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의도한 건 그런 게 아닌데...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이어나가거나 혹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대화가 없는 관계란 있을 수 없으며 인간은 하루에 최소 5,000개의 단어와 최대 20,000개 이상의 단어를 말한다.
그러기에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의견을 조율하고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행위이며 우리는 누군가와 말로 대화를 하거나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서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세상이 많이 변화되었다는 것이 몸소 느껴질 만큼 20년 전에는 집전화로 주변사람 번호를 일일이 외우거나 적어서 전화를 걸어야 했지만 지금은 각자 개인의 휴대전화로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연락이 가능하고 심지어 메시지의 발달로 인해서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겨서 시간이 지나도 계속 볼 수 있게끔 편해졌다.
이런 기술의 발달은 삶의 질을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변화되었고, 이제는 당연하게끔 느끼듯이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이렇게 좋은 기술의 발달로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대화가 가능하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긍정적인 요소로만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겠지만 때때로 이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 생길 수 있다. 가끔씩 메신저를 통해서 대화를 할 때, 내가 상상했던 대화의 흐름이 가끔씩은 상대방의 오해가 불러일으키는 상황이 생기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분명 내가 전달하고 싶은 의도는 그런 뜻이 아닌데 상대방은 잘못 받아들여서 억울한 상황이 생긴다.
우리는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 서로의 표정과 말투 그리고 목소리의 톤당 여러 가지 요소를 같이 활용하면서 대화하고 상대방도 이를 고려해서 의미를 전달받는다. 예를 들어서 "내가 오늘 기분이 좋지 않다"라고 가정했을 때 우리는 상대방의 표정을 보면서 고민의 심각도를 파악하고 만약에 높은 목소리톤으로 웃으면서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농담성의 발언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sns를 통해서 대화를 한다면 우리는 서로의 표정을 볼 수가 없고 감정을 읽을 수가 없기에 상대방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러다 보니 오해가 발생하기 쉽고 메신저를 통해서 인간관계가 틀어지는 경우도 주변에서 쉽게 있다.
사실 이런 문제점은 sns뿐만이 아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쉽게 생각한다면 근래 유행했고 지금도 많이 들어본 MBTI에서 예시를 볼 수 있다. 일명 감정을 중시하는 F와 사실을 중시하는 T의 사이에서 그들이 어떻게 이야기하고 받아주는 가에 대한 논쟁은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아니 사실상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 이 문제로 완벽하게 해결되는 답안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대화 간의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불화에는 누군가가 오해할만한 말을 하거나 말의 의도를 달리 해석하게 하는 것에 이유에 초점을 둘 수가 있다. 이 두 가지 옵션이 하나라도 적용이 되는 순간 지체 없이 불화가 일어난다. 사태의 심각성에 차이는 있지만 오해라는 것은 결국 풀지 않으면 그 화가 점점 더 커지는 나비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빠르게 푸는 것이 제일 현명하다.
나와 똑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나와 똑같은 사람 일명 "도플갱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죽는다는 소문이 돌까? 생각하면 나는 결론적으로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이 당연하게도 대화에서 생기는 오해가 생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해하려고 하면 끝이 없다. 이해하려고 덤벼드는 순간 결국 돌아오는 것은 지치는 순간이며 설령 바꾼다고 해도 상대방을 컨트롤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존재가치와 삶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행위일 것이 분명하다. 나를 위해서 상대방의 가치관을 고치기에는 위험요소가 따르며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언제든 자신에게 돌아올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얻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결국에는 다른 무언가를 희생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생긴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지만 그래서 주변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명확한 해결방법을 원한다. 실제로 이런 문제로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고는 한다. 나도 몇 번 그렇게 고민을 많이 들어주곤 했지만 그러나 내가 느낀 점은 사실상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각자의 다른 상황을 고려하고 상대방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100%다 알기에는 불가능하기에 그들의 마음에 맞는 대화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고 설득하려 하지 말고 인정하는 관계를 가져야 한다. 인정하는 관계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다르게 받아들이고 오해하는 과정에서 나의 시점에서 이해하려 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는 자세다. 예를 들어 초, 중, 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들은 서로 볼 것 못 볼 것을 다 보고 자란 사이기 때문에 서로가 이해가 안 돼도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친한 친구처럼 대하라는 뜻은 아니다. 친한 친구와 대화할 때 나오는 긍정적인 특징만 실현하자는 뜻이다. 그러면 사실상 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덜 받게끔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실상 해결을 하기 위해서 주변 상황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정답을 얻을 수 있기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살면서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우리가 산다는 것은 그 정답에 가까운 것들을 찾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을까 싶다. 힘든 과정이겠지만은 그만큼 나에게 오는 보상은 많아질 것이다. 많은 경험과 그에 따라오는 지혜로 모든 사람들이 유연한 대처를 하면서 스트레스 없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우리는 같이 행복해지기를 원하고 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