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시콜콜 Jul 10. 2018

너 그런 성격 아니잖아?

#015_갈증

"퇴근시간 고정되겠어, 요즘 매일 이 시간이네?"


"그러게, 해도 안 떨어져서 이 시간 퇴근도 이른 것 같은 느낌이야"


다른 계절이면 어둑할 시간이지만, 한 여름의 긴 태양은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더 길다는 걸 암시하는 것 같아 짜증 난다. 


"아직도 그 팀장이 눈치 줘?"


"그 눈치야 어디 가겠니, 요즘 회사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는데도 꼭 사람 기분 나쁘게 말한다니까. 이젠 사람들이 신경도 안 써, 업무시간 단축되면서 인사고과 권한이 없어졌는데 누가 신경 쓰겠니."


업무시간 단축으로 직원의 업무 효율성 평가를 위해 팀장에서 파트장으로 인사고과 권한이 내려왔다. 한 팀당 4~6명의 직원을 관리하기에 능력 있는 직원들은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환영했다. 파트장이 괜찮은 사람이라면 말이다.


"맞다 그랬지? 우리는 업무 단축 전부터 그랬는데,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 우리 파트장은 괜찮은 사람이라 회사생활 너무 편하지만 말이야. 가끔 너무 편해서 불안하다니까."


"우리 파트장도 괜찮은 사람인데 말이야. 여기는 그냥 회사 자체가 일이 많잖니. 업무시간이 단축돼도 일은 기간 내에 다 끝내야 하는데, 집으로 일 들고 가는 사람이 태반이다. 이 시간에 마치고 집에 가는 거는 일처리 빠른 사람이나 가능할 일이야."


우리 회사는 7년 만에 시리즈 C 투자까지 받는 급성장을 일궈냈지만 기존 매출로도 자생 가능했기에 투자금은 다른 용도로 비축해 두고 있다. 투자금으로 인력 충원을 약속했었으나 용도가 변경되면서 좌절되고 말았다. 투자금을 마음대로 사용할 순 없지만 직원들에게 설명할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은근히 자랑하는데?"


"티 나니? 근데 요즘 일 잘해야 뭔 소용인가 싶네. 처음엔 인정받아서 좋았는데, 사람은 안 뽑아주고 일만 늘어나니 못살겠다. 그나마 돈 많이 줘서 버텼지만 이젠 내 생활도 좀 즐기고 싶다. "


대기업 다 떨어지고 들어간 스타트업이 급성장하면서 연봉도 순식간에 올랐다. 외국계 거물이 투자하면서 자연스러운 광고효과가 발생한 까닭에 제품 판매율도 폭발적으로 늘어난 덕분이다. 4년 전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땐 대기업 연봉을 무척이나 부러워했지만, 막상 많은 돈을 받으니 즐겁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통장 잔고가 해결해 주지 못하는 무엇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보기엔 너 여자 필요한 거 같은데? 내 여자 친구한테 계속 물어봤는데 괜찮은 애 없단다. 친한 친구들은 다 고향에 있데, 멀리 있는 분도 괜찮다면 한 번 해줘?"


"필요 없다. 이게 여자 친구 있다고 해소되겠니. 그런 것보단 처음부터 이렇게 일하는 게 맞는 거였나 하는 의문이 생겨서 말이야. 평일에 너무 바빠서 주말에 잠만 잤는데, 나도 내 사업이나 준비해 볼까 봐."


스타트업 멤버로 활동하면서 임원들은 회사가 성장하는 재미가 있다고 하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 성장에 나를 위한 성장도 포함되는지 의문도 들고. 분명 뭔가 뿌듯함은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지금 상태론 공감하기 어렵다.


"사업? 너 그런 성격은 아니잖아?"


"요즘 사업에 무슨 사람 성격을 따지니, 내 성격도 사업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있다."


60~80년대 시절 사업을 잠깐 해 보신 아버지는 사업은 인맥이라는 말을 확언처럼 해 오셨지만 요즘 그런 식의 사업방식으론 살아남기 힘들다. 되려 인맥 없이도 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아졌고, 거창하지 않게 취미생활 즐기는 정도로 가능한 것들이 얼마든지 있다. 사업이 어렵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되려 사업하기 편한 세상이라 생각한다.


"그래? 뭐, 생각해 본 모양이구만? 뭐하려고?"


"아니 딱 정해진 걸 생각한 건 아닌데, 여기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술 잘 먹고,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지 않아도 사업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더라고."


"그래? 정말 궁금한데? 내가 궁금한 거 못 참잖니, 오늘 한번 보자. 아니다 짐 싸서 너희 집으로 갈게 내일 아침 거기서 바로 출근해야겠다. 맥주 한잔 콜?"


"아이고, 그래 나는 두 캔만 마실 거니까 저번처럼 또 짝으로 사 오지 말아. 내일 힘들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이름은 엄마가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