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 앞에서 자꾸 설명부터 하게 되는 이유

완벽주의자들이 스스로를 통과시키지 못하는 순간들

by 규현

완벽주의자들은 칭찬을 잘 믿지 못한다.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기보다 마음이 먼저 불편해진다. 잘했다는 말을 듣고도 그 감정은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른 생각이 시작된다. 아직 부족한 부분, 다시 봐야 할 지점, 괜히 넘긴 선택들. 칭찬을 듣는 순간부터 완벽주의자들은 이미 다음 검토를 하고 있다.


칭찬을 의심으로 받아들인다.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는 건 알지만, 그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완벽주의자들이 알고 있는 과정과, 타인이 본 결과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은 생각보다 크고, 쉽게 설명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칭찬은 기쁨보다 설명이 필요한 일이 된다. 이 결과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망설였는지,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왜 이 선택이 최선이 아니라고 느꼈는지. 그런 이야기들이 마음속에 남아 있어서 칭찬은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결과만 보면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완벽주의자들은 그 결과에 도달하기까지의 불안과 의심을 함께 기억한다. 그래서 괜찮다는 말 앞에서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완벽주의자들은 결과보다 기준을 먼저 떠올린다. 이 정도면 괜찮다는 말보다, 스스로 세워둔 기준에 도달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문제는 그 기준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무언가를 해낼 때마다 기준은 조금씩 위로 올라간다. 어제는 충분하다고 느꼈던 것이 오늘은 부족하게 보이고, 오늘의 결과는 내일 다시 보면 아쉬운 지점이 먼저 눈에 띈다. 기준이 움직이니 만족도 함께 움직인다. 그래서 오늘의 칭찬은 늘 어제의 기준에만 겨우 닿아 있다. 기준을 넘어서기보다는 따라잡는 데 급급한 상태가 반복된다.


또 하나는 과정을 지나치게 많이 알고 있다는 점이다. 실수했던 순간, 망설였던 선택, 마음에 들지 않았던 디테일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다. 남들이 보지 못한 부분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다. 완성된 결과를 향한 칭찬이 어딘가 단순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정도 과정이 있었는데, 이 정도 평가로 끝나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과정이 보상받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보다는, 과정이 너무 많아서 결과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감각에 가깝다.




칭찬이 부담이 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괜찮다는 말을 듣는 순간, 다음에는 더 잘해야 할 것 같다는 압박이 따라온다. 지금의 결과가 기준이 되어버릴까 봐, 이 정도에서 멈추게 될까 봐 괜히 경계하게 된다. 기대가 쌓이는 일보다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칭찬은 마침표가 되지 못하고 다음 문장을 요구하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쉬어도 될 것 같은 순간에도 마음은 이미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만족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성장이라고 믿었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 동안 완벽주의자들은 거의 쉬지 못했다.


계속 과거에만 머문다.


이런 방식은 성취를 남기지 않는다.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니 쌓이는 것도 없다. 끝낸 일보다 아직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더 오래 남는다. 잘 해낸 기억보다 아쉬웠던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항상 아직이라는 상태로 다음을 향해 가게 된다. 그게 성실함이라고 믿어왔지만, 어쩌면 스스로를 통과시키지 못하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준은 계속 올리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합격을 주지 않는 셈이다.


요즘은 완벽주의자들 중 일부가 칭찬 앞에서 조금 다른 선택을 하려고 한다. 부족한 점을 먼저 꺼내지 않고, 굳이 설명하지도 않는다. 예전처럼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말도 줄이려 한다. 그 말이 겸손처럼 보일 수는 있어도, 결국은 자기부정으로 남았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냥 고맙다고 말하고 잠시 멈춘다. 그 말이 어색하게 느껴져도, 바로 정정하지 않는다. 마음속에서 반박이 올라와도 잠시 그대로 둔다.


여전히 완벽주의자들은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기준은 여전히 높고, 마음에 걸리는 부분도 금방 떠오른다. 하지만 모든 칭찬을 의심부터 하지는 않으려 한다. 완벽해져야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연습이 먼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칭찬을 믿는다는 건 기준을 낮추는 일이 아니라, 잠시 자신을 통과시켜 주는 일에 가깝다. 계속 다음만 바라보느라 현재의 자신을 보류 상태로 두지 않는 것. 어쩌면 사람은 누구나 칭찬을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잘했다는 말을 바로 반박하지 않고, 이유를 붙이지도 않고, 그 말이 머무를 자리를 조금 남겨두는 연습.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순간이 있어야 다음으로 갈 힘도 생긴다. 그래서 완벽주의자들은 조금씩 생각하게 된다.


칭찬을 받아들이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그리고 그 연습은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해도 충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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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