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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Jun 24. 2018

골목

#003


오랜 시간 보수되고 새로 만들어진 길들이 미로 같은 마을을 형성했지만 이 골목만은 그대로 남았다. 곰팡이 냄새, 이끼, 벽에 새겨진 글자... 그렇게 잔잔히 남은 과거의 흔적들. 골목 사이 겨우 내미는 빛으로 이곳을 말리기 부족했기에 해가 뜨는 날이면 집안의 모든 물건들을 말리기 바빴다. 심지어 사람까지도.

이곳을 떠나지 않고서야 환히 웃을 수 없다 생각했다. 빼곡한 집들 만큼이나 좁쌀 같은 심정으로 살았고 세상을 바라봤다. 한 나라에 속한 국민이면서도, 나라의 서류에 엄연히 이름을 새기고 있으면서도, 국가의 테두리 안에 우리는 없다는 절망뿐이었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발버둥 치고 소리쳤다. 암흑을 벗어나려 이곳을 외면한 채 요란히 달려나갔다. 

다시 돌아올 줄 몰랐다. 머릿속에서 완벽히 지워낼 줄 알았다. 헌데 왜 다시 왔을까? 그리움일까? 사실 실패했다. 발, 발끝 바로 앞의 선을 한 발짝 내딛는 것으로 쉽게 넘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이 마을을 떠나는 것으로, 좋은 직장을 갖는 것으로, 높은 지휘를 갖는 것으로 테두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생각했지만 불가능했다.

뚜렷이 선이 보이던 시절, 넘어보려 온갖 짓들을 행했고, 더 빠르게 달렸다. 허나 무슨 짓으로도 닿을 수 없었다. 뛰면 뛸수록 그 선도 빠르게 이동했다. 빠르면 빠를수록 더 빨라지는 그 선, 더 이상 무엇을 해볼 수도, 더 빨리 뛰어갈 여력도 없어 모든 걸 내던졌다. 쥔 것들을 내팽개쳤다. 주저앉아 눈물 흘리길 몇 해, 결국 이곳에 다시 돌아왔다. 골목 입구 한쪽 벽에 기댄 채 그날을 떠올리고 있다.

무더운 날씨인데도 벽을 향한 어깨로 한기가 스며든다. 끔찍이도 싫었던 그날들이 회상되는 순간이다. 뛰쳐나간 그날을. 동시에 깨닫는다 착각이었음을. 그 선은 없었다는걸, 처음부터 그런 테두리는 없었다는걸. 너무 늦었지만 이곳에 다시 돌아와서야 착각임을 깨닫는다.

이젠 이곳에 자리를 잡을 예정이다. 마음이 안정되면 여행은 다니겠지만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 그리고 다시는 선을 긋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테두리도 경계도 세우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어릴 적 뛰놀던 그 친구들은 아니지만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이들과 조화로이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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