 아이들의 시험지를 채점하면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50점 이하가 수두룩했다.


내가 왜 더 큰 충격을 받았냐면, 그동안 아이들의 수학익힘책을 검사했을 때 딱히 수학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수학익힘책은 대부분 빗금(/)이 아닌 동그라미(O)로 채워져 있었다.(우리 반의 경우 수학 익힘은 스스로 채점을 한다.) 수업 시간에도 '수업내용이 잘 이해가 안 된다.'는 질문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모두 수업을 잘 따라오고 있는 줄 알았다.


단원평가 결과로 추측하건대, 그동안 아이들은 수학 익힘 답안지를 컨닝하거나 채점할 때 살짝 답을 고친 뒤 동그라미표를 쳤을 확률이 컸다.


아이들에게 채점한 시험지를 나눠주면서 마음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당장 아이들을 혼내고 싶었지만 애써 마음을 억눌렀다. 대신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해보고자 노력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이런 적이 없었을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미소를 머금은 채,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이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는 보습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학원을 다니는 대신에 나는 눈높이 수학 학습지를 풀었다. 눈높이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 집을 방문하셨다. 내가 일주일 동안 학습지를 제출하면,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내가 푼 학습지를 채점해주시고 피드백을 주셨다.


처음 몇 달 간은 열심히 했다. 선생님께 잘한다고 칭찬도 많이 받았다. 내가 진도를 따라가자, 엄마와 선생님은 욕심을 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과제물의 양이 늘기 시작했다. 처음에 시작했던 양의 3~4배 분량이었다. 부담이 되었다. 계속 반복되는 문제들을 몇 시간씩 풀고 있으면 정말 토가 나올 것 같았다.(아마 구몬이나 눈높이 수학 3시간 이상 풀어보신 분들은 공감하실 듯...ㅎㅎ)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잔꾀를 부렸다. 내 나름대로 선생님과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내 학습부담도 덜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바로 답안지를 베끼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난 답안지를 베끼기 시작했다. 안 들키기 위해 답뿐만 아니라 풀이과정도 꼼꼼하게 적었다. 정말 감쪽같았다. 전부 100점을 맞으면 의심을 받을 거 같아서 센스 있게 1, 2문제도 일부러 틀렸다.


나의 잔꾀는 대성공이었다. 눈높이 선생님은 아무런 의심 없이 매주 내 학습지를 채점을 했고, 매 번 나를 칭찬해주셨다. '너무 성실하고 꼼꼼하다. 너무 잘한다.'라는 칭찬을 받을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오히려 내 머리와 몸이 편한데 칭찬까지 받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1달 동안 엄마와 선생님, 그리고 나 자신을 속였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결국 밟히는 법. 나의 잔꾀는 진짜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들통이 나고 말았다.


그동안 나의 행각을 조용히 관망하던 내 여동생이 편하게 학습지를 제출하는 오빠를 어설프게 따라 했다. 동생의 풀이 하나 없이 답만 적혀있는 동생의 학습지는 학습지 선생님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학습지 선생님은 동생에게 문제들을 풀어보게 했고, 동생은 단 한 문제도 풀지 못했다. 동생은 펑펑 울면서, 오빠를 따라 했다고 자백하고 말았다.


방금까지 선생님한테 칭찬을 받고 방 안으로 들어간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학습지 선생님의 샤우팅 소리가 내 방 안에까지 들렸다.

00 나와!!!

나는 그날 악마를 보았다. 항상 온화한 모습의 선생님이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손바닥에 피멍이 들 정도로 맞았던 기억이 난다.


학습지 선생님이 가시고, 난 더 큰 폭풍을 맞게 되었다. 바로 엄마였다. 엄마는 '이게 무슨 망신이냐며, 그리고 동생은 왜 끌어 들었냐며' 엄청 혼내셨다.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 얼마 전 청학동에서 산 무시무시한 '사랑의 매'를 들고 오셨다. 그날 얼마나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지 그 견고해 보이던 회초리가 부러졌다.


그날 이후, 학습지 선생님과 엄마는 내 잘못된 행동에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하셨다. 나는 그동안 컨닝했던 학습지들을 전부 다시 풀어야 했다. 잔꾀를 부리다가 오히려 내가 부담해야 하는 학습량이 더 늘었다. 나의 행동이 너무나 후회가 되었다.




아이들은 웃음을 참으면서 내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완벽해 보이는 선생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니, 신기하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내 이야기가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에서 머무는 건 원치 않았기에,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다.

선생님: 얘들아 만약에 선생님이 안 들키고 끝까지 학습지 선생님과 엄마를 속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들1: 공부 실력이 많이 줄었을 거 같아요.
아이들2: 나중에는 더 큰 피해로 되돌아왔을 거 같아요.


선생님: 너희들 말이 맞아. 답안지를 베끼는 행위,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행위 등 상대방과 자신을 속이는 행위는 지금 당장에는 편하고 좋을지는 몰라도 나중에는 더 큰 문제로 되돌아올 거야. 방금 들려준 선생님의 이야기처럼 말이야.

아이들이 침묵한다.

선생님: 지금 이 중에 수학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친구들이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 그리고 몰래 수학 익힘책 답안지를 베끼거나 점수를 고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선생님은 알고 있어. 너희들 마음이 무슨 마음인 지 선생님도 이해해. 하지만, 자신을 속이는 행위는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너희에게 이득 될 건 전혀 없어.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선생님: 솔직하게 나는 수학이 힘들다. 너무 어렵다. 손들어 보세요.

A반 14명 중에 7명이 조용히 손을 든다.


선생님: 얘들아. 좀 못해도 괜찮아! 못하면 못하는 것을 인정하고 새로 배워나가면 되지!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게 더 나쁜 행동이야. 앞으로는 수업시간에 내용이 이해가 안 가면 꼭 질문 했으면 좋겠다. 선생님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날 나의 얘기가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2주 뒤에 친 단원평가에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의 점수가 대폭 상승했다. 특히 5점이었던 희재(가명)의 점수는 75점까지 상승했다.




나 자신을 속이지 말자. '되로 주고 말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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