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의 아이들이 새벽 5시에 한 명도 빠짐없이 학교 운동장에 모였다. 다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피곤해 보였지만, 매우 들뜬 표정이었다. 아이들은 부모님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올라탔다. 바로 공항으로 이동을 했다.
"지환아, 오늘 정장이랑 구두 준비해 왔지? 선생님이 비행기 탑승했을 때 꼭 정장 입어야 한다고 했잖아."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얼굴이 벌게지며) 선생님, 그때 농담이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한숨을 쉬며) 하... 무슨 말이야 지환아. 지금 친구들도 다 챙겨 왔어. 이건 비행기 탈 때 다들 기본적으로 지키는 비행기 예절이라고."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그래, 지환아. 지금 선생님 포함해서 전부 정장이랑 구두 다 가지고 왔어. 아... 너 안 들고 오면 우리 비행기 출발 못하는데... 아... 너 때문에 수학여행 망치게 생겼다..."
"(혼란스러운 듯) 아... 뭐지? 거짓말 같기도 하고 진짜 같기도 하고... 선생님 이거 장난 맞죠? 저 놀리지 마세요!"
"(미안한 듯) 하하하, 지환아 미안. 정장이랑 구두는 거짓말이었고, 사실 비행기 안에는 슬리퍼를 신는 게 예의야. 슬리퍼는 준비해 왔겠지?"
"(당황하며) 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지환이를 놀렸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지환이는 짓궂은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시달렸다.
"아, 뭐예요. 선생님. 슬리퍼 그런 거 안 신잖아요? 괜히 마음 졸였네."
"(웃음) ㅋㅋㅋㅋㅋ"
몇 시간 뒤,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다.
"선생님, 방학 때마다 매번 가는 한국인데도 너무 신기해요."
"우리 반 전체가 여기 같이 왔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선생님, 거리에서 중국말이 아닌 한국말이 들려요! 너무 좋아요!"
다들 외국에 놀러 온 기분이라고 했다. 특히 한국이 처음인 지환이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선생님, 모든 게 신기해요!"
숙소에 짐을 놔두고 미리 예약해 둔 식당에서 부대찌개를 먹었다. 식사 후 바로 지하철을 타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동했다. 불과 하루 전까지 중국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던 우리가 다 함께 한국 지하철을 타고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에는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작년 5학년 2학기 사회시간에 배웠던 내용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선생님, 교과서에 나왔던 유물들이 여기 있어요!"
"선생님, 작년에 배웠던 것들을 실제로 눈으로 볼 수 있으니깐 너무 신기해요!"
보통 아이들은 박물관을 지겨워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즐겁게 박물관을 관람하는 우리 반 아이들을 보고 대견함과 뿌듯함이 느껴졌다.
박물관 투어가 끝나고 우리들은 첫 번째 로망을 실현하러 갔다. 바로 영화 보기였다! 숙소 근처의 영화관이었는데, 운 좋게도 상영관에 우리 밖에 없었다. 마치 우리 반만의 영화관을 통째로 빌린 느낌이었다.
"선생님, 맨날 중국말로만 영화관에서 영화보다 한국말로 영화를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우리의 두 번째 로망은 야식 시켜 먹기였다.
"얘들아, 예산 넉넉하게 잡았으니깐 각 방별로 먹고 싶은 거 선생님한테 링크 보내~"
"네!!!!!"
"선생님 정말 꿈만 같아요. 오늘과 같은 날이 계속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한국 수학여행 1일 차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2일 차 일정은 우리 반 아이들이 가장 기대하던 일정이었다. 바로 놀이공원!
"얘들아 근데 우리 학교 근처에도 놀이공원 있잖아. 거기랑 비교해서 놀이기구랑 시설이 큰 차이가 없는 거 같은데?"
"선생님,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일단 공기랑 온도부터가 다르다고요. 롯데월드가 훠어얼~~씬 더 좋아요!"
아이들과 나는 저녁이 될 때까지 신나게 놀이기구를 탔다. 저녁식사는 맛집으로 유명한 애슐리 잠실점에서 했다. 식사 후 옆에 교보문고도 들려서 책을 구경했다. 아이들 대부분 이렇게 큰 서점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렇게 2일 차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3일 차 일정은 오전에 경복궁, 청와대 체험을 하고 신촌으로 이동해 연세대 투어를 하고 남산타워까지 가는 매우 빡빡한 일정이었다. 때문에 다른 날보다 숙소에서 일찍 나왔다.
경복궁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이 많았다. 아이들은 경복궁 내에 정해진 장소에서 모둠별로 사진 찍기 미션을 수행했다. 경복궁 투어가 끝나고 근처에 있는 청와대로 걸어갔다. 걷기에는 거리가 꽤 멀어서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때문에 중간에 카페에 들러 음료수를 사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선생님, 그냥 카페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요!"
1시간 뒤, 청와대에 도착했다.
"우와... 신기하다!"
청와대 투어가 끝난 후에는 연세대 투어 일정이 있었다. 오늘 일정 중 아이들이 가장 기대하던 일정이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3년, 12년 특례제도의 혜택을 받아 연세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꽤 있었다. 작년 학교의 고3 선배들 같은 경우에는 반의 1/3이 연세대에 갈 정도였다.
연세대에는 연세대 재학생들이 학교를 소개해주는 학교 투어 제도가 있었다. 우린 미리 1달 전에 이 투어를 신청을 했다. 학교에 가니 홍보대사 재학생들이 미리 정해진 장소에 나와있었다. 아이들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대학생 누나, 언니들을 따라 학교 실내외 투어를 했다.
"선생님, 저 꿈이 생겼어요!"
"뭔데?"
"저 꼭 나중에 연세대 갈 거예요. 아까 언니들이 너무 멋졌어요. 대학교도 너무 좋아 보이고."
이번 투어가 아이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된 것 같아 뿌듯했다.
"선생님, 이제 도저히 못 움직이겠어요."
하루 종일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힘들었던 아이들은 저녁이 되어 퍼지고 말았다. 아쉽지만 남산타워 일정은 취소하기로 했다. 대신 세 번째 로망을 실현하기로 했다. 바로 베라 먹기! 우리가 사는 중국 지역에는 베스킨라빈스가 없어서 아이들이 매일 베라베라 노래를 부를 정도였다.
"선생님 진짜 꿀맛이에요. 너무 행복해요."
이렇게 3일 차 일정을 무사히 마무리했다.
"선생님, 오늘이 벌써 마지막날이라니 너무 시간이 빠르잖아요. 우리 좀 더 머물다 가면 안 돼요? 이제 수학여행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너무 슬퍼요."
아이들은 너무 아쉬워했다. 호텔을 나오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오전에는 명동에 가서 2시간 동안 쇼핑 타임을 가졌다. 특히 여자 아이들이 강력하게 주장을 해서 생긴 일정이었다. 명동에 워낙 사람이 많기에 아이들이 약속 시간과 장소를 잘 지킬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약속 시간보다 5분 더 일찍 아이들이 전부 모인 것을 보고 아이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바로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몇 시간 뒤, 우린 무사히 학교에 도착했다. 시간을 보니 거의 저녁 8시가 다 되어 있었다.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이 마중 나와 계셨다.
"선생님, 정말 꿈만 같던 시간이었어요. 여행을 다니는 내내 너무 행복했어요. 진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된 거 같아요. 수학여행 준비하시느라, 저희들 데리고 다니시느라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지난 3박 4일 수학여행이 너무나 꿈만 같고 행복했다는 아이들. 아이들이 행복해하니 교사인 나도 행복해졌다. 그동안 수학여행 준비를 하면서 고생한 것들이 생각도 안 날 만큼.
그렇게 한국 수학여행은 중국재외생활 중 Top 3로 꼽을 만큼 평생 잊을 수 없는 좋은 추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