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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작가 Apr 07. 2021

나도 그렇게 '나쁜 편집장'이 되어 가고 있었다

후배 기자의 연재물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던 나는, 글 말미의 어느 한 구절에 꽂혀 가슴이 먹먹해졌다. 새로운 편집장의 바뀐 편제와 시스템 하에 놓인 녀석의 남 모를 속앓이가 행간에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그건 분명 새로 똬리를 튼 불안이자, 전에 없던 스트레스였고, 그걸 안기는 쪽은 신임 편집장인 나였다. 편집장은 아니라곤 하지만 알게 모르게 기사 트래픽 그래프등락을 언급하며 구성원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었고, 기자 세계 고유의 위계에 눌려 그 안의 역학 관계를 지켜야 하는 후배들은 나름의 눈칫밥으로 편집장의 메시지를 이행해야 했으리라.


녀석이 받은 정신적 피해의 제일 큰 가해자가 나였다는 데 짐짓 놀랐다. 회사 생활이라는 게 적자생존의 문법과 약육강식의 논리가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느냐는 합리화는 나나 녀석 누구에게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녀석은 생존의 당위성을 글로 옮기면서도,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 거기에 더해 홍일점으로 남초 분야에서 홀로 경쟁하고 감내해야 하는 유일한 종이라는 사실에 더욱 불안을 느끼는 듯했다. 유일종이 마치 멸종위기종이라도 되어 곧 빙하기에 휩쓸려 사라질 것 마냥.


누구보다 하루를 일찍 시작해 회사의 아침을 먼저 열고, 일이 힘들어도 언제나 잘 버텨내며, 이따금씩 생기는 동료의 전력 공백을 넘치도록 잘 메워준 녀석이었기에, 마음 한구석에 든든함은 갖고 있었지만, 그 든든함이 가져다준 무탈함 내지는 안정감 덕에 정작 녀석 멍들어가는 속까지는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


내가 팀장일 때 "선배도 한번 보실래요? 빌려 드릴까요?"라며 내밀던 <나쁜 편집장>이란 책의 주인공은 어떻게 보면 나였다. 야전에서 후배들과 구르며 서로의 온도를 체감하고 공유하며 때로는 녀석들의 고충이 나의 분노가 되었던 7개월 전의 팀장은 온데간데없었다.



여기자가 남초 분야에서 살아간다, 나아가 생존까지 해나간다는 것의 의미를, 나쁜 편집장은 "직장 생활에 여자 남자가 어딨어. 다 똑같아야지"라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간과해 버렸다. 돌이켜 보니 녀석은 직장의 여사원 중 유독 월 1회는 필수로 써야 하는 보건휴가를 어렵게 대한 것 같다. 녀석은 편집장이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보건휴가를 입에 담지 않았다. 느낌상으로, 적어도 십중칠팔은 그랬다.


그 또한 녀석의 고충, 나아가 여성의 몸으로 남성이 이룬 정글에서 똑같은 잣대로 대우받고 인정받겠다는 녀석의 내뱉지 않은 뚝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나의 가슴은 유달리도 더욱 먹먹해진 것이다.


전선에서 후배와 전우애를 나눴던 열혈 팀장은 그렇게 '나쁜 편집장'이 되어 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니면 '나빠진 편집장'이 되었거나, 어쨌든 이 둘의 차이는 '못된 편집장'이 상태가 과거완료형이거나 현재완료형이라는 것 정도일 텐데, 후자라면 지금이라도 느껴서 다행이라고 자위라도 해야 하는 걸까. 저녁의 중턱에 남산 기슭을 타고 내려온 몇 줄기 마파람이 코트 속을 파고들었다. 4월의 그날은, 일교차가 유독 컸다. 편집장이 되어 한 멀어진 후배와의 거리만큼이나  바람은 생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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