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나만의 진심 그리고 태도
개개인마다 각자 다른 가정환경, 그리고 다른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동안 열심히 살면서 어떠한 영향을 받았냐에 따라서 가치관이나 성격적인 부분이 개개인마다 차이가 생긴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부분이고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와 똑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존중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배우며 이것이 인간이라는 종족의 사회적인 측면에서 보는 발전된 삶을 위한 우리만의 불문율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끼리 원만한 교류가 이뤄지기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의 욕심과 경험이 달라서 같은 말을 하더라도 서로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면서 의견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생각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대화를 하고 서로 양보하면서 뜻이 이뤄지지만 그래도 쉽게 일이 해결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학교선후배, 회사 내 동료, 동네친구 등등 어떠한 관계 속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크고 작은 다툼이 일어난다. 다툼을 긍정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혹여나 다툼이 서로에게 상처가 되었을 때에 나오는 책임감은 각자의 몫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그 상황을 안 만들기 위해서 나의 본심을 드러내지 않고 숨김으로써 상대방을 배려한다. 아니면 우리는 내가 부정적인 상황에 직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감정을 숨기고는 한다, 우리는 이것을 사회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힘들고 불편한 감정을 참고 좋은 것을 표현하기에는 주변인들의 시선에 의식해서 마음껏 표현하기 못하기도 한다.
사람은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원하고 그러기에 반대로 불편하다는 감정을 느끼고 불편이란 감정을 매우 싫어한다. 이것은 스트레스의 영역으로 부르고 우리가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식적 혹은 신체적으로 질병을 얻기도 한다. 그래서 매일 매 순간 불편한 감정을 참고 견디는 것이란 자신을 갉아먹게끔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스트레스의 원인으로는 정말 다양한 원인이 존재하지만 사람과 사람 간의 갈등에서 나오는 스트레는 쉽게 해결하기 힘든 스트레스 중 하나다. 사람 간의 마찰에서 나오는 불편한 감정을 쉽게 지울 수 있는 것은 어렵다. 물론 개개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과연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쉽게 불편한 감정을 잊어버릴 수 있을까?
풍선 안에 물을 채우다 보면 풍선은 부풀게 되면서 크기가 점점 커진다. 그러나 물을 과도 하게 넣으면 풍선이 터지게 되고 원래의 풍선의 모양으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된다. 풍선은 그렇게 쓰레기통을 버려지고 쓸모가 없어진다.
스트레스를 영원히 참을 순 없다. 스트레스를 참다 참다 나중에 언젠가는 폭발하게 되어있다. 폭발하면 막상 속이 시원할 수는 있지만 돌아보면 상처뿐인 결과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폭발이라는 단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대표적인 것은 화산이다. 화산은 폭발을 하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 기능을 마비시킨다. 그러나 폭발하기 전에는 분명 기름지고 좋은 땅을 만들고 따뜻한 온천을 만들고 있는데 말이다...
화산이 폭발하고 나서의 결과는 처참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화산 폭발을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은 아니다. 지진 혹은 화산에서 연기가 나는 것처럼 여러 전조 증상이 보이고 이를 인간이 예측하여 폭발을 대비한다. 우리도 항상 감정의 폭발이 있기 전에 분명 전조 증상이 보인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에 돌처럼 감정이 안 보이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끙끙 앓거나 혹은 자신도 모르게 말투가 바뀌었거나 때로는 사소한 것에 너무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식으로 여러 방식으로 우리는 폭발의 전조증상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나 혹은 내 주위 누군가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을 뿐 조금씩 감정의 폭발을 예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미대입시로 대학교 입학을 하자마자 다니던 미술학원의 강사로 1년간 근무했다. 1살밖에 차이가 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선생과 제자 간의 관계로 그림을 가르쳤다. 신기하게 학생들이 그림 실력을 떠나서 각자 개개인마다 그림 스타일이 다른데 이것이 유독 성격이나 감정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느꼈다. 같은 사과를 그리라고 지도하면 어떤 학생은 연하고 깔끔하게 그리는 반면 어떤 학생은 사과의 모양을 틀어서 삐뚤빼뚤 그리기도 한다. 그것은 성격과 가치관의 차이다. 일명 표현력이라고 하는데 내가 같은 사과를 보아도 머릿속에서 느끼는 사과의 이미지가 가치관에 영향을 받아 뇌에서 사과의 이미지가 다시 그려지고 또한 손끝 감각에서는 성격에 영향을 받아서 사과의 이미지가 다시 그려지는 과정으로 결국 나만의 사과가 완성이 된다.
그렇다고 내가 똑같은 사과를 매일매일 그린다고 가정한다면 과연 똑같이 그려질까?
절대 아니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 내가 그리는 똑같은 사과라도 다르게 그려진다. 기쁘고 행복한 날에는 이쁘고 동글동글한 사과가 나오고 화나고 우울할 때는 모양이 뒤틀어지고 색감적으로 탁한 사과가 그려진다. 사람의 심리에 따라서 그림을 그리는 것도 달라진다. 그래서 미술심리학적으로 그리는 형태, 색감, 질감적인 부분에 따른 현재의 심리상태를 어느 정도 파악 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이것을 통해서 학생들이 오늘 느끼고 있는 감정을 어렴풋이 파악하기도 하고 대부분 당일 그리는 그림과 맞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에는 한 학생이 학교에서 선생님과 갈등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친구는 감정에 매우 예민한 아이인 것은 알고 있었고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였는데 4시간 동안 학원 내에서 예비로 진행하는 미술입시시험을 치르면서 쇠로 된 파이프를 그리는데 쇠파이프가 엄청 울긋불긋하고 과하게 명도의 대비를 줘서 쇠파이프의 형태와 벗어나게 그린 것이다. 시험 후 그 친구와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울분을 토하면서 이야기하면서 화를 내는 것이다. 그 친구를 위로하고 후에 나는 그림을 한참 동안 바라보면서 감정이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서 큰 영향을 주는 것에 신기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쳤다.
이처럼 우리는 감정을 100% 숨기기는 어렵다.
숨길 수 없는 감정, 그 안에서 나오는 나의 소심한 본심, 그렇다고 참기에는 아픈 존재... 우리는 가끔씩은 표현을 하고 싶어도 표현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거일지도 모른다. 배려와 화합을 위한 나의 행동이 어쩌면 눈치 보고 꾹꾹 참고 있는 행동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소심한 성격 탓에 주변사람들을 배려한다는 목적으로 많은 것을 맞춰주고 따라갔지만 결국에는 내 주관이 사라지고 마음의 병이 생겨 버려 사소한 것에 크게 받아들이고 화가 나는 상황이 생겼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내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한심하고 답답하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힘들고 무섭지만 내가 힘든 표현과 행복하다는 표현을 조금씩 하기로 마음먹었고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점점 익숙해지면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러니 마음속에서 항상 있었던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긍정적인 생각을 자주 하게 되면서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든다. 물론 표현에 대해서 지나친 표현은 상대방에게 무례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래서 적당히 최소한의 표현이 나는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상대방이 기분이 나쁘지 않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된다. 그러면 상대방도 같이 표현하고 그러면 서로를 잘 알게 되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표현을 안 하고 사는 것은 힘들다. 물론 표현을 못한다고 잘못은 아니다. 조금씩 조금씩 하다 보면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나에게 맞는 것인지 깨닫게 되고 그러면 표현에 익숙해지고 능숙해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가 조금씩 시도한다는 의의를 가진다면 잘못된 표현이라도 스스로에게 발전된 모습이 보인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표현을 어떻게 얼마나 하는 것도 '나'인 것이다. 터진 풍선이 되기 전에 한 번쯤 나를 돌아보면서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어떨까?
우리는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서, 서로서로 잘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