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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Jun 29. 2018

여행의 목적

#008_상실


벌써 20년이 지났구려. 일찍이 여기저기 같이 다녔으면 좋았을 것을. 내 나중에 만나면 이 사진들 꼭 전해주리다. 그동안 못 했던 말들 마음껏 하고, 여행 다닌 이야기도 많이 해 드리리다. 푸른 초원, 넓은 대지, 다양한 사람들. 사진으로는 설명이 힘드니 내 말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오. 죽어서까지 귀띔으로 듣지는 않겠지요?

나도 나이를 많이 먹었나 보오. 허탈하구려, 이렇게 다니는 것도. 처음엔 좋았는데 말이오. 허전한 마음 달래기 좋았는데 말이오. 이젠 그저 어디로 향하는 즐거움만 있을 뿐 막상 도착하면 허무하구려. 이리 말하고 보니 당신 섭하겠소. 남겨놓은 것 잘 쓰면서 괜한 핑계를 대니, 미안 하구려. 빈자리는 채울 수 없나 보오. 적적함 달래려 친구도 만나보고, 여행도 많이 다니지만 허전함은 그대로 구려. 내 먼저 간 당신을 원망하고 미워도 해 봤지만, 하지만 메워지지 않는다오.

따스한 말 한마디 건네준 적 없지만 내 당신 마음 잘 아오. 마지막 남긴 편지, 그 내용이 살아생전 나를 향한 마음이지 않소? 처음 편지를 열고는 읽지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소. 그렇게 몇 년을 울었지만, 이제는 웃으며 읽을 수 있으니 걱정 마시오. 

당신은 어찌 그리 답답했소, 헛날 뺏기기만 하고, 이렇게 죽어서까지 다 주고는 거기서 마음이 편하오? 나는 당신이 남긴 것 아주 잘 쓰고 있소. 그리 아까워하던 돈 마구 써대고 있다오. 그러니 거기선 멍청하게 살지 마오.

이제 가야겠소! 내 말은 다 들었는지 어쨌는지, 아직은 함께하는 자식들과 친구들이 있으니 좀 더 기다리시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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