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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소장 Aug 14. 2023

당신은 자신에 대해
몇 퍼센트나 알고 계신가요?

진짜 어른이 되는 방법

글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은 가명이며 실제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처음 상담실을 찾아온 미연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6개월이 지났는데도 밤마다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고 했다. 당장 눈앞에 닥친 졸업논문은 손도 못 대는 상황이고 너무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사귄 기간은 불과 2달, 그런데도 일상생활이 안 될 만큼 무너진 자신이 너무 창피해서 아무에게도 말을 못 하고 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자신은 원래 이렇게 약한 사람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실제로 그랬다. 그녀는 청소년기부터 부모의 도움이 없이 씩씩하게 외국 생활을 성공적으로 해왔다. 몇 번의 이별과 타지에서의 실패도 잘 이겨냈다. 스스로 단단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고작 2달간의 만남과 이별이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내가 알고 있었던 내가 아닌 것 같다. 


철호는 대학 입학부터 취업까지 정말 앞만 보며 달려왔다. 스스로 야망이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마침내 남들도 다 원하던 꿈의 직장에 들어간 지 6개월. 이때부터 마음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독립했으니 그동안 참아왔던 취미활동도 하고 여행도 마음껏 다닐 계획이었다.

그런데 좀처럼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예전처럼 활력 있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좌표를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 보아도 대학시절의 열정을 살릴 수가 없다.
도대체 왜 이럴까? 어딘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망가져 버린 걸까? 



미연과 철호. 둘은 어느 시점부터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 안에 에너지가 묶여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잠깐 이들의 마음 상태를 들여다보기 전에 우선 알아둘 게 있다. 도대체 마음이란 무엇일까?


마음은 다양한 감정들이 살아가는 집이다. 사랑, 감사함, 기쁨, 만족감 등과 같은 감정들은 삶을 긍정적이고 활기차게 한다. 그런 상태에서는 자신을 회의적으로 바라보지도 않고 의문을 품지도 않는다. 자책하지도 않는다. 반면 우울, 좌절, 분노, 실망과 같은 감정들은 삶을 부정적으로 느끼게 한다.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런 마음 상태에서는 자신이 겪는 부정적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머리를 흔들며 ‘아닐 거야’라고 생각해 봐야 에너지를 잡아먹을 뿐이다. 긍정적 감정보다는 부정적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따라 심리적 상태는 많이 달라진다. 



당신도 한 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를 해보자. 


주말 점심,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런 생각 없이 다음날 출근을 위해 핸드폰을 하며 쉬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속에서 생각지도 않은 ‘말 한마디’가 스멀스멀 머리를 들어 올린다. 낮에 만났던 친구의 말 한마디다. 분명 내가 의도적으로 생각한 것도 아니고 좀 전까지만 해도 심 각하게 여기 지도 않았던 말이다. 그러나 점점 그때의 장면이 서서히 선명해지면서 기분이 다운되기 시작한다. 


‘그런 뜻이 아닐 거야. 걔가 그럴 리가 없어, 오버해석하지 말아야지’ 


아무리 다독여도 불쾌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친구가 농담처럼 돌려서 말한 한 마디(이것도 확실치 않다)가 자신을 무시하는 장면으로 되살아난다. 여기에 더해 기억도 안 날만큼 오래전에 있었던 그 친구의 거슬리는 행동이 덧붙여진다. 화가 나고 자존심도 상하는데 그렇다고 실체는 불분명한 나쁜 감정, 그런 감정이 추슬러지지 않아 잠이 오지 않는다. 마음이 불편하다. 마음이 날 사로잡았다는 말은 바로 이런 상태를 말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의식에서 통제되지 않는 마음. 즉 무의식이 발현됐다고 말한다. 





이번에는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수호는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싫다고 한다. 상담실을 오는 오늘도 그랬다. 좌석버스를 타고 상담실로 가던 중이었다. 다음 정거장이 내릴 정류장이다. 미리 나가서 있으려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저 내릴 건데 잠시 자리 좀 비켜주세요”라고 했더니 “저도 내려요”라며 비켜주질 않는다. 일찍 내리고 싶은데 나갈 수가 없으니 속에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자기가 뭔데 비켜주지 않지?’ ‘한 번 더 말을 할까?’ ‘말했다가 싸움이 나면 어떡하지?’ ‘기다리는 게 맞는 건가?’ 등 온갖 소리가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돌아다닌다. 다시 비켜달라고 못하는 내가 너무 싫다. 결국은 버스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소리 못하고 있다가 옆 사람이 일어서고 나서야 내렸다. 부글부글 끓는 마음은 상담실에 들어서서도 진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불편한 마음이 통제되지 않는 것들은 대부분 의식에서 소화되지 못한 감정들이다. 심리학 용어로 말하면 이를 억압된 감정, 그림자라고 한다.


버스에서 옆 사람의 작은 거절에도 수호가 한 번 더 말을 못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상대와 입장이 다른 상황이 닥치면 수호는 가급적 자신을 상대에 맞추려 했다. 수호에게 ‘입장의 다름’은 곧 갈등의 시작이고 이는 어릴 때 겪었던 왕따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과거의 두렵고 무서운 그림자 때문에 감정을 속이고 참아왔던 것이다. 


그림자가 작동하면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를 살지 못하게 된다. 통제되지 않는 감정에 사로잡히면 잠자리에 들어서도 낮에 일들을 무의식 중에 소환하게 되고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한숨 푹 자고 나면 괜찮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에너지 덩어리인 소화되지 못한 마음 (거절한 사람에 대한 분노)은 시간이 흐르면서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옮겨간다. 자고 났더니 마음이 정리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무의식 층에 분노의 조각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몸이 힘들었던 기억은 어딘가에 흔적을 남긴다.’ 어느 한의사 한 분의 말에 무릎을 친 적이 있다. 몸의 기억과 마찬가지로 심리의 기억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감정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이전에 경험했던 것과 비슷한 자극을 만나면 묻어두었던 감정까지 되살아난다. 


수호처럼 청소년기에 믿었던 친구들로부터 이유도 모른 채 왕따를 당한 경험을 한 이들은 사람을 믿기를 두려워하고 대인관계에도 어려움을 겪곤 한다. 왕따 경험으로 인해 ‘마음 문을 열면 상대에게 당할 수 있다’는 마음이 깊게 새겨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온전한 자신을 드러내기가 어렵다. 대신 거부당하는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타인에게 맞추거나, 거리를 두고 피상적으로 대하는 쪽을 선택한다.


이처럼 그림자 감정은 지금의 자극을 증폭시킨다. 그래서 감정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을 상담할 때는 과거 경험을 살펴봐야 한다. 실제로 상담실을 찾아온 이들은 이전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후부터 대인관계 패턴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타인의 마음을 거슬리지 않기 위해 자신을 거기에 맞추며 살았다고 한다. 거절의 경험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했는데 사실은 자신을 그러지 못했고 이제는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것 같다고 낙담을 한다. 남들의 마음을 알아맞히는 것이 어려우니 항상 불안하고 눈치를 보며 살았다고 한다.


자신을 안다는 건 말처럼 쉽지도 않다. 왕따 같은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잘 안다고 말해도 실제로는 항상 부분만을 알 뿐이다. 마음이 힘들었던 기억이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는데 이를 모르고 산다. 상담을 시작할 때 내가 던지는 질문이 있다. 


“자신에 대해 몇 퍼센트나 알고 계신가요?” 


이렇게 물으면 어느 누구라도 100%를 안다고 대답하지 않는다. 상담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름대로 잘 살아오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주체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경우가 많다. 내 경험상 상담실을 찾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는 자신에 대해 30~50퍼센트 정도를 안다고 말한다. 가끔 70 퍼센트 이상 안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는 원래는 자신에 대해 90 퍼센트를 알았던 것 같은데 ‘사건’을 겪으며 10% 퍼센트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이 전복되었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진짜 어른이 되는 방법


마음 통제가 가능한 A씨 

A씨는 오늘 우울한 경험을 했다. 신입사원인 그는 어제 일처리를 제대로 못해서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그동안 사람들과 관계도 좋고 긍정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론 잘해야지 하며 우울한 마음을 다독이며 지하철을 탄다. 앞으론 좀 더 꼼꼼하게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A씨의 우울은 어제의 실수로 인해 부정적 경험을 함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처음 일을 배우는 신입직원이지만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일 때문에 창피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현재의 우울감정에 무의식적인 요소가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우울감정을 다독이 고, 자신이 개선해야 할 태도에 집중이 가능한 상태이다. 스스로가 알고 있는 마음이기에 과거의 감정이 영향을 미치지 않고 현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마음 통제가 불가능한 B씨 

B씨는 오늘 우울한 경험을 했다. 신입사원인 그는 어제 일처리를 제대로 못해서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그동안 사람들과 관계도 좋고 긍정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 부끄럽다. 앞으론 잘해야지 하며 우울한 마음을 다독이며 지하철을 탄다. 앞으론 좀 더 꼼꼼하게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앉아서 가다 보니 마음속에서 스물스물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오른다. 의도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난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네.’ ‘위축된 마음을 들키면 날 어떻게 볼까?’ ‘날 무시하면 어떡하지?’ 등 등의 소리들이 자꾸 괴롭힌다. 

B씨의 우울은 어제의 실수로 인해 부정적 경험을 함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처음 일을 배우는 신입직원이지만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현재 벌어진 일들은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과거의 ‘아픔 경험’들이 몰려온다. 너무 과한 생각이라면 머리를 흔들어도, 스스로가 너무 위축되고 자신 없어지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신입이면 당연히 힘들만하지’라고 여기는 것 이상으로 작아진다. 쉽게 통제되지 않는 것은 사실은 콤플렉스처럼 과거의 감정들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해결해야 할 마음의 영역인 것이다. 


A와 달리 B의 스토리에선 과거의 아팠던 흔적이 보인다. 그 일이 감정을 증폭해 A와 달리 ‘무능함, 무시, 위축, 거부’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자극에 의한 감정의 크기보다 더 큰 크기와 무게가 B를 짓누르고 있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먼저 내가 모르고 있었던 그림자는 없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무의식으로 밀어놓았던 과거의 경험과 감정을 끌어내고 마주해야 지금의 나를 사로잡고 있는 불안한 마음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야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다. 


오죽하면 아주 오래전부터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겠는가. 물론 자신을 안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부끄러울 때가 있다. 내가 1인분이 아닌 3인분의 역할을 하려 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애를 쓰면서 타인의 삶을 살았던 시절도 있었다. 좋은 사람으로 연기하느라 속으론 부대꼈던 기억도 꽤 있다. ‘나는 좋은 사람이야’란 기억도 사실은 나만의 기억일지 모른다. 내면에서 참느라 부대끼면서 삐져나온 공격성과 우울을 아마도 누군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심리학을 통해 내 내면을 들여다보기 전까지 나는 나를 몰랐다. 스스로 억압하는 감정도 모른 채 살았다. 아마도 퍼센트로 따지면 그 시절 나는 나를 50퍼센트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자신의 과거를 대면하는 일은 힘들다. 때론 무섭다. 과잉 팽창되었던 또는 과잉 축소되었던 나를 발견하는 것은 부끄럽고 창피한 경험이다. 그러나 나를 대면하고 나면 마음이 단단해진다. 이렇게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심리학용어로는 ‘무의식의 의식화’라고 한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앞으로 이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려 한다. 이 여정이 당신에게 작으나마 도움이 되길 기대하며, 



다음 시간에는
아이 같은 어른 vs 어른 같은 아이에 대해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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