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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갓 Sep 24. 2020

기묘한 밤

어제도 고민했다. 나갈지 말지. 그냥 집에서 맥주나 마실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지 않았다. 오후 8. 이른 시간부터 적막함에 몸서리칠 생각을 하니, 그것을 견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카페나 가야겠다. 3시간이라도 벌자.
 따뜻한 아메리카노  잔을 주문했다. 그리고 노래를 들으며 일기를 썼다. 가끔, 아주 가끔, 내가  일기를 훑어 보기도 하는데 재미도 감동도 없다. 그저 수많은 글자들이 노트에 빈칸 없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을 뿐이다. 어떤 날은 넋두리하듯이 글이 술술 써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떤 날은 개학  밀린 방학숙제를 하듯 떠밀려 글을 쓰는 날도 있다. 어제는 유난히 일기가  써지지 않는 날이었다. 그냥  의식의 흐름을 따라서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냈다. 내가 쓰면서도 무슨 말을 하는지   없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뭔가를  나간  같다. 하지만 아무 상관없다, 내용이 구려서 썩은 냄새가 나더라도, 누구도 뭐라고  사람은 없다.
 겨우겨우 일기인지 뭔지를 쓰고 나서 노래 듣기에만 집중했다. 하염없이 노래만 들었다. 멜로디도 가사도 아무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었을 뿐이다. 그러다 몸이 뻐근해지는  같아서 몸을 좌우로 틀었다. 문득 주위를 돌아보게 되었다.
 무언가가 보였다. 내가 정확히 반쯤 보고 싶어 하고, 정확히 반쯤 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무언가. 나는 눈을 찡그리고 다시 확인했다. 형체는 비슷한데, 세세한 부분까지는 확인할  없었다. 우리 사이에 테이블 3 정도가 놓여 있는 정도의 거리였는데 아무리 눈을 찡그리고  난리를 쳐도 그것은 희미하게만 보였다. 망할, 진작 안경을 새로 맞췄어야 했는데.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일을 했다.  일이라고 해봤자 그저 노래 듣는 것뿐이지만. 내가 잘못  것이라고 생각했다. 머릿속에 쌓여있던 생각들이, 비슷하게 생긴 무언가와 만나 나를 현혹시킨 것이다. 나는 그저 솥뚜껑을 자라로  것이다. 아마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것이 무엇인지 곧바로 확인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형체는 흐릿했다. 확실히 아니군, 이라고  만한 단서가 없었다.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 내가 다가가서 확인을 하면 어떻게 될까? 만약 내가 잘못  것이라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실감이 몰려오고, 허무함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것들이 찾아오더라도 일단 내가 잘못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만약 내가 잘못  것이 아니라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거지?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짐을 챙겨 반대쪽 문으로 나갔다.  무언가는  마음속에서 불확실한 것으로 남아 버렸다.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생각은 공항철도처럼 끊임없이  사이를 오고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감정이  쪽으로 치우쳐 버리지는 않겠지.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갑자기 한기를 느꼈다. 최근  , 아니   만에, 어쩌면 처음으로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는 한기였다. 오늘 날씨가 많이 쌀쌀한 건가? 가만히 느껴보았다. 하지만 날씨는 조금 쌀쌀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엄살  만큼은 아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온수매트 전원을 켰다. 그것이 따뜻해지는 동안 나는 외투를 걸치고 옥상에 올라갔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옥상에서 나는 한기를 제대로 느꼈다. 이것이 절대 날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차가움은  피부와 뼈를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부터 뼈와 피부를 향해, 안에서 바깥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옥상에서 내려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이불속에서 나는 문득 이것은 혹시 신이, 만약 신이라는 것이 있다면, 혹은 세상이 나를 향해 경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보기였는데, 괜찮겠어?
 나는 이불 속에서도 한동안 계속해서 한기를 느꼈다. 그리고 잠시  한기가 서서히 사라지고 마음이 조금이 차분해질 때쯤 졸음이 갑자기 몰려왔다.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그리고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러다 문득 잠에서 깼다.  오래   같았다. 시계를 보니 겨우 1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나는 놀랐다.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그리고 다시 한기가 느껴지는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저 차가운 공기 때문에 추위를 느낀 것이었다. 확실히 옥상에서 내가 느꼈던 차가움은 지금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리고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어쩌면 그것은 누군가의 생령이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스스로의 의지로 나타난 것일까, 아니면 내가 끄집어  것일까. 짐작조차   없다. 참으로 기묘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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