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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작가 Mar 27. 2021

[조직론] 어딘가 불편하고 심사가 뒤틀리면 꼰대 의심을

그것인즉슨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뜻

건국 이래 꼰대가 이토록 광범위한 이의 입에 오르내린 적 없었던 것 같다.


대중문화에 K-컬처, 경제 분야에 주식이 있다면, 조직 분야에선 꼰대가 있다. 시대와 세대를 막론하고 꾸준히 우리들 입에 오르내리는 꼰대는 해학적이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참 서글픈 그런 오묘한 소재다.


왜인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꼰대 짓을 하는 사람이 자기의 행동이 꼰대인 줄 모르는 게 태반이거니와, 꼰대짓을 당하는 사람은 그 짓이 꼰대짓임을 꼰대에게 강하게 항변(?)할 수 없어서 인 듯하다.



사실 꼰대짓을 당하는 피해자는 꼰대짓을 행하는 가해자 몰래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과 술안주 삼아 뒷담화나 늘어놓는 정도밖에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도 다음날 꼰대가 꼰대짓인 줄 모르고 꼰대짓을 할 확률은 90프로에 수렴한다. 아는데 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꼰대들의 위험한 착각 중 하나는 본인이 하는 일이 마치 신중에 심혈을 더하고 거듭한 최선인 줄 안다는 거다. "김 대리, 그거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박 과장은 다 좋은데 그건 참 올드해" 따위의 것들이 그런 빈곤한 정신적 꼰대력의 산물이다. [사실 필자 역시 후배들에게 지나친 관심(이라 쓰고 간섭이라 읽는다)을 보이며 꼰대력을 발산할 때가 적지 않다]


이런 꼰대가 자신이 꼰대임을 아는 가장 쉬운 방법은 후배들이 하는 말 중에 본인에게 불편한 부분이 얼마나 있는지 직접 체감하는 것이다. 부하 직원이 하는 대화나 말 중 행여나 불편해 울컥하는 감정을 느낀다면 그 사람은 꼰대 기질이 소량이든 다량이든 일정 수준은 함유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꼰대들이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그들이 어떤 특정 대목에서 심한 정서적 이질감과 괴리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 선의와 악의를 떠나 불편하게 들릴 수 있으며, 삐딱한 수용의 심리를 가진다면 옳고 그름이 없는 사안에 관해서도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한마디로 피해의식, 자격지심, 편집증 따위의 초기 형태로 다른 이의 말을 곡해해서 수용한다는 얘기다.


남이 하는 말이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고 가슴 울컥함을 느낀다면 본인이 꼰대는 아닌지 의심해 보아라. 그리고 그 불편함을 가슴 한구석에 켜켜이 쌓아 놓고 타인을 바라본다면 의식을 하든 안 하든 언젠가는 꼰대짓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자신을 타자화해 스스로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본인의 꼰대력을 가늠할 수 있다. 꼰대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기에 꼰대도를 작게나마 인지하고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더 심한 꼰대가 되는 걸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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