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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Jun 25. 2018

호감

#004


"여행 좋아하시면, 혹시 제주도 월정리 해변 가보셨어요?"

순간 그녀는 집중했다.

"아, 아니요 저는 그 근처에 다른 해변에 갔었는데 거기도 가보고 싶었어요. 어때요? 어떤 느낌인가요?"
"음, 느낌을 어떻게 전달해 드려야 하려나, 모래알이 얇았어요. 파다는 속이 비쳤고, 해변은 안쪽으로 움푹 들어와 있어 양팔로 감싸 안는 느낌이에요. 카페 이층에 앉아 해변을 내려다보고 있을 땐 일부러 비행기를 놓치고 싶은 심정이 들더라고요. 혹시 야외에서도 작업하시면 여기서 엄청 아름다운 곡이 나올 것 같아요."

제법 자세한 그의 설명이 로봇 같던 그녀의 답변에 생기가 돌았다.

"네! 저번에 다른 해변에 갔을 때 작업한 곡도 몇 개 있어요. 곡이 잘 마무리되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들어요. 그래서 꼭 가보고 싶어요."
"밖에서도 많이 쓰시나 보네요. 가본 곳 중에 어디가 가장 좋으셨어요?"

드디어 소개팅 자리의 관행적 대화가 종결되고,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며 답변했다. 처음엔 아니었다. 그저 그런 외모에 눈에 띌 만한 매력은 찾기 어려웠고, 분절된 대화가 답답하게 했다. 이 질문이 반가운 건 어쩌면 그전의 대화가 너무 지루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음, 바닷가도 좋았는데, 제일 좋았던 곳은 고창에 있는 청보리밭이에요. 맨 처음 갔을 때 보리가 나지 않는 계절이었어요. 사실 잘 모르고 다짜고짜 가긴 했지만요, 근데 오히려 청보리 없는 빨간 들판이 너무 아름답더라고요. 버스에서 내렸을 땐 실망했는데,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보니 너무 멋졌어요."
"완전 반전이 있었군요?"
"네, 맞아요. 흔히들 실패가 꼭 실패는 아니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제가 아마 거기서 그걸 알았나 봐요."
"멋지네요! 좋은 깨달음이었군요. 거기선 어떤 곡 쓰셨는지 궁금해요. 혹시 들어볼 수 있나요?"

조금 친근해진 것 같지만 아직은 경계가 있다. 그녀는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꼼꼼히 탐색 중이고, 솔직한 답변보단 자신을 한껏 꾸민 한마디를 던진다. 남자는 포인트를 잡아냈다. 반 무의식적으로 답변하던 그녀의 얼굴에서 고민하는 흔적을 찾아냈고, 꾸며진 답변이건 뭐건 그녀가 그의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깊이 생각한다는 걸 눈치챘다. 남자는 이제 호감을 얻어내리란 확신을 가졌다. 이젠 그녀가 고민한 결과들을 잘 들어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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