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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은 어디로 갈까?

by 교실남

초등학교에는 6학년에만 있는 고유행사가 있다. 바로 수학여행, 졸업앨범, 졸업식이다. 그중 선생님에게 제일 부담이 큰 것은 수학여행이다. 여행 일정, 준비물, 교통수단, 업체와 계약, 학생 인솔, 사전 교육, 안전사고예방 등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학여행을 어디로 갈 것인가?


6학년을 이어서 맡기 전부터 혹시 몰라 계속 고민을 하고 있었다. 되도록이면 아이들과 추억도 만들면서 아이들에게 유익한 수학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재외중국학교인 우리 학교는 여태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내가 생각하기에 중국으로 가는 가장 큰 이유는 편함이었다. 기존에 계속 갔던 곳이기도 하고, 여행사도 끼기 편하고, 어차피 중고등도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가니 함께 가면 일이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다. 작년 6학년도 중등을 따라 상하이에 다녀왔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익숙함과 당연함에 의문이 들었다. 아이들이 실제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과정은 전부 한국에 관한 내용인데, 중국에 가는 것이 과연 학문을 갈고닦는 여행이라는 수학여행의 취지에 맞는 것인가? 또한 중고등과 함께 수학여행을 가면 중고등 선배들 위주의 일정이 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실제로도 그랬고. 좀 더 아이들에게 유익한 수학여행이 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고민해 보았다.


'그럼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특히 5학년 2학기 사회에서는 우리나라 역사를 배우는데, 한국에 가서 박물관과 여러 유적지에 가보면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 같았다. 방학 때마다 한국을 가는 우리 반의 몇몇 아이들도 한국에 가도 거의 친척집에만 가지 박물관에 가본 적은 별로 없다고 했다. 더군다나 우리 반에는 태어나서 비행기도 타지 못하고 한국에도 못 가 본 학생이 있었다. 처음 탄 비행기로 고국땅을 밟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선 아이들에게 의사를 물어봤다.

"얘들아, 혹시 너네 한국으로 수학여행 가는 건 어떻게 생각해?"

"와... 진짜 좋아요. 저희 한국 가면 너무 행복할 거 같아요."

"저희가 배운 내용들도 연계되고 좋은 거 같아요. 그리고 한국에 가는 거라서 뭔가 마음이 엄청 편할 거 같아요. 재미있는 것들도 중국보다 더 많고요."

"선생님 사랑해효~~~~"


그냥 생각만 물어봤을 뿐인데 벌써부터 아이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아직 확정된 거 아니니깐 너무 설레발 치진 말고. 일단 한국 수학여행으로 선생님이 한 번 추진해 볼게."




다음 날 바로 교장 선생님께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가고 싶다고 의사를 말씀드리니, 대찬성하셨다.

"교실남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사실 중국으로 수학여행 가는 것보다 한국에 가는 게 수학여행 취지에 더 맞죠. 근데 괜찮으시겠어요? 일이 몇 배나 더 늘 텐데..."


"네, 괜찮아요. 애들이랑 좋은 추억 만든다 생각하고 즐겁게 추진해 보려고요."


"학부모님들과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겠어요. 교실남 선생님, 항상 아이들을 위해 힘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학부모님들께서도 전원 찬성하셨다.

"선생님 너무 좋은 의견이신 거 같아요."

"괜히 애들이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해서 선생님이 고생하시는 건 아닌지... 감사합니다, 선생님!"

"너무 좋네요. 저도 초등학생 때로 돌아가서 선생님 반이 되고 싶네요."


물론 우려를 표하는 선생님들도 계셨다.

"굳이 그렇게까지요? 요새는 수도권 쪽은 수학여행을 거의 안 가는 분위긴데? 어떻게 보면 중국에서 한국으로 가는 거니깐 해외여행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렇게까지 리스크를 짊어질 필요가 있을까요?"

"일을 완전 사서하는 느낌인데? 굳이 그렇게 일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교실남 선생님, 사고 나면 선생님이 책임지실 수 있겠어요? 여기서 가는 한국은 해외나 다름없는데?"


물론 선생님들의 말씀도 일부는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결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일이야 내가 좀 더 하면 되는 거였고, 안전 리스크는 사실 중국으로 여행 가는 게 한국 가는 거보다 더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어차피 비행기는 중국에 가나, 한국에 가나 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학부모가 한국으로 가는 것을 원했고 나 또한 아이들에게 유익하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기에, 꼭 한국으로의 수학여행을 추진하고 싶었다.




며칠 뒤, 학부모와 학생 수학여행지 선호도 조사를 했다. 만장일치로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것으로 확정이 되었다. 우선 아이들과 한국 어디로 갈 것인지 정하기로 했다.


일단 제일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가 많은 한국 서울로 3박 4일(재외는 특이하게 수학여행을 3박 4일로 감)을 가기로 했다. 3개 모둠으로 나눠, 각 모둠마다 먹거리, 볼거리(체험, 박물관), 놀거리로 나눠 조사를 했다.


먹거리를 맡은 조는 서울에 유명한 맛집들을 검색했다. 볼거리를 맡은 조는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과 연관이 있는 체험거리나 박물관을 조사했고, 놀거리를 맡은 조는 한국에 가서 가장 하고 싶은 놀이 체험들을 조사했다.


-먹거리: 각종 야식, 부대찌개, 애슐리 잠실점, 연세대 학식, 명동 중국집 등

-체험거리: 국립중앙박물관, 키자니아 직업체험, 교보문고, 경복궁, 청와대, 연세대 투어

-놀거리: 남산 타워, 신촌에서 인생네컷, 롯데월드, 명동에서 영화, 한강변에서 치킨 혹은 라면 먹기


조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3박 4일 일정에 맞게 추리고 추렸다.


이제 제일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았다. 바로 여행경비였다.


한국에서는 교육청에서 6학년 아이들에게 1인당 수학여행 경비를 지원을 해주지만, 이곳은 재외한국학교이기 때문에 지원이 없었다. 작년 기준으로 북경이나 상하이 수학여행은 3500~4500위안(1위안=약 190원) 정도 들었다고 했다. 수학여행 1번에 거의 70~90만원 정도의 돈이 든 것이다. 한국은 이보다 더 많이 들 거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사에 알아보니, 입장료가 드는 체험활동을 포함하지 않았는데도 1인당 4600위안의 비용이 든다고 했다. 터무니없이 비쌌다.


'차라리 여행사를 안 끼고 가는 건 어떨까? 어차피 여행사를 껴도 대부분의 일정은 내가 짜야하고 숙소도 내가 알아봐야 하는데, 굳이 여행사를 낄 필요가 있을까?'


내가 일일이 발품을 판다면 이 돈보다는 훨씬 더 싸게 수학여행을 갈 수 있을 거 같았다. 우선 차량비를 아끼기로 했다. 생각보다 버스 대절비가 비쌌기에, 서울에 도착한 이후부터는 지하철이나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학생수가 12명과 나를 포함 인솔 선생님이 2명이었기에 지하철, 시내버스를 타도 충분히 아이들을 케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한국 대중교통을 별로 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또한 아이들에게 유익한 교육이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두 번째는 이동경로를 최소화하고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숙소를 체험장소들 한가운데인 명동으로 잡았다. 다행히 학생수가 적고 인원도 남자 4명, 여자 8명으로 딱 맞아떨어져서, 꽤 좋은 호텔에 저렴한 비용으로 숙소를 구할 수가 있었다. 체험지 대부분이 명동 근처에 있었기에 3박 4일 동안 이곳에 짐을 놔두고 움직이면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절약이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세 번째는 체험장소에 일일이 연락해서 발품을 팔았다. 예를 들어 롯데월드 같은 경우,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특별할인을 해주고 있어 예상 비용보다 약 30~40% 정도 더 저렴한 가격에 예약을 할 수 있었다.


각고의 노력으로 결국 여행경비를 3600위안까지 줄였다. 식당, 숙소도 좋은 곳으로 잡고 보험비, 야식비, 기념품비 등 각종 비용을 넉넉하게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달 동안 미친 듯이 발품을 판 보람이 있었다.


해외(?)로 가는 거다 보니 생각보다 신경을 써야 할 것들이 많았다. 유심 같은 경우는 4일 무제한 데이터 유심 상품 타오바오 링크를 보내주고 미리 각 가정에서 구입을 하도록 했다. 링크를 보내기 전에 미리 사서 실험을 해봤는데, 생각보다 성능도 괜찮고 가격이 얼마 하지 않아서 놀랬다. 이중국적인 친구는 중국 내에서 따로 출국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미리 학부모님께 안내를 드렸다. 비행기표는 여행사를 통해 구입하는 게 좀 더 싸고 편해서, 여행사를 통해 구입을 했다.


또한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대비해 1박 2일 동안 사전답사도 다녀왔다. 1달 동안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이제 수학여행을 가는 것만 남았다!


"선생님, 너무 떨려요. 매일 가던 한국인데도 정말 떨려 미치겠어요."

"너무 설레서 잠이 안 올 거 같아요. 어떻게 해요?"

"선생님, 너무 기대가 돼요!"


다음날 우린 새벽 5시에 학교에 모여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KakaoTalk_20250610_115306786.jpg 당시 수학여행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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