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되는외신의칭찬사례는우리를기쁘게하지만, 사실그이면에는절치부심하는각국의노력이숨겨져있다. 초기에는단순화와단편적인묘사가제대로된이해를방해하기도했다. 앞서 글에서도 인용했던 '유교적집단주의'로한국방역의성공원인을뭉뚱그리던독일일간지소속 '도쿄발'기사는그좋(지 않)은사례였다. 하지만지금은한국에서고안되고시행되는구체적인조치들에대한광범위한분석과비교그리고토론이뒤따르고있다. 우리가 2015년메르스의실패속에서도해외의비판을경청했던것처럼, 2020년의실패에서이제라도교훈을얻고자그들은바삐움직이고있다.
그렇게유럽, 특히독일사회에는지금 '국뽕'이라는말대신 '배우자(lernen)'라는말이유행어가되었다. 다른색채의언론사들은서로경쟁이라도하듯 '독일이한국으로부터,싱가포르로부터,대만으로부터,홍콩으로부터,스위스로부터,그리스로부터,체코로부터배울수있는것'은무엇인지분석하고토론한다. "Was Deutschland von XXX lernen kann(독일은 XXX로부터무엇을배울수있는가)"라는식으로변주가이어지는이 '독일의배우기' 시리즈에는외부의실패도성공도더이상남의일이아니라는깨달음이담겼다.
의외로둔감해보였던독일시민사회에서도변화의조짐이보인다. 마스크쓰는문제로답답할만큼왈가왈부하던시민들은이제는왜한국식마스크착용문화가상호존중과연대의표현인지, 왜 그것을 과거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인지에 대해 열띄게 토론하고있다 (페이스북링크).
코로나19 시대 이전, 일본이나 한국에 멀리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서구인에게 겨울과 봄철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의 모습은 커다란 문화적 충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스크를 쓴 모습이 기억에 남았을 뿐, 마스크 이면에 감춰진 사람들의 생각까지 전달이 되지 않았었다. 바로 그랬던 유럽인들이 마스크 쓰기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지키려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문화적 습관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 것이다. 위기 속에서 집단적으로 이루어진 인식의 전환은 이들에게 앞으로도 쉽게 잊혀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물론 그 변화의 시작은늦었으며 변화의 움직임은 여전히일부몰이해에부딪히기도 한다. 여전히 음모론과 가짜뉴스 그리고 극우주의의 결합 속에 퍼져나가는 코로나 조치 반대 시위도 보이지만, 시민 대부분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다 (관련 독일 기사 링크/ 이 특별한 주제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에서 다룬다). 무엇보다 과거에는 아시아적인문화를 빈약하게 상징했던마스크쓰기가 이제 서구사회많은곳에서연대의 문화적 상징이되었다는것이 이채롭다. 2~3월경 마스크가 있는데도 주위의 시선 때문에 쓰지 못하던 아시아계 시민들의 난감함도 사실이고, 그런 상황에 대해 이렇게 늦게 나마 성찰하고 반성하고 동아시아인과 연대하고자 하는 독일 사회의 모습도 사실인 것이다.
그러한 문화적 가치 평가와 인식의변화는 독일내정치·사회·방역제도뿐만 아니라 언론환경의구조적변화로이어진다. 실제로도 독일연방정부에서통합및차별문제를 총괄하는 차관급비트만-마우츠(Annette Widmann-Mauz)연방정부 통합특임관은독일의정론지 SZ, 공영방송그리고 트위터에서 '코로나위기속아시아인차별문제'를앞장서거론하고있다. 이미독일연방내무부는내부정책문서에서한국의사례를정밀하게분석하며교훈과대안을고민한바도 있다(동 정책문서 PDF링크).
과거아시아에대해말하면서도아시아인의목소리가직접전달되는일은드물었던환경에도변화가일고있다. 언론도그간의유럽의치명적인오만(링크)를반성하며, 아시아의시민의목소리와전문가의발언권을강화한다.글쓴이의인터뷰가 단독 인터뷰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 역시도이러한배경이 있다. '동아시아인에 대해' 쓰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인이 동아시아에 대해 직접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공감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쓴 소리를 독일 사회에 더욱 선명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욕에 크라우트레포터의 편집자는인터뷰기사를„Die westliche Ignoranz hat unnötige Opfer gefordert“ ('서구의무지로불필요한희생이초래되었다')라는날선제목으로올렸다. 아직 완전히 위기를 벗어 나지 못한 독일 사회에 던지는 기사 안에 빼곡하게담긴오리엔탈리즘과일상의인종주의에대한글쓴이의지적이불편할수도있었겠지만,독일의 독자들은 그에 반발하기보다는전반적으로차분하고도진정성이담긴반응을보여주었다.(아직도 토론이 트위터에서진행되고 있다:링크)
독일 사회에는 느리지만 전향적인 움직임이 느껴진다.표면적인현상에일희일비해서도안되겠으나, 불과몇달사이에이루어진변화라는점에서적어도이를평가할만하다. (관련연합뉴스기사)
위기 이후 삶에 대한 고민과 토론은 민주주의 시민의 몫이다
우리 역시 비판에 경청하는 것을멈추고 당연한 것을 되묻는데 게을러진다면, 다음의더큰위기앞에서또다른실패를경험할수도있다.그것은기후변화일수도, 에너지자원파동일수도, 그로인한새로운대규모난민사태일수도, 아니면지금으로서는예상할수없는전혀다른차원의위기일수도있다. 심지어코로나사태대응에성공적이라고평가되었던한국식방역모델이또다른시험대에오르는상황이올수도있다(이점에대해서는 전혀 다른 글이필요할것같다). '과거의 성공때문에패러다임을바꾸거나개선하는것이오히려더어려워질수있다'는성공한자의역설이갈라파고스증후군과결합될수도있는것이다.
특히그중독일이초기의혼란과편견을극복하고앞서한국모델을연구했을뿐만아니라, 이를넘어우리가포착하지못한문제에도이미해결책을 모색하고있는 상황은 구체적으로알려지지않았다. 위기가 장기화하고 또 반복될 수 있는 상황에서 적용될 수 있고 적용가능한 원칙에 대한 고민들은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을텐데 말이다. 무엇보다 위기를겪은이후변화될사회의모습에대해 일부 전문가 들 뿐만 아니라 시민들간에 토론이 이루어지고 합의를지향하는모습에대해서는더더욱알려지지못했다. 각자의 섬에서 벗어나 지구적 위기의 본질을 인식하고 열린 자세로 고민과 해법을 나누는 새로운 의미의 연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