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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Jul 11. 2018

누더기

#016_환대

때때로 바뀌는 슈트를 완벽히 소화하는 목각인형. 넓은 어깨, 가진 훤칠한 키의 인형은 주황색 체크무늬 복장도 무리 없다. 


나는 어떤 옷을 입고 있을까? 반사된 내 모습은 참으로 초라하다. 억지로 자아내려 한껏 꾸며봐도, 기름을 발라도, 장신구를 착용해도 눈부심 하나 없이 어둑하기만 하다. 직장, 출신, 돈 따위 배경은 더 이상 선망의 대상이 아니다. 탐욕, 불신, 이해관계로 얽힌 누더기 옷은 어떤 비싼 옷으로도 가려내지 못하고 어둠의 빛깔만 내뿜는다.


아내와는 감정 섞인 말도 없다. 자식들은 요구사항만 전달할 뿐이다. 이 삶을 지탱하는 것은 옹호자들로 부터의 환대다. 착각임을 알지만 그 환영의 소리가 아니면 갈 곳을 잃기에 자리를 유지하려 온갖 방법을 행했다. 한 때의 노력으로 움켜쥔 돈과 명예, 잠시 입을 자격은 있었지만 적절한 시기에 벗어 내지 못했고, 갈아입지 못한 복장으로 받는 환영의 소리는 내 껍데기를 향한다, 나는 아니다.


주황색 슈트의 목각인형이 결정을 내려줄 줄이야. 나 답지 않게 고민이 길었다. 화려한 누더기는 오늘 당장 찢어 버려야겠다. 덕지덕지 발린 기름도 깨끗이 씻어내고, 장신구도 벗어내야겠다. 저 화려한 주황색 슈트를 소화해 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야겠다. 늦었고, 늦은 나이지만 언젠가 멋지게 입어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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