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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빈 Nov 01. 2020

연대.혐오배격 강조한 독일 지도자들의 품격...그런데

                      [사진 설명 : 지난 2월 아시아인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킨 슈피겔지 표지 ]


 독일에서 정치 지도자들의 메시지를 듣다보면 한국의 지도자들에게 듣기 쉽지 않은 단어들이 들린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 등 독일 지도자들이 귀에 따갑도록 하는 말이 있다. '연대'다. 유대인 학살 등 2차 세계대전 관련 등 주요 기념일에서 연설을 할 때마 나오는 단골 단어다. 시민사회의 연대를 의미한다.

  특히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지난 4월 TV 특별 담화에서 "우리의 이웃이 없으면 독일은 위기로부터 강하고 건강하게 벗어날 수 없다"면서 "독일 통일 후 30년, 2차 대전 후 75년인 지금 우리는 유럽에서 연대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러분들이 매일 보여주는 연대는 미래에 더 필요할 것"이라며 “우리는 두려움이 많고 의심 가득한 사회가 아니라 더 존경을 받고 신뢰감을 가진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도 코로나19 확산 사태 속에서 여러 차례 연설을 통해 연대를 호소했다. 메르켈 총리는 셧다운 조치가 취해진 직후인 지난 3월 18일 대국민 연설에서 "전염병은 인간이 얼마나 취약하고 얼마나 서로의 행동에 연결돼 있고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지 보여준다"면서 "우리가 얼마나 서로서로 지켜주고 힘이 되는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일 이후, 아니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으로 이렇게 연대와 도움이 필요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연대와 함께 항상 ‘짝꿍’을 이루는 독일 지도자들의 메시지가 있다. 혐오와 증오, 인종주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전염병 사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이러스 감염자가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시절이다. 지난 4월 초 독일 서부의 소도시로 프랑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게르하임에서 국경을 넘어온 프랑스인들을 상대로 혐오적인 행동을 가한 일이 발생하자 독일 지도자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게르하임에서는 독일 시민들이 마트 계산대에서 줄 서 있고 길을 가는 프랑스 시민들에게 침을 뱉거나 욕설을 한 사실이 게르하임 시장이 영상을 통해 공개적으로 지적하면서 알려졌다. 독일 시민은 "코로나 국가로 돌아가라"라고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 당시 프랑스와 독일의 누적 확진자 수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혐오 사건이 발생한 것은 전염병 사태 속에서 일부 독일 시민 사이에 잠재해 있던 잠재해 있던 타자에 대한 혐오의 정서가 드러난 것이다.

  이 사건은 지역 정치인들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곧바로 대연정 소수파 사회민주당의 유력 정치인인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코로나바이러스는 국적을 모른다. 독일과 프랑스는는 같은 배를 타고 있다"면서 "이런 일을 듣는 것은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안케 레흐린거 자를란트주(州) 경제부 장관도 트위터를 통해 강력히 비판하면서 "프랑스 친구들에게 대신 사과한다"고 전했다. 집중치료 병상에 여유가 있던 독일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중증 감염자들을 이송받아 치료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혐오 문제에 대해선 단호한 모습이 떨어진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중국인을 겨냥한 인종차별 사건이 벌어졌다. 외모적으로 중국인과 구분이 쉽지 않은 우리 교민도 타깃이 됐다. 이런 사건은 언론에서도 다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적 주목도는 높지 않다.

  지난 4월 말 한인 유학생 부부가 베를린의 지하철에서 인종차별적인 언어 폭력과 성희롱가지 당했다. 유학생 부부는 경찰이 올 때까지 5명의 가해자 무리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용감하게 막아서는 과정에서 물리적 폭력도 당했다. 이후 유학생 부부와 교민들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여러 현지 언론에서 이 사건이 조명됐다. 일부 교민과 현지인들은 '인종차별은 바이러스다'(Rassismus ist ein Virus)라는 온라인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인종차별 및 반(反)유대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방정부 통합특임관실도 최근 아시아계 인종차별 현상에 대해 경고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독일 지도자들의 단호한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지난 5월 정범구 주독 한국대사는 베를리너모르겐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베를린이 안전한 도시라고 느끼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의 답변에서 독일에 과제를 던졌다.

"작가 에리히 케스트너는 한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베를린에서는 누구도 피부색이나 신분증, 은행계좌, 교육 정도를 묻지 않았다'고. 그런데 (유학생 부부) 사건이 발생하고 나니 과연 이렇게 관용적이고 다문화적인 베를린의 모습이 여전히 현실에 부합되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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