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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갓 Apr 26. 2023

고양이 2

망상

 한동안은 일이 바빠서 출근과 퇴근만 반복되는 일상이 계속되었고, 꿈보다도 더 비현실적이었던 양양에서의 일들도 아무 일 아닌 것처럼 잊혀갔다.

 

 바쁜 시기가 지나가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나는 다시 양양에 가고 싶어졌다. 노름꾼들이 도박장을 못 끊고, 게임 중독자가 PC방을 못 끊는 것처럼. 다시 생각해 보니 양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여유가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벌써 해가 지기 시작하네? 라는 말이 나오고, 저녁이면 코 끝이 시린 시기가 될 때쯤 나는 다시 양양으로 향했다.

 

 늘 그렇듯 바닷가 근처에 차를 세웠다. 출발할 때는 새카맣던 하늘이 어느덧 태양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득 ‘저 까만 하늘이 빛을 품은 걸까? 아니면 자신의 어둠을 잃어버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벤치에 앉아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봤다.

 

 해가 완전히 뜨고, 서서히 눈이 찡그려지기 시작할 때쯤 문득 고양이가 떠올랐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가 있었던 자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저번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갑자기 ‘끼융-’ 하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소리를 따라 정면 모래사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고양이가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오랜만이야.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데?’ 그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좀 걸을까?’ 그는 그렇게 말하고 앞장서서 모래사장을 걷기 시작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 걸었다.

 

 ‘왜 죽고 싶은 거야? 아, 이렇게 말하면 좀 그런가? 미안. 나한테는 그런 게 큰 의미가 없거든. 음.. 이렇게 물어보면 되려나.. 왜 그만 살고 싶은 거야?’ 그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물론, 고양이에게 뭐 대단한 표정이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아냐, 어떻게 물어봐도 상관없어. 그냥.. 결국 언젠가는 죽으니까? 조금 더 빠르면 어떨까 싶어서. 더 늦어지면 나중에는 죽고 싶어도 죽을 에너지가 없어지지는 않을까?’

 

 ‘맞아. 언젠가는 죽겠지. 그 마음으로 그냥 살아보지 그래? 그렇게 발버둥 치지 않아도 어차피 때가 되면 죽으니까.’

 

 ‘사실,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어. 이러나저러나 때가 되면 죽으니까 그냥 살아보지 뭐, 하는 마음. 그런데 그렇게 버텨보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워. 어떤 때는 잠깐의 행복을 느끼기도 해. 그런데 나중에는 그 행복이 더 큰 고통이 되더라. 결국, 고통의 연속이야.’ 그는 내 말을 듣고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아마, 고통이란 뭘까?에 대해 이해해 보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 만약 오늘이 네 인생 마지막 날이라면 넌 뭘 하고 싶어?’ 그가 물었다.

 

 ‘음. 딱히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은 없어. 그러고 보면 그래서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 모든 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배가 고프면 죽을 시간에 맞춰서 그전에 밥 한 끼 먹고 가는 정도면 될 것 같은데?’ 내 말을 듣고 그가 웃었다. 고양이도 표정이란 게 있구나.

 

 ‘네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 봐도 하고 싶은 게 없네. 좋은 집, 좋은 차, 맛있는 음식, 여행, 글쓰기. 모든 것들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야.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왜 그럴까?’ 내가 물었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참, 특이한 인간이네. 차라리 고양이로 태어나지 그랬어?’ 그가 말했다. 고양이로 살아보는 것도 재미있기는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 꿈이 있잖아? 누군가는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누군가는 부와 명예를 위해서 노력하기도 하지. 때로는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말이야. 내 꿈도 차라리 그런 거라면 죽을 때까지 노력해 볼 텐데 나는 더 이상 노력이라는 것을 하면 안 돼. 이미 다 끝나버려서 내가 노력하는 만큼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주게 되거든. 그래서 나는 내 꿈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죽을 때까지 남은 건 고통뿐이야.’

 말을 끝내고 옆을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는 또 사라져 버렸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점심때가 되어 신선한 생선을 먹으러 갔을지도 모른다. 내 뱃속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배가 고파서 나는 소리인지, 죽을 때가 되어서 나는 소리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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