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시콜콜 Jul 12. 2018

누끼 따기 좋은 경치다.

#017_경계

도로변을 따라 걷기를 이틀째, 갓 보수된 물 빠짐없는 아스팔트 때문인지 하늘과 땅 사이 경계선이 있는 마냥 진한 색으로 나뉜다. 


"누끼 따기 좋은 경치다."


회사에서 누끼라는 속어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건만, 사진에서 필요한 부분만 오려내는 이 기술의 적절한 대체 단어를 못 찾았다. 비속어가 아닌 이상 굳이 바꿀 이유는 없지만, 일본에 대한 자동반사적 태도인 것 같다. 나 조차도 일본어인 걸 처음 알았을 땐 불쾌했으니까.


우리는 역사적 피해자다. 역사라고 보기엔 방금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잔재의 상처로 고통받는 국가다. 속속들이 밀어친 가해의 흔적이 무의식적 행동을 만들어 낼 정도니까. 때때로 내면에 가라앉은 찌꺼기가 떠 올라도 이젠 떠 오르는지 조차 모른다. 지금은 표준어가 된 퍼센트를 의미하는 '프로'란 단어가 일본적 표현인 걸 몇 프로나 알겠는가?


"우와, 시원하다!"


오늘은 구름이 바쁘다. 시원한 맥주 한 잔 한 듯 온몸으로 바람이 스며든다. 이젠 새 바람을 맞아야 할 때, 우리가 스스로를 검은 구름 안에 가두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도로는 도로고, 땅은 땅이고, 하늘은 하늘이다. 서양이 우리에게 남긴 피해도 한 둘이겠는가? 해소되지 못한 찌꺼기는 일본으로 걷어내는 것이 마땅하나, 그 여파가 전혀 관계없는 곳까지 영향을 끼쳐선 안 되겠다. 누끼란 단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누더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