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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갓 Apr 04. 2020

고통의 무게

 누구에게나 고통이 있고, 그것은 종류도 모양도 무게도 다 다를 것이다.

 오늘 카페에 갔다가 마트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을 보게 되었다. 아, 누구였지. 군 생활을 같이 했다는 기억은 있었지만 그 사람이 부사관이었는지 장교였는지가 기억나지 않았다. 주임원사였던가. 그때 갑자기 기억이 번뜩 떠올랐다. 연대장님이다.

 나는 군 생활을 할 때 두 분의 연대장님을 모셨다. 두 분 다 특징이 뚜렷했다. 처음에 모셨던 분은 호인이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졌고, 리더십도 뛰어났다. 굳이 화를 내지 않아도 아우라가 느껴졌고, 말 한마디에서조차 온화한 성품이 느껴졌다. 내가 생각하는 참된 군인상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분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장군이다.

 그리고 또 한 분. 처음에는 사관학교 출신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다혈질이고, 조금은 난폭한 인상의 연대장님. 아랫사람이 실수를 하거나 답답한 행동을 하면 가차 없이 독설을 퍼부었다. 소대장들은 굳이 연대장님과 대면할 일이 없어서 괜찮았지만 중대장님이고 대대장님이고 예외는 없었다. 독설이라고 해서 쌍욕을 퍼붓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이 분을 기억하는 이유가 또 있다. 유독 전기, 전열기구 관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셨기 때문이다. 보통 그런 것들은 장교들보다는 부사관들이 챙긴다. 연대장님은 겨울철에 전열기구를 쓸 때 조심하라고 하셨고, 퇴근할 때도 전기, 전열기구를 잘 확인하라고 하셨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연대장님은 화재로 가족, 사모님과 두 딸, 을 잃으셨다고 했다(물론 직접 들은 것은 아니고 가까운 선배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 당시에 연대장님은 가족을 구하려고 하다가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연대장님의 목 언저리에 제법 큰 화상 흉터가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어렸을 때 다친 건가? 하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런지는 몰라도, 연대장님은 늘 외로워 보였다.

 가족을 잃는다는 것. 그 고통의 무게, 슬픔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애초에 없던 것과는 다르다. 나에게는 가족 따위는 필요 없어, 라고 스스로 가족과의 연을 끊는 것과도 다르다.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 막아 보려고 해도, 결국 그들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막지 못했다. 내 가족이, 세 사람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 내 몸이 불에 녹아내려도, 그것을 막지 못했다.

 누구나 타인의 고통에는 무감각하다지만, 그걸 감안해도 내 고통의 무게는 연대장님에 비하면 창피하기 그지없다. 얼마나 아팠고, 또 얼마나 아파하고 계실까? 앞으로 또 얼마나 아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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