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시콜콜 Jul 01. 2018

나는 오후반차를 썼다

#009_긴장


답답한 출근길, 그 빼곡한 공간에서 마음 안정시킬 통로가 이 작은 물건이라니. 간혹 태평양보다도 넓어뵈는 이것에 의존하기 시작한 건 매일 아침의 고통 때문임이 분명하다. 지하철 문에 바짝 붙어 지난밤 드라마를 시청하는 청년 그리고 그 뒤에선 나는 창문으로 비치는 사람들의 행동을 유심히 본다. 외쪽 사람들, 오른쪽 사람들. 누구랄 것 없이 작은 통로로 숨 막히는 이곳을 벗어나려 한다. 

이어폰을 벗고 손에 든 모든 것을 왼쪽 주머니로 넣었다. 잠시 눈을 감아 생각을 비운 뒤 눈을 뜨고 다시 주변을 둘러본다. 왼쪽 바로 옆의 여인은 참 아름답다. 무엇을 보는지 몰라도 찡그린 저 얼굴만 아니면 더 이쁠 것이다. 오른쪽 남자는 아침부터 열심히 게임에 집중한다. 얌전히 오므리고 있기도 벅찬 공간에서 게임할 틈새를 내는 게임까지 동시에 수행 중이다. 창문으로 비치는 내 오른쪽 뒤 남자는 아침부터 환히 웃는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남자를 보니 나도 즐겁다.

즐거워졌다. 왜 즐거워졌을까? 혼란 한 이 공간에서. 저 남자가 웃기게 생겨서? 아니, 잘 생기기만 했고만. 퀴퀴하던 정신이 금세 맑아진 것은 통로를 찾은 덕분이다.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저 물건뿐만은 아니라는 안도감 때문이다. 아침 짧은 시간, 굳이 겹겹이 모으자면 상당한 양이겠으나 그저 하루 중 잠깐이라 생각하니 갑갑한 이 현실이 더 넓어졌다. 

짧은 시간 때우자고 이 조그만 거에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가? 지루한 아침 버티자고 집중한 것이 잠자리 들기까지 아침인 것처럼 집중하게 되니 그것보다 더 한 허비가 어디 있겠는가? 지하철에서 내려 걷는 길목, 직장에서의 내 자리, 돌아오는 길, 잠자리, 여자친구를 만날 때 심지어 여행을 갈 때에도 지하철의 그 뻑뻑한 사람들과 항상 같이 다니고 있었다. 끼인 사람처럼 어깨는 항상 경직되고, 사이를 비집듯 걷는 행동들로 숨이 목까지 차오르는 아침을 무한히 연장하고 있던 것이다. 

누군가 묻는다. "요즘 살만해?" 답변은 반사적이다. "왜 이렇게 바쁘기만 하냐?" 바쁘지 않다 시간이 없지도 않고. 틈을 주지 않았을 뿐이다. 곧추세운 어깨를 내릴만한 여유를 갖지 않았을 뿐이다.

지하철에서 내리고 회사에 도착하기까지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오전은 업무 집중이 어려워 중천으로 이동 중인 해만 바라본다. 한참을 해만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이제야 공전주기대로 시간이 돌아가는구나'. 결정했다. 오늘 온몸으로 느껴야겠다. 항상 굽었던 목을 펴고, 딱딱히 움츠린 어깨를 느슨히 풀어 헤치고 진짜 오늘 하루를 느껴봐야겠다.

나는 지금 업무 시스템에 오후 반차를 입력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현기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