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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Jun 28. 2018

해체

#007


성당 문을 열었다. 뜨거운 햇살을 피할 생각이다. 다행히 쌀쌀한 지난밤 기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성당 내부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진다. 넓은 내부와 낮은 온도는 음산한 기운을 전할 만하다. 오랫동안 쌓인 움직임의 흔적이 공간을 메우지 않았다면 바로 뛰쳐나갔을지 모른다.

높은 천장, 그림들, 스테인드글라스, 손에 닿지 않는 창, 화려한 장식들, 빼곡한 좌석. 건물이 어떤 양식인지, 그림이 무슨 의미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본다.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성당, 기독교, 불교 그리고 많은 종교들, 그들의 신념, 이념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들의 말들을 소소히 분리한다.

성당의 중간쯤 자리에 앉아 양손 모아 기도한다. 의례를 갖출 줄 모르지만 알고 있는 것에 한해 예를 다한다.

잠시 쉴 곳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위를 피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가 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전히 이곳으로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을 따르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곳에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내 삶과 사람들, 나는 종교적 입장이 아니면서도 종교적 입장에서 나와 주변 사람들을 생각한다. 내가 소중히 하는 것들을 종교적으로 대하면서도 종교적이지 않게 대한다. 낱낱이 분해된 종교적 생각들과 낱개 단위인 내 안의 이념들. 그 알알들 중 어떠한 것은 수용되고 합쳐지지만, 어떠한 것은 거부한다. 하나의 집결된 신념을 완벽히 수긍하지 않고, 완전히 배척하지도 않는다. 해체된 낱개의 것들을 분위기에 맞게 재 조합할 뿐이다.

흥건했던 땀을 말리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너무 급히, 너무 천천히 나오지도 않고 적당한 속도로 성당을 빠져나온다. 다시금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며, 잠시의 휴식을 제공한 이곳에 그리고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여행길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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