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준이 전부는 아니었다

완벽하지 못해도, 충분했던 순간

by 규현

언제나 그랬듯이 출근하고 회사에 들어와서 책상에 앉고 어느 때와 다름없이 업무를 하고 있었다. 오늘도 이렇게 평온한 업무를 하면서 지나가겠구나 싶었던 순간 잠깐 상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 상사는 나에게 갑자기 내가 모르는 프로젝트의 회의를 같이 참석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같이 회의실로 들어가서 내가 디자인 업무를 맡아달라고 지시했다. 사실 크게 문제 되거나 잘못된 부분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안 그래도 처음 듣는 프로젝트에 모르는 용어도 많고 그리고 고객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제대로 인지도 못하는데 완성을 해달라는 기한은 매우 빠듯했다. 내가 디자인을 완성하는 평균의 시간보다 절반의 시간을 주었고,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프로젝트 업무를 진행했다.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으니 야근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야근을 하는 시간조차도 빠듯하게 느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기에 디자인적인 퀄리티가 당연 높지 않게 작업이 되고 있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로 디자인에 대한 ppt자료도 더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나는 숨을 쉴 틈이 없는 업무가 아니라 숨을 쉬면 안 되는 업무가 되었다.


디자인 제출기한 당일이 되었고, 그날 오후 5시에 제출하려고 했다. 긴장에 사로잡혀서 클릭 몇 번마다 시간이 지났나 계속 눈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손목이 아파오고 저렸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이 어떻게든 제출시간 전에 상사에게 전달드려야지 맞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날만큼은 어떻게든 주어진 시간을 1초라도 모두 사용해서 퀄리티를 높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내가 하는 디자인은 곧 실력이고 나의 자존심이자 완벽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싶은 가장 큰 산출물이기 때문이다. 고도의 집중력이 쏟아지니깐 머릿속으로 1분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생각을 집중하게 된다. 마무리하기 3분 전의 생각들을 기록해 본다.



<PPT 마무리하는 과정>


4시 57분

- 아직 디자인 설명을 위한 이미지를 모두 다 첨부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58분이 지나기 전에는 마무리를 해야지 58분에는 최종적으로 검토를 해볼 수 있다.


4시 58분- 이미지 1개만 더 추가하면 된다. 시간이 오버되었지만 그래도 손을 더 빠르게 움직여서 마무리하고 대충이라도 검토를 하고 보낸다. 이제는 눈동자가 아프고 손목이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것 때문에 내가 검토를 대충 하고 그러면 지금까지 했던 것들이 모두 무너지는 것이다. 제발 집중하고 빨리 마무리하고 보내드리자. 조금만 참으면 된다.


4시 59분

- 메일 하나 보내드리는 것도 공손하고 프로답게 보내자! 단어하나하나라도 오타 없이 깔끔하게 보내드리고 보내드리는 시간도 5시가 넘지 않도록 어떻게든 반드시 보내야 한다.


그렇게 보내기 버튼을 클릭을 하고 시간을 보니 시계의 초침이 숫자 12를 방금 넘어간 것처럼 보였다. 답답했던 가슴이 싹 내려가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사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시간적 여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내드린 디자인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아쉬운 마음과 공허한 마음을 같이 마음속에 품고 퇴근하는 길에는 머릿속에서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내가 디자인한 자료를 보면서 팀원들과 회의를 가졌다. 사실 속으로는 매우 부끄러웠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핑계를 대기에는 그것이 나의 실력 같았고 나의 수준 같았다. 그런 부정적인 마음을 잠깐 숨기고 발표를 했다. 불안한 마음에 발표를 하는 순간에도 팀원들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 관찰을 했다. 그렇게 발표를 마치고 나서 그들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따가운 피드백이 올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사람들은 오히려 나의 디자인에 좋아하고 고생했다는 덕담을 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어안이 벙벙해지고 순간 뇌가 멈췄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들 수고했다는 반응으로 긍정적인 이야기로 회의장에 가득 찼고 회의가 끝나고 나서는 한참 동안 내가 한 디자인을 모니터 뚫어지게끔 바라봤다. 내가 지금까지 완벽을 달려왔지만 완벽하지 못한 디자인에 대해서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구나 하면서 내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나의 경험이다. 각자 생각하는 완벽의 크기는 다양하고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누군가에게 선물로 이쁜 장미를 선물하면 누구는 행복해하지만 반대로 어떤 이들에게는 좋아하지 않은 선물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완벽한 무언가를 건네줘도 상대방의 기준에 따라서 반응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완벽주의를 가지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는 올곧이 완벽의 기준은 나의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 기준에 맞지 않다고 생각이 들면 그것은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대방은 그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결국 완벽은 ‘정답’이 아니라 ‘관점’에 가깝다. 같은 결과물을 두고도 누군가는 “충분히 좋다”라고 말하고, 나는 “아직 멀었다”라고 느낀다. 그 차이는 실력의 차이만이 아니라,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에서 생긴다. 완벽주의를 가진 사람들은 늘 내 안의 기준선으로만 비교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내 기준이 전부라는 착각에서 한 발 물러나야 한다. 그러기에 나의 기준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도 맞지만 그 기준에 너무 나를 매몰아가면서 채찍질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당장의 너의 최선이 누군가에게 완벽이 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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