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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Jul 07. 2018

내 이름은 엄마가 아니다

#014_분리

해변과 마을 사이, 백사장의 가장자리를 따라 2킬로쯤 노점상이 즐비한 이 곳. 일 년 내내 내리쬐는 햇볕과 훤히 속이 보이는 바다 덕분에 붐비는 여행객들로 꾀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이 섬의 자리배정 기준은 2년간 수익기준이다. 지역 주민에 한해 수익이 낮은 사람부터 우선권을 준다. 나는 가장 좋은 자리를 두 개나 사용하고 있는데 한 자리는 저 노파가 내어준 자리다. 5년째 좋은 자리를 배정받고도 매번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니 의야하기도 하지만 구태여 질문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좀 늦으셨네요. 제일 일찍 나오시는 분이 안보이니까 무슨 일 있으신지 걱정되더라고요. 매일 보니까 정들었나 봐요."


"아침에 옥상 방수 공사한다고 사람들 다녀가느라. 집이 오래되니 비가 새지 뭐야, 젊어서 고생한 돈으로 지은 집이라 쉽게 떠나지도 못하겠고. 수리비는 자꾸 들어서 고민이 많아."


정리할 물건들을 이리저리 살피며 슬쩍 바라본 노파의 얼굴이 근심스러워 보이진 않는다. 온화한 목소리는 오히려 좋은 일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직접 지으신 거예요? 신기해요, 요즘은 그런 경우가 드물잖아요. 얼마나 오래된 거예요? 직접 지어서 사는 느낌은 어떨지 궁금해요.


6개월째 장사 중이라고 예전엔 못했던 안부성 발언들이 잘도 튀어나온다.


"정확히 25년 됐네. 중학교 다니는 아들 하나, 고등학생 딸 하나 있었는데 그 자식들 대학교까지 다 보낸 집이니. 애착심이랄까? 공사를 시작한 시기엔 너무 힘들고, 지쳐있던지라 얼른 마치고 편하게 자고 싶단 생각밖에 없었어. 요즘은 작은 공사도 잘 마무리해 주지만, 그 시절엔 주인이 신경 쓰지 않으면 엉망이었거든. 게다 빚낸 돈으로 시작했던 거라 완성 후에도 누릴 여유가 없었지."


지금은 정부 정책으로 완성된 집들을 분양하는 시스템이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개인주택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이렇게 상가가 밀집된 지역의 마을은 정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떠나기 정말 힘드시겠어요. 공사는 잘 마무리됐나요? 자녀분들은 모두 섬 밖으로 나가셨나 봐요. 첫 째가 25년 전에 고등학생이었으면 지금 저보다 동갑이거나 한두 살 많겠네요. 저는 이제 7살짜리 아들 하나 키우는데 학교에 일찍 보내지 않았으면 장사도 시작 못했을 거예요."


어설피 뜬 소리로 시작했지만 자식이라는 공통점이 공감을 형성하면서 대화에 집중했다.


"남자애 7살이면 아직 집안에서 뛰어다니고 어지럽힐 나이인데, 아직 1년 반이나 남았잖아? 마치고 집에 가면 고생이 많겠어."


노파는 내가 2년만 장사해보고 싶단 말을 기억하고 있다. 남편 수입이 부족하진 않았다. 삶이 불만족스러운 것도 아니고, 단지 허전함이었다. 주부로서의 삶은 만족스러웠지만 나로서의 삶에는 만족하지 못했다. 결혼 전에는 좋은 가정을 꾸리는 게 꿈이었고, 아마 사회경험을 하지 않은것이 실수였나 보다. 나는 그 허전함을 알아보려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괜찮아요. 남편도 일찍 퇴근하고, 바로 옆집에 친언니가 저녁은 챙겨주는 걸요. 그거 아니라도 돌봐주는 시설이 많아져서 돈만 내면 다 해줘요. 그 애 보단 큰 애가 걱정이죠. 자기 밥은 좀 챙겨 먹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예전에 애들 키우던 생각 하셨나 봐요. 많이 힘드셨죠?"


"지금이랑 비교하면 힘들다고 하겠지만 그 시절엔 당연하다고 생각했지."


조용히 떠돌던 소문이 불현듯 떠올라 움찔했다. 자식들과 연을 끊었다는 소문이다. 장사로 고착된 짧고 빠른 기계적인 말투를 노인에게 쏟아 낸 것이 부끄러워졌다.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소문이었지만 무의식 속에선 맞다고 예측했다 보다.


"왜? 매번 좋은 자리 양보하고 여기서 장사하시는 거예요? 여긴 마을 사람 아니면 사용 안 하는 계단이잖아요. 길목에서 잘 보이긴 해도 여기까지 들어오진 않던데."


"설명하자면 좀 긴데, 아직 손님들 오려면 시간이 있으니까 이야기해 줄게. 여기서 떠도는 소문 알지?"


화제를 돌려보려 했지만 움찔한 내 모습에 속내가 드러난 것이 분명하다. 표정연기 못하는 내 얼굴로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당혹감을 감추려 애쓰며 의자와 음료수 두 캔을 들고 노인 옆에 앉았다. 


"네, 들었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사실인 것 같은데 이야기하기 힘들지 않으시겠어요?"


"아니, 묻는 사람이 없어서 말하지 않는거지 꺼리진 않아. 되려 내가 말해주려는건 그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아서야. 집에 크게 돈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고 했었지? 그리고 뭔가 해보고 싶다고 했고 말이야"


70세가 넘은 노인의 기억력이 상당하다. 난 솔직히 이름도 기억 못 하는데. 점점 더 미안한 마음에 몸이 조금 움츠려졌지만, 음료수 몇 모금 마시며 자세를 바로잡은 채  안정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아들 없는 낮 시간을 1년 동안 보내면서 허전함이 많이 들더라고요. 집에 혼자라는 허전함 보다 마음속에 허전함 같은 거요. 혼자 여행을 좀 가볼까 생각했지만 그건 아들 때문에 못했고요. 낮 시간에 친구들도 만나거나, 운동도 하고, 강의도 들으러 다녀봤지만 별 효과가 없더라고요. 장사는 남편이 못하게 말렸는데, 무조건 하겠다고 우겼어요. 지금까지 남편 편한대로 수발 들어줬으니 이거 말리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식이었죠. 다행히 장사도 잘 되고, 부부 사이도 더 좋아졌어요.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되려 남편보다 훨씬 많이 벌게 되니 으스대느라 상의를 한 치수 올려 입을 기세예요."


"다행이네, 그럼 혹시 자식이 곁을 떠난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있어?"


노인은 설명 없이 들이밀었다. 그러자 순간 내 가슴으로 무언가 훅 들어옴을 느꼈다. 아들이 떠난다니. 떠나는 방법이 어떠하든 그런 건 떠올리기 싫다. 행여나 그렇게 된다면 장사도 그 어떤 것도 다 소용없을 것 같다.


"아뇨, 전혀요. 상상하기 싫은걸요."


"죽음이든 그저 사라지든 나는 이제 자식이 나를 떠난다는 느낌을 잘 알아. 첫 째 사위가 너무 잘난 사람이었어, 딸은 아마 그 사위가 하는 말에 동화되어 우리 집안을 비천하게 생각한 모양이야. 둘 째는 어려서부터 주관이 없었지 여자를 잘 못 만나는 바람에 집에 요구하는 건 돈 뿐이었어. 마지막 만난 여자가 아주 잘 사는 집안이었는데 글쎄 그 집안 아들로 살기로 했다지 뭐야."


슬퍼 보이지 않았다. 담담히 전달되는 목소리가 마음을 가라앉혔다. 다만 자식이 떠나는 것과 지금 내 상황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했지만 소심했던 어린 시절 감성이 되살아 났는지 이유를 묻기 망설여져 짧게 대답했다.


"아, 그랬군요."


"처음엔 모성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어. 과도한 신경 증세 때문에 몸도 망가지고 머리도 빠지기 시작했지. 죽고 싶다는 생각도 수 없이 많이 했어. 음식도 토하지 않으면 소화되지 않은 채 배출됐고. 몇 년을 못 박힌 가슴으로 살았어. 목 아래로 한 뼘 되는 이 부분이 찌르는 듯하다가 다음날은 타는 것 같고 또 다음날은 죄는 듯 아팠어. 손바닥으로 문지르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고 하는데 손끝만 닿아도 부러질 듯 한 통증이 느껴졌지. 지금 당장 갈비뼈를 생으로 뽑아낸데도 그렇게 아프진 않을 거야. 가슴에 못 박힌다는 말 말이야, 직접 겪어보니 표현이 그렇게 밖에 안되네 자세히 설명하고 싶은데 다른 방법이 없어."


노인은 음료수를 몇 모금 마시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몇 년 지내다 옆 가게에 자리를 내어주고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했는데, 그 전에는 내 물건이 잘 팔리던 때라 외진 곳에 자리가 있었어. 치열했던 그곳에서 이곳으로 오니 너무 여유롭더라고 한 시간에 두 명 정도 오려나? 덕분에 생각할 시간이 많았지. 느긋이 바다를 쳐다보니 치열하게 살았던 지난날이 스쳐 보내던 어느날 그동안 왜 치열하게 살았나 싶은거야, 몇 날 며칠을 바다만 보며 이유를 생각해 보니 글쎄 자식 놈들 때문이더라고, 남편 없이 그 긴 세월을 몸 바쳐 살았던 이유가 그놈들 때문이었더라고. 내게 그 놈들 말고는 탈출구가 없었던 거야 꿈도 없었던 거고. 온전한 내 인생은 없었던 거지. 아이들을 키우고 돌보던 마음만 내 진짜 감정이라 믿어왔던 거야."


주부로서의 삶은 만족했지만 나로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 부분을 말해주시는 것 같다. 묻고 싶었던 질문이기에 내 심정을 더 정확히 전달해 보려 애썼다.


"그 시절 어머니들은 다들 그렇게 살아오시지 않았을까요? 장사를 더 하고 싶었던 이유가 그런 것에 대한 반발심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분들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누구의 엄마라는 호칭이 본명처럼 되어버린 삶은 곪은 염증같았어요.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에 지배당하지도, 없어서 허덕이지도 않는 삶 안에서도 제 마음은 농익은 여드름처럼 금세 터져버릴 것 같았죠."


"그렇지? 나는 자식들을 다 떠내 보내고야 그걸 깨달았어. 내 진짜 감정은 없었다는 걸. 그토록 간절히 키워오던 자식들에 대한 마음을 버리고야 진짜 내가 있다는 걸 알게 됐지. 내 소녀 같은 마음을, 그 순결한 감성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식을 마음속에 지워내고 소녀가 되다니. 뭐라 말 붙이기가 어려워 듣고만 있었다.


"어쩌면 내가 74살이나 먹고서야 저기 누워있는 우리 엄마한테서 독립했는가 봐. 엄마에게 받았던 마음 그리고 그랬을 심정, 우리 엄마는 영원히 혼자가 되지 못한 채 저기 누워있지만 나는 진짜 독립한 거야. 부모의 간섭으로부터 그리고 끊을 수 없는 모성애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면서 오롯이 내가 된 거야."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하죠?"


당황한 나머지 본능적으로 대꾸했다. 진정한 나를 찾으려면 내 아들과의 연을 끊으라는 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노인이 말이 그런 의미는 아닐 테지만 조금 짜증스럽게 대답하고 말았다.


"자식과 이별하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요. 음, 마음에 방을 10개쯤 만들어, 첫 번째 방은 남편과 둘만 있는 방, 두 번째 방은 아들과 둘만 있는 방, 세 번째 방은 가족 모두 있는 방, 다섯 번째 방은 부모님과 있는 방, 여섯 번째 방은 부모님과 언니가 있는 방, 또 가장 친한 사람들로 몇 개 더 채워. 그리고 말이야 꼭 3개쯤은 본인만 있는 방을 만들어. 실컷 울 수 있는 방, 실컷 웃을 수 있는 방, 조용히 앉아 있기만 해도 좋은 방 정도로 말이야. 방에 무얼 채우 든 누군 채우든 좋지만 꼭 3개 이상 자기만 있는 방을 만들어. 그리고 그 방에 들어갈 땐 남편도 안되고 아들도 안돼 꼭 혼자만 들어가"


"선생님은 방이 몇 개나 있으신 거예요?"


대화를 주고받을 때마다 감정 변화가 급격한 나에 비해, 오랜 이야기에도 찬찬히 대화를 이어나가는 노인을 보자니 선생님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선생님이라니, 왕언니라 불러 다른 사람들처럼.

나는 한 백개쯤 있으려나? 혼자만 있는 방이 말이야. 나는 진짜 내가 된다는 걸 아주 많은 감정들을 느끼면서 부터야. 자식으로부터 그리고 엄마로부터 느꼈던 감정에서 벗어나 새로운 감정을 느끼면서 부터말야. 그 때 마다 방을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어.

음, 내가 왜 여기 이 자리에 있는지 궁금하지?


"네, 사실 그게 제일 궁금했어요."


"바다를 봐, 그리고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마을도 보고 저기 건너편에 작은 섬도 보고 산도 보고 계단도 보고 벽도 봐. 매일 다른 방에 들어가서 말이야.

매일 봐도 다 똑같아 보이지?"


이해는 되지만, 그것이 진정 가능하리란 생각은 어렵다.


"네, 그렇죠. 어렸을 때 비해서 많이 바뀌긴 했지만 어제랑 오늘은 그리 큰 차이 없어 보이는 걸요."


"처음엔 방을 세 개쯤 만들어봐 어렵지 않을 거야. 여기서 장사하는 도중엔 어려울 테니까 여유 있을 때 가끔씩 해 보라고. 저기 건너편을 바라보면 나무들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옆 나무들과 장난도 치곤 해. 당연히 내가 상상해낸 거겠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나 혼자만의 방이, 즐거운, 편안한, 여유로운, 노여운, 간절한, 분노스러운, 달달한, 짠, 느끼한 그런 이름표가 달린 수많은 공간이 언젠가 내가 진짜 나로서의 공간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을 테니까 말이야. 누군가의 관심으로 성장한 자신도 아니고, 누구를 돌봐야 하는 의무감으로써의 자신도 아닌 진짜 자신이 방마다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을 거야."


어설피 이해는 되지만 과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평생 돈 욕심 없던 사람이 고작 6개월 장사하고는 더 큰돈을 바라는데, 게다가 아들을 떼어놓고 나만 있는 방이라니. 부모가 시키는 것, 남편이 시키는 것 그렇게 살아온 나한테 이게 진짜 필요한 말일까 싶다.


"솔직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지만 한 번 시도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손님들이 들어올 시간이라 자르듯 말을 던지고 일어섰다.


"이제 손님들 오겠네, 어서 내려가서 준비해. 궁금한 거 있으면 또 물어보고. 내 말 너무 깊이 듣지는 마. 이건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나를 찾은 거니까 너의 인생에서 너를 찾길 바라."


노인의 긴 이야기를 순전히 받아들이긴 어렵지만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충실하겠다고 했던 어린 시절 꿈 때문에 어려운지도 모른다. 모든 걸 내려놔야 하는 걸까? 아니면 짊어지고 한 발짝 내디뎌야 하는 걸까? 다 벗어버려야 하는 걸까?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남편과 아들이 눈 앞에 있는데, 그들이 없는 마음의 방을 만드는 일이 가능하긴 한 걸까? 저 노인이 지금 내가 된다면 어떻게 할까? 복잡하다. 알 수 없는 미묘함이 솟아오른다.


장사 준비를 마치고 노인을 바라봤다.


"벌써 방을 만든 것 같은데"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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