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갓 Apr 03. 2020

용량 초과

 나는 샤워를 할 때 내 멘털이 정상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느낀다. 나는 거의 항상 머리를 감고, 몸을 씻고, 세수와 면도를 하고, 이를 닦는다. 별다른 이유는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냥 쭉 그래 왔다.

 하지만 내가 혼이 나간 상태가 되거나 멘털이 정상이 아닐 때는 머리를 감고, 양치를 하고 있거나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있다. 그러다 아차차, 하고 정신을 차린다.

 그런데 이번에는 샤워를 하지 않고도 내 멘털이 나갔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을 새로 찾았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혹은 생각하지 않고, 말을 마구 해대는 것이다. 어느 순간 내 마음과 머리에 있는 것들, 심지어 쓰레기통에 있던 것들까지 몽땅, 을 끄집어내고 싶어 진다. 그러다가 또 한순간 마음이 뒤바뀐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닫아버리고, 그저 묻는 말에만 답할 뿐이다. 그것을 몇 번인가 반복하다 보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한없이 깊은 무기력함에 빠져 버린다. 생각도 말도, 일도, 살아가는 것도.

 아마도 멍청한 내 머리의, 옹졸한 내 마음의 용량이 넘쳤기 때문이 아닐까? 더 이상 생각이랄 게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없는 것이다. 결국 갖고 있던 것을 토해 내는 것이다. 그것들을 묶고 있던 이성의 끈조차 풀어져 버려 나의 온갖 잡생각들이 온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그 양이 엄청나서 주워 담을 수도 없다. 사실, 그럴 의욕조차 없다. 그래, 너희들 가고 싶은 대로 가라.

 어쩌면 멀뚱멀뚱 구경만 해서 될 상황은 아닐지도 모른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사리분별이 되지 않는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무엇이 하고 싶고 하기 싫은 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나의 희망사항일지도 모르겠지만, 계속 그럴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카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