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학년이 되는 우리 반 석진(가명)이는 아버지와 함께 사는 한부모가정 자녀로 집에서 잘 케어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새벽에 일찍 일을 나가셔야 했기에, 아침 기상과 등교 준비는 언제나 석진이 스스로 해야 할 몫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혼자 등교 준비를 해왔다고 한다.
문제는 석진이는 일주일에 3~4번은 항상 지각을 하는 만년 지각생이었다는 것이다. 4~5분 늦는 건 기본이고, 11시 넘어서 학교에 등교하거나 늦잠을 자느라 아예 학교에 등교를 안 한 적도 있었다.
"박석진! 오늘도 지각이야? 알람은 맞추고 잤어?"
"하... 선생님 죄송해요. 일어나 보니깐 알람이 꺼져 있더라고요... 자기 전에 분명 확인을 했는데, 왜 안 울렸는지 모르겠어요..."
"저번에도 들어본 변명 같은데? 알람을 2~3개를 맞춰 놓던지, 친구에게 모닝콜을 해달라고 하던지 방법을 찾아봐."
따로 수차례 개인 상담을 하기도 하고, 모닝콜을 해보기도 하고, 지각을 안 하면 학급 화폐를 보상으로 주기도 하고, 데일리 리포트를 통해 개선점을 찾아보는 등 여러 가지 방법들을 시도해 보았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아니, 석진아 너는 학기 초보다 수업 태도도 많이 좋아지고, 하루 공부량도 엄청 늘고, 친구 관계도 좋아지고 긍정적으로 변한 게 이렇게나 많은데, 왜 지각 습관만은 안 고쳐지는 거야?"
"그러게요... 죄송해요. 선생님의 믿음에 보답할 수 있도록, 지각 안 하도록 노력해 볼게요."
하지만 다음 날 내 기대는 또 한 번 무참하게 무너졌다. 10시가 넘었는데도 석진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석진이 아버님도 연락을 받지 않으셨다. 11시가 넘어서 석진이는 부시시한 얼굴로 학교에 등교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상담, 조언, 보상 그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역발상으로 벌을 주기로 했다. 그것도 석진이가 가장 싫어할 만한 벌을.
"석진아, 그동안 선생님이 너한테 여러 번 기회를 줬잖아. 지각하지 않겠다는 네 말을 항상 믿었고. 근데 8개월이 지난 지금도 지각 습관이 고쳐지지가 않네. 네 의지대로 안 되니깐 이제는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거 같아. 나중에 6학년이 되어서도, 중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계속 지각을 할 수는 없잖아? 지각은 친구들에게 피해가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너 자신에게도 마이너스지. 선생님은 반드시 올해 안에 네 지각 습관을 고쳐주고 싶어."
"특단의 조치가 뭔데요?"
"앞으로 지각 1번이라도 하면 스마트폰 3일 압수 어때? 지각 1번 당 3일 압수인거지."
이전에 재외한국학교에 근무할 때에도 학부모님들의 동의를 받고 아이들이 학급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스마트폰 압수를 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스마트폰 압수는 그 어떠한 보상이나 상담, 조언보다 뛰어난 효과를 보였다. 손실회피편향이라 그런지 아이들은 무언가 보상을 얻는 것보다도 잃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평소에 스마트폰 사용량이 많은 석진이는 더 싫어하겠지. 그 좋아하는 게임도 못하고, 친구들이랑 sns도 못하니. 아니나 다를까 석진이는 바로 극심한 반응을 보였다.
"(흔들리는 눈빛 속 잠깐 침묵) 선생님, 그건 좀 아닌 거 같아요."
"왜 안 된다는 거지? 네가 지각만 안 하면 되는 거잖아? 앞으로 지각 안 할 거라며? 또 약속을 어기겠다는 거야?"
"아... 그건 아닌데... 그래도 그거는..."
석진이가 계속 망설이자, 쐐기를 박기 위해 감정에 호소하기 전법을 쓰기로 했다.
"지금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한 약속을 어기겠다는 거야? 그동안 선생님과 친구들은 너에게 얼마나 큰 믿음을 줬는데... 아 그리고 아버지한테는 선생님이 잘 말씀드려 놓을게. 네 습관 바꾸는 거니깐 아마 좋아하실 거 같은데."
"아.... 아....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석진)"
석진이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눈물을 흘릴 정도로 스마트폰은 석진이에게 상당히 중요한 물건인 듯했다.
"(눈물을 흘리며) 하.... 알겠어요. 그렇게 해요."
다소 반강제적인 설득이었지만, 그렇게 석진이 지각 습관 바꾸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겨울 방학식까지 1달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다음 날, 석진이는 정상 등교 시각보다 5분 더 일찍 등교했다.
"오~~ 박석진 웬일이야? 스마트폰 압수가 무섭긴 하나 보다. (웃음) 석진이의 습관 변화를 위해 모두 격려의 박수~"
오랜만에 지각을 안 한 석진이의 모습을 보고 다들 석진이를 응원하고 격려했다. 그 뒤로도 석진이는 지각하지 않고 제시간에 등교를 했다. 물론 몇 번의 위기 순간도 있었다. 2~3초 차이로 겨우 학교에 시간 맞춰 등교한 적도 있었다. 예전에도 비슷한 시각에 등교한 적은 많았지만 그 과정은 전과 달랐다. 이전에는 터덜터덜 느긋하게 학교에 걸어왔다면, 학교에 늦지 않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오는 석진이로 말이다.
그렇게 1달이 지났다. 놀랍게도 석진이는 선생님, 친구들과 약속을 한 뒤로 단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반강제적으로 바뀐 생활 패턴 때문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 듯했으나 그것 또한 2주 즈음 지나자 금세 적응을 했다. 4주 차 즈음 되었을 때, 석진이는 더 이상 학교에 급하게 뛰어오지 않았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여유롭게 등교 준비를 하고 독서까지 하고 20분 일찍 등교를 했다는 석진이의 얘기를 듣고 나는 물론 반 아이들까지 깜짝 놀랐다. 1달 만에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다니!
"그럼 석진아 선생님이 내년 6학년 담임 선생님한테도 말씀 드려놓을게. 석진이 이 친구는 벌로 스마트폰 압수만 하면 정말 잘할 친구라고."
"(발끈하며) 아니, 선생님!!!!! ㅋㅋㅋㅋ 그건 아니죠!!!"
(반 아이들 전체 웃음)
그날 석진이의 데일리 리포트를 살펴보니, 놀랍게도 석진이는 6시에 기상을 해서 책까지 읽고 학교에 등교를 했다. 매번 8시 넘어서 기상을 하던 이전의 석진이와는 다른 사람 같았다.
석진이의 데일리 리포트에는 '사람 바뀌는 건 한순간이네. 진짜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바뀌는구나.'라고 쓰여있었다. 석진이의 변화와 이 멘트가 우리 반 전체에게도 좋은 공부가 될 거 같아, 그날 반 아이들에게 석진이의 데일리 리포트를 공유하며 얘기했다.
"사실 1달 전 석진이와 지금 석진이는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좋아. 우리 몸속의 세포가 죽기도 하고 새로 생겨나기도 하면서 매 순간 몸속이 바뀌는 건 알고 있지? 석진이도 1달 동안 여러 행동수정을 거치면서 이미 다른 사람이 됐어.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첫 번째 레슨! 인간은 누구나 변할 수 있다는 거!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석진이가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바뀐다고 느낀 점을 적었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야. 마음만 먹어서 바뀌었다면 진작 석진이는 1학기 때 지각 습관을 고쳤겠지. 제일 중요한 건 그 마음을 계속 먹게 만들 수 있도록 하는 환경설정이야. 1달 전에 선생님이 석진이가 1번이라도 지각하면 휴대폰을 압수를 한다는 다소 강제적인 환경설정을 했지? 이게 석진이의 지각 습관을 단 번에 변화시킨 거고. 물론 이번 경우에는 다소 과격한 환경설정이긴 하지만...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두 번째 레슨! 변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환경설정이 필요해. 혼자서는 힘드니 부모님이나 선생님, 친구 등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환경 설정을 해보는 것이 좋아."
번외로 무분별한 청소년들 스마트폰 사용이 나날이 심각해져가고 있다. 게임을 통해 의미 없이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고, SNS상에서 학교폭력이 일어나기도 하며 포털 사이트, SNS를 통해 각종 유해한 폭력물, 음란물, 욕설 등을 쉽게 접하기도 한다. 그 결과로 아이들은 도파민 중독자가 되었다. 독서는 멀리하게 되고, 깊이 생각하는 건 싫어하며, 웬만한 자극이 아니면 대부분의 수업을 지루해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학급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 호주처럼 우리나라도 청소년 SNS 금지법이 만들어지기를 마냥 기다려야 할까?
올해 새 학기에는 반의 학부모님들과 소통을 통해 이 부분을 진지하게 논의해보려고 한다. 내 생각에 사실 제일 좋은 건 전체 동의를 통해 반 전체 혹은 전교생 아이들의 폰을 스마트폰이 아닌 폴더폰으로 바꿔 일종의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긴 한데, 그다지 현실성은 없어 보인다. 예전 재외한국학교에서 근무할 적 시행했던 일주일 중 하루 정도 디지털 디톡스데이를 정해 부모님, 자녀 모두 스마트폰 사용을 하지 않거나, 아니면 석진이의 경우처럼 스마트폰 압수를 학급 규칙으로 정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겠지만 경험상 핑계만 대고 실행하지 않는 것보다, 부작용이 있더라도 한 번 실행해 보는 것은 그 격차가 매우 크다. 이렇게 계속 시도하다 보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겠지.
*혹시 아이들의 스마트폰 중독을 막을 좋은 방법이 있으신 분은 댓글로 의견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