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회귀의 악마

백수의 탄생 2화

by 감정수집

자기회기의 악마 백수생활


백수생활의 가장 큰 장점은 외부와 차단된 환경에서 솔직한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반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인도하는 최악의 악마 또한 바로 백수생활이다. 왜 악마인가? 그것은 자기회귀적 주체가 발생함에도 인지하지 못함이다. 솔직한 자신을 발견한다는 건 어떤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를 알아갈 수 있다는 걸 말하는데,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발견되는 것은 자기 내면의 모습일 뿐 외부로 비치는 모습일 수 없다는 것에 있다. 그렇기에 순환논리의 오류에 빠져 자기 스스로의 생각만으로 자신을 찾아내는 모습을 자기회귀적이라 말하는 것이며 그것은 악마의 손길이다.


백수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런데 그보다 스스로를 더 옥죄는 것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이다. 백수라는 자유는 모두에게 합리화하기가 매우 어렵다. 때문인지 이 늪에 빠지기 시작하면 급히 자신을 테두리 치고 그 안에서 악마와 마주하게 된다.

이런 자기 자신으로의 질문은 엄청난 거대함이다. 그 어떤 말보다 두렵고 무섭다. 우리는 그런 질문을 하는 것도 그런 질문을 만들어 내는 것도 그리고 그런 질문에 어떻게 답을 주어야 하는지도 보고 들은 적이 없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그런 질문이 필요 없는 나라였는지도 모른다 열심히 일하면 먹고살았으니까. 하지만 시대가 변하지 않았는가? 이젠 무차별적인 기술발전도 무식하게 채워 넣기만 하는 지식도 이젠 쓸모가 없다. 즐겁고자 하는 인간으로서 앞길을 제시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내가 무엇에 행복해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다른 많은 백수들도 공통된 물음과 생각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보통 쉽지 않은 일이기에 많은 사람들은 대면하지 못해 회피하고 도망 치려하는데, 우리가 보통 떠 올리는 백수의 모습은 이런 도피에서 발생했으리라 생각한다. 모두들 잠시 동안이라도 한심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른 관점으로 들여다보자.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감뇌하려는 모습도 한 번 봐 주길 바란다. 내 자식은 왜 저리 한심할까?, 내 친구는 왜 저럴까?라고 묻기 전에 그가 얼마나 더 성숙해지려는지 질문해 보자.


악마의 손길


요즘같이 해석 불가능한 복잡한 세상에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알기란 매우 어렵다. 오늘은 이것으로 즐거움을 느꼈을지라도 그것이 내일의 즐거움은 아닌 이유다. 그런데도 그런 휘발성 짙은 정보들로 자신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다양한 기기를 통해 습득한 깊지 못한 생각의 조각들은 자신조차 휘발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오랜 백수생활이 지속되면 분명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는 꼼수를 마련한다.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서든 누가 봐도 고집처럼 보이는 변명을 하든 말이다. 모두를 설득하든 고집처럼 보이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언변이 좋아 설득할 수도 있으니까. 악마의 구렁텅이로 들어갔는지 아닌지는 결국 혼자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백수생활의 목적이라면 역시 가장 큰 목적은 자신을 알아가는 것인데, 자기 자신이 어떤 것을 즐거워하고 재미있어하는지는 본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또한 본인 만이 그것을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스스로가 판단할 수 없다. 나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르지 내가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판정 짓기는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면 모순이지 않은가? 악마의 구렁텅이에 빠진 나인지 아닌지 나밖에 모르는데 내가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판정 지을 수 없다니, 내가 악의 구렁텅이에 빠졌는지 올바른 내 가치 모델을 수립하고 있는지 이도저도 아니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나는 행동한다. 백수는 보통 사람을 회피하고, 스스로 사회에서 도태되려 하는데 일부러 더 나가고, 활동하고, 행동한다. 당연히 나도 사람이기에 업(사회로부터 부여된 과업)이 없는 이상 심적인 부담이 크지만 스스로의 무덤을 파지 않으려 더 당당히 행동한다. 다양한 외부활동으로 내 모습을 객관화 시키리라 본다.



쾌락의 차이


백수는 쾌락에 취약하다. 정신적 부실함이 가장 큰 이유겠다. 하지만 쾌락을 찾아야 하는 것도 백수가 할 일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쾌락은 다른 형태의 쾌락을 말한다.

현대 세계의 빠른 정보로 인한 휘발성 짙은 즐거움 보다 상위 단계의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분명 자신이 쾌감(타락적 쾌감이 아닌)을 느끼는 어느 포인트(접점?)가 있는데, 고등학교 시절 나는 디아블로에 완전히 미쳐 있었다. 처음 재미를 느꼈던 이유는 아마 기존에 접해보지 못한 어떤 새로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런 새로움에 대한 즐거움은 사그러 들고 점차 게임 내 어떤 목표점을 위해 지겨움을 극복하려 하는데, 대다수는 새로움의 즐거움이 줄어드는 동시에 게임을 그만둔다. (요즘 스마트폰 게임의 가장 큰 문제다.) 나는 고등학교 3년을 반 광인처럼 했는데, 처음 1년은 앞서 말한 것처럼 새로움에 대한 즐거움이었다. 그 후 나머지 2년은 재미가 아닌 다른 것으로 즐겼는데, 그것은 온라인상의 사회가 실제 사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부분이었다.

당시 나는 경제관념, 인간관계 등 사회활동에 매우 취약한 아이였다. 경제는 저축, 인간관계는 친절로만 생각했다. 사회경제에서 자본이 어떻게 흐르는 것인지 돈의 역할이 뭔지 그것으로 무엇을 하는 건지 전혀 몰랐고, 나라는 인간은 철저히 폐쇄적인 데다 매우 이기적이었는데 당시에는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조차 전혀 몰랐다. 그러던 내가 나를 벗어나 더 넓은 곳에서(온라인이지만) 찾아낸 흥미는 또 다른 쾌락으로 변모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게다가 게임 내에서의 사회가 실제 사회와 크게 다를 것 없다는 부분은 더 높은 쾌락을 선사했다.(물론 민낯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로 충동적인 현상이 많이 발생하긴 하지만 그 정도 구분은 할 수 있었다.)

분명 나는 아주 낮은 단계의 쾌락을 벗어나 더 높은 단계의 즐거움을 찾아냈다고 본다.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하면 독서를 하는 것으로 지식을 축척하는데 쾌락을 쌓는 것이 아니라 독서를 통해 지식을 완벽히 내 것으로 만들고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서는 수준이라 할 만 하겠다. 그러니 백수로서 허구한 날 술 먹고 골방에 처박혀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려면 높은 수준의 쾌락을 찾기 위한 노력이 꾸준해야 한다.



그래서 어쩔?


'뭐는 뭐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수학처럼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수학자들은 언어적 애매모호함에 회의를 느껴 기호로 결과를 표현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그렇지만 백수로서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무언가를 찾아간다는 건 결국 긍정적 자기 쾌락을 찾아가는 것이고 그 과정은 쉽지 않다는 걸 말하고자 한다. 쾌락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자기회귀적 판단이기에(백수가 아니더라도) 스스로를 센스 있게(결국은 센스라는 단어에 기대야 하는 건가) 들여다볼 수 있는 백수만이 백수생활을 성공으로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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