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작고 소박해 보이는 제주 전통 기와집 안거리와 비밀의 화원을 그려봄직한 정원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곤 한다.
'제주에서 찍은 사진은 왠만하면 화보다'라고 할만큼 제주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도처에 가득하다.
운동삼아 다니는 동네 숲이며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만나는 해안도로에서도 그렇다. 제주에서 만 5년을 넘겨 살다보니 멋진 풍경을 보러 차를 타고 멀리 나가는 일이 점점 드물어진다. 집 근처 도로가에도 흙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작고 여린 풀꽃들이 자리한다. 사방에서 까마귀며 다양한 새들이 지저귄다. 안타깝게 시야를 가려버린 몇몇 큰 건물들만 피하면 어디서든 한라산을,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만드는 검푸른 바다를 마주한다. 거친듯 웅장하다가도 소박하고 작은 아름다움들이 가득한, 그래서 멀리 나가지 않아도 이미 포만감이 자리한 제주에서의 삶.
수눌당이 그렇다. 작은 와가와 그 주위를 감싼 검고 거친 현무암 돌담들 사이로 다섯 군데의 정원과 잔디 마당, 텃밭. 생태해설을 하시는 선생님은 이곳에 원예종이 많아 아쉽다고 하시지만 원예종 사이사이 무서운 생명력으로, 뽑아도 뽑아도 금새 다시 떡하니 나타나는 풀꽃들. 보통 검질이라 부르는 작고 어여쁜 야생화. 이곳을 돌보셨던 분의 정원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화초들과 과실 나무들.
이곳이 특별한 건 비단 식생들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다. 청탄 김광추. 근현대, 제주 최고의 문화예술인이셨던 청탄선생의 기억이 남아있는 곳. 제주문화원 백국장님은 이 곳에서 청탄 선생을 떠올리며 하루만이라도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하셨다.
얼마전 우연히 수눌당에 들르신 청탄선생의 제자분은 50여년전 청탄선생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당시 보모님 상으로 힘들어하던 어린 청년에게 청탄선생님은 마음을 굳건히 하여 잘 이겨내라는 글을 직접 써주시며 위로를 하셨다 했다. 그는 아직도 그일을 떠올리며 선생님을 그리워했다
제주 최초의 서양화를 그리신 분. 사진기를 들여 오시고 전각을 하시고 서예에 능하셨으나 그 어느것하나 스스로 과시하시지 않으셨기에 생전에 스스로 전시회 한번 열지 않으셨다지만 그렇다고 은둔형 외토리는 더더욱 아니셨다. 풍류를 아셨고 필요한 곳에 그분의 재능을 쓰시는 것을 아끼지 않으셨다 했다. 우연히 들르신 청탄 선생을 그리워하는 제자분들을 만나뵙고 어느새 나도 그 분을 좋아하게 된 듯하다. 와가에 혼자 있는 시간에 가끔 나는 그분을 그려본다. 어떤 분이셨을지 그 분이 지금 시대를 살고 계신다면 무엇에 관심을 갖고 어떤 일을 하실지 상상해보곤 한다.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오히려 즐기셨다.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고자 하셨던 그분은 어쩌면 문화 예술을 이용하여 환경을 지켜내는 일을 하시지 않으셨을까 하는 상상으로,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 혼자 웃곤한다.
주변사람을 아끼고 문화예술을 사랑했던 청탄선생의 기억을 갖은 이 공간이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아시아리서치랩거점 공간으로 사용되어 진다는 것은 청탄 선생을 사랑했던 많은 분들중의 한사람으로써 기분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이 곳은 기운이 아주 좋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기뻐하고 무언가를 해보자는 희망과 또 그 일이 잘되리라는 기대를 갖게된다.
제주 수눌음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하는 수눌당.
마을사람들에게는 편안한 문화공간으로, 더 나아가 건강한 문화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다양한 토론과 시도가 싹트는 곳으로.
이곳을 기획한 조금은(사실은 상당히) 이상주의자인 대장을 갖은 제주시 문화도시 팀과 2019년 공공문화기획 리빙랩을 통해 공공기획자로 길러진 혈기왕성한 PM, 함께 생각을 모으고 발전시키기 위해 기꺼이 준비된 자문단, 그리고 마을 주민들, 문화예술인들, 환경운동가들, 지역 사회 연구자들.
그들이 각각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로 이 곳 수눌당을 채워 갈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이런 기대들을 모아 '수눌당라이프'라는 짧은 영상들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시도들과 과정들을 영상에 담아 공유함으로써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 공간. 수눌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