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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빈 May 05. 2023

한국이 떠나간 '동독의 마지막 총리'에게 감사할 이유

※ 아주 늦은, 나만의 부고 - 한스 모드로 전 동독 총리, 그와 한국 사회는? 그리고 그와 북한은?


동독의 마지막 총리, 지난 2월 11일 95세 일기로 별세.


그를 처음 만난 건 2018년 2월이었다. 


5년여 전, 그가 90세가 되던 해였다. 아직 스키를 탄다며 건강을 자랑했다. 예상 시간을 훌쩍 넘겨 질답이 이어졌다. 2시간 정도 흐르며 단내가 나기 시작헀는데, 모드로는 지친 기색도 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두번 째 인터뷰는 그로부터 1년여 후  [서독의 기억] 연간 연재를 하던 때였다. 사실 모드로 총리를 다시 인터뷰할 계획은 없었다. '마지막 동독 총리'라는 과거 직함이 시리즈의 무게감을 더해줄 수 있었지만, [서독의 기억]이 보여주려는 시사점과는 거리가 있다고 봤다. 


모드로는 1989년 동독 붕괴 당시 조기 총선을 이끈 개혁파 공산주의자다. 서독으로부터 대규모 지원을 받아 안정적으로 동독 체제를 안정적으로 개혁한 뒤 단계적으로 통일하자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동독 시민들은 조기 통일을 원했다. 그가 조기 총선을 지지한 셈법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 


실각한 모드로는 이후 화폐통합 등 급속한 통일 프로세스가 진행되면서 동독 시민들이 많은 것을 잃었다고 주장해왔다. 


'통일 후유증'에 대한 주장은 우리 사회 일각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한국 언론에 독일의 극우세력 부상과 동서독 지역 경제적 격차에 주목하는 경향이 생기면서 모드로는 더욱 우리 사회의 '레이더망'에서 두드러지게 보였다. 


그런데, 난 모드로의 주장에 대한 관심은 트랜드 정도에 그쳐야 한다고 봤다. 


우리 시민들에게 그리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생각이었다. 


학계와 정부 사이드에서는 한반도 급변 상황 등을 대비해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할 주장이지만, 독일에서 얻어야 할 일반적인 교훈의 '우선 순위'는 아니었다.  


'통일' 자체가 언감생심인 현실에서 '통일 후유증'이 아니라, 결국 통일의 밑바탕이 된 동서독 교류·협력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서독 내 동력, 동독 내 동력, 국제적 배경과 외교적 노력에 대한 교훈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모드로가 한국 언론 인터뷰 등에 적극 응했고 '마지막 동독 총리'라는 상징성 때문에 독일 통일 문제와 관련해 과다 대표된다는 생각도 있엇다.  개인적으론 한국 언론의 '전가의 보도'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동독 붕괴시 '단계적 통일'이 필요했다는 그의 주장도 그리 와닿지는 않았다. 일단 동독 시민의 통일 욕구를 막을 방법은 없었고, 고르바초프의 실각 가능성 등 주변국 상황이 급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모드로식의 단계적 통일 방법론은 설득력이 커 보이지 않았다. 당시 '천금 같은 통일 기회였다'는 증언을 많이 접한 탓도 컸다.


결론적으로 다시 인터뷰를 하긴 했다. [서독의 기억] 프로젝트에 함께 했던 이진 박사와 여러 차례 열띤 토론 끝에 결국 다른 초점으로 모드로의 이야기를 담기로 하고 다시 찾아갔다.  


사실, 개인적으론 한국 사회와 모드로 간에 가장 굵은 끈을 '북한'으로 본다. 공산주의자 모드로는 독일 좌파당의 원로였고, 좌파당은 북한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모드로는 북한을 방문해서도 고위 관계자를 만날 수 있는 인사였다. 나와의 인터뷰에서도 모드로는 북측의 소식을 여러 전해주기도 했다. 기사에 들어가지 않은 내용도 있었다. 


만약 남북 관계 경색기에 독일 정부의 외교 행사에 남북 대사가 같이 초청받았다면, 모드로는 남북 대사를 자연스럽게 인사시켜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독일 측 인사일 수 있다. 


한국 사회는 모드로를 그렇게 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남북 관계에서 더 역할이 있었을 수 있다.


독일의 친한파 인사, 독일에서 남북의 끈이 될 수 있는 인사의 부고. 우리는 '마지막 동독 총리' 보다는 이런 의미에서 그의 죽음을 더 기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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