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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콜콜 Jul 16. 2018

마라톤 기록이 왜 경신되는 줄 아니?

#021_기록

진아는 오늘도 직장 이야기로 시작한다.


"우리 부장은 왜 인쇄한 장 제대로 못하니, 어제도 남자 친구가 두 시간이나 기다렸다니까. 매번 똑같은데 걸린다고 가르쳐줘도 돌아서면 까먹으니 답답하다 답답해. 어떻게 거기까지 올라갔나 몰라."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사이에 따질 필요는 없다. 그냥 기분만 적당히 맞춰주고 다른 이야기로 분위기 전환해야겠다.


"진아야, 매번 너희 부장 이야기를 듣지만 우리 팀장하고 어쩜 그리 똑같니, 지난주엔 토너 좀 갈아달라고 얼마나 보채는지. 심호흡 크게 한 번 하고 깨끗이 뱉어버려, 오늘 곱창에 소주 어때?"


이대로 분위기 전환되나 싶지만 역시나 유정이 또 불을 붙인다. 힘듦에도 절대치가 있는 마냥 자신의 일을 강조하며 떠들어댄다.


"아이고, 그 정도는 양반이다. 우리 부장은 A4용지 못 넣어서 사람 부른다니까. 인쇄라도 하다가 걸리면 몰라, 왜 맨날 인쇄할 때마다 사람을 불러서 이건 뭐고 저건 뭔지 물어보는지 모르겠어. 프린터기 모양 눌러서 확인만 누르면 되는데 말이야. 개인 프린터기 써서 선택하고 뭐 할 것도 없는데 왜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지 모르겠어. 빨리 그만두던지 해야지."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진아의 얼굴을 보고 나는 주제를 돌린다.


"진아야 어제 끝나고 나가니 남자 친구가 뭐래? 이런일 몇 번 있었잖아?"


유정의 말에는 대꾸 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상체를 내 방향으로 돌려 말한다.


"회사일이니 어쩔 수 없다며 웃긴 하는데,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가 봐. 지난주에 결혼 후에도 계속 다니고 싶다고 이야기한 게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거겠지."


유정은 또 틈새를 끼어든다.


"어머, 힘들겠다. 우리 남자 친구는 결혼 후에 나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던데."


자신을 우위에 놓으려 남과 비교하는 유정을 보면 한 마디 쏘아붙이고 싶지만 대놓고 말해도 알아먹을 친구가 아니다. 이대로 마쳐서도 안된다. 진아와 내 속이 들끓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오늘도 유정이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유희한다.


"유정아 너 이번에 또 마라톤 나가더라?"


질문받은 유정은 신나서 자기 자랑을 늘어놓으려 한다.


"응! 이번엔 남자 친구가 러닝화도 사주기로 했..."


길어질 것 같아 말을 자른다.


"너 왜 마라톤 기록이 경신되는 줄 아니? 아무리 최고라 생각해도 더 최고가 있어서 그래, 최고라는 것의 절대치는 없는 거지. 박지성이 최악의 신체 조건을 최상으로 발휘했다고 하잖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최악을 몸으로 더 최상의 실력을 내는 사람도 언제나 존재할 수 있다는 거야."


유정은 알아들을 리 없이 자기 말하기 바쁘다.


"당연히 알지, 요즘 세상에 절대 진리는 없잖아. 저번 주에 강연 듣고 와서 아는데..."


진아와 난 영혼 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두 번이나 자르긴 미안했다. 가끔은 유정이 없이 둘만 만날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우리 둘만의 대화는 너무 진지하다.


"유정아 지난주에 카톡으로 얘기했던 곱창집 거기 어때? 진아야 오늘 곱창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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